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정하 Jul 13. 2024

일, 사람, 돈 그중 최악은 사람 사람 사람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지!

직장생활이 힘겨울 때마다 일, 사람, 돈 중 충족까지는 아니어도 약간이나마 나를 견디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매우 열심히 찾곤 했다.


그 나이를 퍼먹도록 그걸 하나 모르냐며 음악으로 철학하던 그의 일갈을 BGM 삼아 번민에 휩싸인 채 되뇌는 생존을 위한 절박한 사유였다.


어린 시절부터 꿈꿔왔고, 종종 재미도 있으며 스스로 천직이라 믿는 일을 하는 사람 얼마나 되냐며 버텼고, 때로는 월급의 입금 알람을 마약성 진통제삼아 버텼다.


일, 사람, 돈 중 15년의 직장생활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충족시키기는커녕 항우울제와 수면제, 알콜로도 해소되지 않는 감정의 폭정을 일으키게 하던 것. 단연코 '사람'이었다.


직장생활을 완전히 정리한 후에도 얄궂은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 대기업 *년차 산전수전 다 겪은 찐 경험담' '최연소 임원 출신이 알려주는 일 못하는 사람 특징‘ 등 무슨 말할지 예상되는 컨텐트를 안내한다.


예상 가능한 유사 컨텐트의 물결 속에서 단연 최악은 ’이렇게 해야 인정받는다‘ 며 자발적 영혼말살을 고상한 말투로 압박하는 류.


눈빛과 말투에서 느껴지고 흘러나온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병들게 한 사람일지가.


무언가를 해내는 것이 성과라 생각했지만, 회사에서의 성과란 ’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좋은 것이 보여짐의 간택을 받는 것이 아니었다. 회사에서 ’ 좋은 것‘ 이란 상사에게 좋은 사람의 것 또는 버젓이 원작자가 있는데도 부끄러움 없이 갈취해 남의 이름 달고 다시 태어나는 것이었다.


해내면, 그걸 알아보아 주는 존재가 상사라 생각했다. 하지만 수많은 상사들은 누군가를 갈아 만든 구두약으로 자기 신발에 광을 내던 사람들이었다.


그런 직장생활의 기본을 모르던 나는 낙오했다. 억울할 것 없는 당연한 결과이다.


직장생활 내내 위로는 입의 혀 같은 충성을 바치고, 아래로는 누군가의 열정을 자양강장제 삼는 사람이 되지 않으리라 수천번 다짐했다. 내가 겪는 일들이, 나를 괴롭히는 사람의 위치로 내가 갔을 때 일어나지 않도록 바꿔 보고 싶었다.


일단 견디고, 때가 되면 그간 갈아온 검을 꺼내들 날이 올 줄 알았지만, 현실은 너무나 당당한 인격말살자들의 선민의식

점철된 컨텐트들에 ’ 싫어요 ‘를 누르는 것으로 소심한 복수를 하는 무소속 저소득자.


일하지 않는 것을 일로 삼는 사람들로 인해 일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밀려나고 고통받고 떠나는 것을 목도했다.


얼마나 더 멀쩡한 사람들이 당장 죽을 것 같은 괴로움으로 생계의 장을 등 돌려야 할까.


이 사회의 진짜 시급한 문제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데 있다.


누군가를 파괴해 올라온 사람들이 멘토를 자처하며 조근조근 말투의 레토릭으로 ’입 닫고 충성충성‘을 길게도 말한다.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처음부터 나를 싫어한 사람, 끝까지 내가 싫어할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