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정하 Jan 18. 2024

퇴사는 내가 나를 함부로 대한 것에 대한 댓가

꿈의 회사라 불리는 곳에 가고 싶다면, 그곳에 나를 데려다 놓으면 된다.


스펙이라는 두 글자로 환원되는 한 사람의 질량, 그 질량이 꿈의 그곳이 요구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나를 그곳에 데려다 놓을 수 없었다.


결국 내가 그곳에 못 간 것은 내 문제다.


여러 번의 퇴사를 거칠 때마다 마지막은 늘 사직서 쓰기인데 쓸 때마다 늘 고민하던 '퇴사사유'는 고민만 하다 '개인사유'로 마무리되었다.


개인사유로 적기에는 그곳에 있으며 얼마나 분하고, 슬프고, 화나고, 수없는 현타의 연속이었는지를 구구절히 적는 것이 떠나는 마당에 구질구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침 방송의 토크쇼에 나와 얼굴을 가리고 눈물없이 들을 수 없는 한맺힌 억울함을 토로하며 간간이 눈물 찍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퇴사사유는 늘 개인 사유라 적었는데 생각해 보면 그것이 가장 정확한 퇴사사유였다.


그런 곳에 나를 데려다 놓은 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직서를 읽어보니 친절하게도 퇴사사유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무려 18개나 된다!


이직, 거주지 이전, 사병, 출산, 육아, 결혼, 학업, 업무부적응, 징계, 근무조건, 간병, 개인사정, 계약만료, 계약직전환, 정규직전환, 권고사직, 현장종료, 인원감축.


이번에도 결국 개인사정을 선택할 것이고 그 아래 덧붙이는 '구체적인 퇴사 사유 부분'에서는 또 한 번 고민을 할 것이다.


못 견디게 괴로운 곳에 데려다 놓은 것은 나였다. 그럴 줄 몰랐다고 억울해해 봤자, 그것 역시도 그토록 얻어맞아 놓고도 '이번엔 다르겠지' 하며 폭력에 길들여지다 못해 완전히 적응된 판단미약자의 변에 불과한 것.


퇴사는 결국 내가 나를 함부로 대한 대가였다.


나를 귀하게 여기지 않은 여러 가지의 잘못들 중 하나가 결국 퇴사가 되었다.


나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으니, 회사가, 사람들이 나를 귀하게 여길리 없음을 또 한 번 체감하고 정리하며 생각한다.


나에게 잘해주기, 지독스럽게 나에게 집중하되 피해 주지 않는 진정한 이기주의자가 되는 것이 행복까지는 아니어도 덜 불행한, 덜 괴로운 사회생활, 고단하고 고달픈 밥벌이의 시작이자 끝이다.


나라는 사람의 질량을 이루는 분자의 더 밀도높은 함량을 만들어 나를 좋은 곳에 데려다 놓아야겠다. 그렇게 나는 나를 잘 대접해 주겠다.


그간 몸과 마음 고생시켜서 미안했고 미안하다.


I'm so sorry! But I love you!


https://www.youtube.com/watch?v=2Cv3phvP8Ro


매거진의 이전글 잔망스러운 글재주로 먹고살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