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간의 마케터 생활로 남은 것은 내 명의로 된 작은 아파트 한채, 우울증, 수면유도제였다.
꽤 되는 시간 동안 암흑 속에서 산송장처럼 있으면서도 밥벌이를 걱정했다.
이제 뭐 하고 살아야 하나를 고민하던 중, 수년 전 영어 실력 테스트 차원에서 취득했던 테솔 자격증이 문득 떠올랐고, 이 지경에도 일단 먹고는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기어가듯 책상으로 가서 자리를 고쳐 앉고 그 밤을 꼬박 새우며 이력서를 썼다.
그렇게 어린이 대상 영어 화상수업 교사가 된 것을 시작으로 마케터에서 '샘'이 되었다.
그렇게 '샘'이 된 지 4년 차.
청빈하다는 것은 나를 두고 하는 말이리.
조선시대로 치면 낙향한 선비 그 자체, 돈으로 결코 환원될 수는 없는 매일의 평온한 하루. 그것이 자발적 저소득자로서의 상대적 빈곤, 그 모든 것을 상쇄된다.
수업하고, 잠자고, 집안일하고, 음식을 만들어 술 한잔 하는, 누가 보기에는 한량 그 자체이지만 나름대로 바쁘게 아주 제대로 짜인 하루를 보내며 안분지족의 삶을 사는 내게도 가끔, 세속의 친구들과의 조우는 그저 반가운 것.
오랜만에 만난 사회친구들과의 이야기 속에서 과거 함께 일했던, 나보다 연배 높은 선배가 이직한 곳에서 아침마다 직원들이 청소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일하러 간 직장에서 일 외에 청소까지 해야 하냐며 황당해하는 내게 구 동료가 말한다.
ㅈ소기업 가면 그런데 많아~~
마시던 맥주의 탄산이 이마에서 터지는 느낌을 받았다. 치열한 세상의 흐름에서 낙오했고, 두려워 다시 가지 않겠다고 도망친 나도 한때 선배들이 커피 먹고 쌓아둔 컵을 맨손으로 설거지하고, 쓰레기통을 비워줬어야 했었다. 과거 한 시기에 스치듯 근무한 곳에서는 아침마다 돌아가며 청소를 했는데 거기에는 화장실 청소도 있었다. 면접을 회사가 아닌 카페에서 진행해서 몰랐는데, 첫 출근해서 회사에 가보니 화장실에 손때 묻은 대걸레가 몇 개 놓여있었다. 그것은 엄연히 정직원들의 업무용품이었다.
내가 가장 지질하고 가난했던 시기는 모두 ㅈ소기업에 있을 때였다.
ㅈ소기업이란, 근무 여건이나 환경의 품질적인 의미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가치를 대하는 예의가 없는, 생산성이 의심되는 병폐집단으로서의 의미다.
예전에 일로 알게 된 분이 웹디자이너라고 했는데 회사 앞 텃밭에서 배추에 물을 주고 있다고 했다. 나도 종종 사무실 에어컨 청소에 동참해야 했던 주제면서 그래도 배추에 물 주는 건 좀 선 넘는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제3자 보기에 에어컨 청소나 배추에 물 주기나 그게 그것.
차라리 배추에 물을 주는 것은 농업에 미래가 있다는, 21세기 농자천하지대본의 순수한 실천이기라도 하지 않은가?
다양한 ㅈ소기업을 거쳐오니 놀랍도록 같은 점이 있었다. 명확한 R&R이 없다. 그런 곳에서 역량 개발을 위한 거시적 관점에서의 투자나 관리는 당연히 없는데 놀랍게도 평가에 근거한 보상은 있다.
보상이 늘 플러스라는 생각은 금물. 마이너스 보상도 엄연한 보상이다. ㅈ소기업은 그런 곳이다.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훨씬 많은 곳이 ㅈ소기업인데 대표적으로 인간을 대하는 데 있어 염치가 없다. 염치가 없다 보니 대표 본인은 한 끼 80만 원짜리 식사를 해도 직원에게는 파리바게뜨 빵 하나 사주는 것을 아까워한다.
그런 ㅈ소기업이라도 일을 배워 경력을 쌓았으니 아주 손해 보는 건 아니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경력이라는 말에 함께 수반되는 것은 바스러진 자존감, 비루해진 몸뚱이, 다 타버린 공감능력이다. 돌이켜보면 흙수저 K장녀가 죽어라 하고 내 안의 발전기를 돌려대며 발버둥 쳤던 것은 ㅈ소기업 탈출이라는 절박함이 있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해본 적 없이 남의 삶, 남의 고민, 남의 생각에 훈장질하는 사람을 극혐 한다.
다행히 마케터 생활 15년史가 ㅈ소기업의 시기만으로 채워지지는 않았으나 ㅈ소기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여 돈 많은 외국계와 상장 기업, 스타트업까지 두루 거쳐본 결과 ㅈ소기업은 안 가는 게 제일 좋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ㅈ소기업에 갇혀 있다면, 비관만 하지 말고 고개 들고 나갈 길을 찾자. 그곳에서의 경험 안 해도 괜찮다. 내가 제대로 살아있기만 하면, 길이 있다. 늘 길을 만들어 가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간절하고 준비되면 길이 '내 위를 걸어가시게나.' 하고 찾아도 온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지만 않으면 된다. 내가 그랬듯이.
안 하는 게 좋은 경험이라는 말을 진심으로 할 수 있게 된 것에는 가장 비열하고 치졸한 인간들이 밀도 있게 모여 계모임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던 나의 구 직장들, 다수 ㅈ소기업의 기여도가 있으니 심심한 인사를 건네어 본다.
6월 항쟁의 뜨거운 목소리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21세기의 오늘에도 민주화되지 않은 집단, ㅈ소기업을 역사의 뒤안길로 없애버릴 수 있는 대선 후보가 있다면 자발적으로 마이크 들고 선거운동을 하겠다.
내가 처절히 경험한 비합리, 비상식을 타파할 수 있는 자리로 가기 위해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투쟁하던 나였다가 한순간에 무너져 비겁하게 내뺀 내가 때때로 부끄럽다. 그래서 별 볼 일 없는 잔재주, 글 나부랭이로나마 누군가들에게 말을 전한다.
참지 말고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라고. 안 그러면 나처럼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