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마케터가 된다.
'운명아 비켜라 내가 간다'라는 말을 어린 날 주말 드라마에서 봤다.
딸로 태어난 주제에 남자형제보다 뛰어는 재능과 영민함으로 아들의 앞길을 막는다며 엄마에게 끝없는 구박을 받던 주인공이 펜팔 친구에게 쓴 편지의 한 구절이었는데, 당시 어린이였던 나에게 제대로 꽂힌 말이었다.
엄마의 손길이 참 많이 필요했지만, 사랑을 받지 못해 겉돌고 외로웠던 꼬마는 그 드라마의 주인공에게 깊이 감정이입했다.
그래, 나도 운명 따위에 굴하지 않고 나아가겠다!
우리 집이 아무리 넉넉하지 않아도, 누구도 나를 사랑해 주지 않아도 내 노력으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다는 파이팅 넘치는 의지 하나로 학교를 다녔고 사회생활을 했다.
아등바등, 고군분투, 하드캐리.
이 3개의 말이 각각 나의 10대, 20대, 30대를 대변한다.
지독하게 나를 몰아붙이며 청춘이라는 이름의 산등성이를 맨발로 기어올라왔다.
그렇게 얻은 오늘의 결론은 이렇다.
운명에게 덤비면 운명이 몽둥이를 들고 찾아온다. 운명은 나의 비키라는 호령에 '아이고 알겠습니다' 하고 순순히 비켜 주지 않았다.
노력은 배반하며 성실은 무시당한다.
사회생활에서 자리를 잡고, 꽤 괜찮은 연봉을 받으며 나를 조금씩 기특하게 여기게 될 즈음, 벼락처럼 우울증이 찾아왔고 몸의 기능들이 멈추었다.
나는 그렇게 제도권에서 밀려나 낙오자가 되었다.
3년간 일관성 있게 내 인사를 받지 않고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내가 하는 모든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극혐의 눈빛을 쏘아대던 한 상사는 미국 야구 하이라이트를 하루 종일 유튜브 묵음 상태로 틀어놓고 보고 있었다. 그러다 지겨우면 주식.
나의 5-7년 후 모습이 저와 같을까 생각할 때마다 신입시절 내가 만든 결과물은 다 자기 것으로 뺏어가고 나만 빼놓고 팀원들 밥을 사주거나, 내게 일 독박 씌워놓고 칼퇴근하던 사수가 소환되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알려줄 수 있는 시기가 되면 난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나는 내 능력을 열심히 키워야지. 나의 팀원이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노라고 수없이 다짐했다. 그러기 위해 참 많은 날, 분노를 삭이며 묵묵히 살아왔다.
헛짓거리었다.
한때 꿈을 최고 마케팅 책임자, CMO로 삼았지만 나 같은 사람은 회사에서 별을 달 수 없었다.
이미 별을 달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성실, 재능, 감각, 능력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은 들어야 하는 말을 하는 팀원이 아니라 듣고 싶은 말을 하는 팀원을 원했다.
나는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팀원이 아니었다. 이 지시가 골로 가는 것임을 알아도 '최고의 아이디어입니다!' 하며 엄지 척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못했다.
모름지기 회사생활의 위너는 손발이 다 닳도록 비비던지, 남의 성과를 교묘히 자기 것으로 낚아채는 마이크로 한 감각, 험담과 왕따, 몰려다니기 및 사조직 만들기에도 능했어야 하는데 나는 무능력했다.
사람과 조직 사이의 의리를 중시했고, 맡은 일에 깊은 주인의식을 가지며, 내가 맡은 브랜드를 곧 나로 동일시한 대가로 나는 낭인이 되었다.
햇살이 적당히 들어오는 큰 창 앞의 공유 오피스 한 곳에서, 지금 이 시간, 정확히 오후 2시 9분에 앉아있다.
내 옆에는 이곳의 출입자들에게 공짜로 주는 커피와 두유를 내 입맛대로 섞어 만든 두유 라테 한 잔이 놓여있다.
영어 능통에 광고와 홍보, 온/오프라인 마케팅 모두를 아우를 수 있던 멀티플레이어가 40대가 되면 조직 내에서 한자리 차지한 사람이 될 줄 알았나?
아니, 전직 마케터가 된다.
내가 나를 너무 몰랐다. 그리고 나를 너무 함부로 대했다.
나를 알아가는 중이다. 그래서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