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네스장 Dec 10. 2023

호텔의 가구를 담당합니다.

10년 동안 해온 일   

"네가 남들보다 월등하게 잘하는 게 뭐야?"

"너의 독보적인 분야가 뭐야?"


직장 생활 20년 차가 되었다. 10년 동안 한 직장에서 같은 일을 해왔다. 호텔 소속의 인하우스 디자이너로서 호텔 고객 공간에 들어가는 가구를 관리하는 일이다. 오래 했다고 다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매 프로젝트마다 새로운 배움이 있었다. 새로운 문제를 만났고, 해결해 갔다. 이렇게 해온 일을 기록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런 일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개인의 삶과는 너무 관련 없는 일 아닐까?

누가 관심을 가질까?

아직도 확신은 부족하지만 적어도 내 자리를 대신할 후배가 생긴다면 도움이 될 것이기에 용기를 내며 글을 써내려 간다.


무슨 일을 하는가? 그 일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국내외 포함 총 34개(23년 기준)의 체인을 보유한 호텔 '고객 공간의 모든 가구'를 관리하는 일을 한다. 호텔 전문 용어로 FF&E(Furniture, Fixture & Equipment) 담당이라고 하는데, 신축 호텔 오프닝 프로젝트, 기존 체인 호텔의 리노베이션 인테리어 프로젝트에 맞추어 호텔 공간에 들어가는 가구 디자인, 제작과 세팅을 관리한다.

여기서 관리라고 하는 이유는 전문 설계사와 제작사를 선정해서 진행하기 때문이다. 전문 파트너사에서 일을 진행하고 완료할 수 있도록 디자인, 예산, 일정 그리고 품질을 관리한다. 호텔 공간이 실제로 운영될 수 있게 오픈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과정을 거쳐야 하고 그 과정 속에 또 수많은 선택이 존재한다. 가구 한 아이템이 완성되고 고객이 사용하게 되기까지도 선택의 연속이다. 그 선택을 직접 하기도 하고 내부 보고를 통해 결정받기도 한다.


이 업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건희 회장은 호텔업의 본질을 서비스업이 아닌 장치산업이라고 정의했다. 이 정의는 내가 하는 일의 본질에 대하여 고민하고 있을 때 큰 도움이 되었고 나름의 정의를 내려보았다. 내가 하는 일은 호텔을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수많은 장치들 중 '가구'라는 아이템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디자인적으로 기능적으로 공간에 적합하면서도 예산과 유지 관리를 고려하여 최선의 선택을 이끌어내는 것이 업의 본질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앞으로 쓰려고 하는 호텔 가구에 대한 이야기들은 단지 이 일을 하게 될 후배들에게뿐만 아니라, 각자의 상황에 맞게 가구를 선택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닿았다. 호텔 같은 집을 꿈꾸는 사람들, 호텔이나 숙박 공간을 짓는 분들, 식음업장을 운영하는 분들처럼 호텔 공간에 포함된 공용공간, 객실, 식음업장, 연회장, 수영장 등과 같은 공간과 연관된 일을 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글을 쓰고자 한다.


공간을 살리는 가구

건축 공정을 빼고 인테리어의 설계부터 완공까지 한 공간을 완성하는데 2~3년이 걸린다. 호텔 공간을 만드는 일은 결코 혼자서는 할 수 없고,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이런 노력이 결실을 맺는 공사의 마지막 단계에서 나의 일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테리어 공사가 완료되고 준공청소를 할 때쯤이면 현장을 돌며 팀장님은 내게 묻는다. '디자인 괜찮을 것 같드나?', '가구랑 조명까지 세팅되면 괜찮아지겠지?' 공사가 끝나가지만 허전한 공간을 보면 불안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공사가 잘 마무리되었어도 바닥, 벽, 천정만으로 구성된 빈 공간은 기능을 할 수 없다. 가구가 공간에 들어오고 제자리를 잡으면 그제야 운영이 가능한, 고객들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맘 때쯤이면 듣는 말이 있다.


'가구가 살려줄 거야!', '가구가 살려줄 거지?'


제대로 된 가구는 공간을 돋보이게 한다. 가구의 다양한 형태와 재질, 색감 등으로 공간이 다채로워지고 활력을 불어 들인다. 그렇게 심미적으로 그리고 또 용도에 맞게 사용함으로써 기능적으로 공간을 살린다.


정해진 기한 내에 머릿속의 그림을 세상밖으로 실현시키는 일은 흥미진진하다. 가구를 세팅하는 날은 집에 새가구를 들이는 날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현장에 간다. 그러나 설계와 제작 과정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 현장에서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잘못된 선택을 해서 실수하고 문제를 해결했던 경험담을 포함하여 가구를 구성하는 엘레먼트의 옵션에 따라 어떤 특성이 있는지, 무엇을 고려하여 선택을 하면 좋을지 실제 사례를 들어 하나씩 글로 풀어보려 한다.


디자인을 말이나 글로 설명하는 것이야말로 또 하나의 디자인임을 알게 되었다.
- 디자인의 디자인, 하라켄야 -


나는 작가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나만의 목소리를 담고 표현하고 싶었던 나를 최근에야 다시 알아차렸다. 정신없이 사회에 적응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계속 일을 하면서, 어쩌면 작가로서의 활동을 접은 것을 스스로 합리화하고 있었던 것도 같다. 나는 별 미련 없다고… 쿨한 척 세상살이 다 그런 거 아니겠냐고…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솔직해져 본다. 그리하여 디자인을 글로 설명하는 작가로 또 하나의 디자인을 하고자 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