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퇴사생활
퇴사 후 6개월이 지났다.
회사를 그만 둔 이후 재취업을 하겠다고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다. 많은 회사에 이력서를 냈고 아르바이트며 구직광고도 열심히 찾아봤다. 하지만 50이 넘은 나를 뽑아줄 회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괜히 그만뒀나?’
호기롭게 그만 둔 회사에 대한 아쉬움도 생겼다. 하지만 그 일을 영원히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고 일에 대한 의미도 흥미도 사라지고 있던 시점이어서 내가 하던 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한 해 한 해 들어가는 나이를 바라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죽는 날을 기다리는 노년의 삶을 살 수는 없었다. 은퇴 없는 노년을 위해 무언가 시작해야만 했다.
무작정 자영업에 나서는 은퇴자들을 이해할 수 있다. 어제까지 사회에서 쓸모있는 사람으로 대접받으며 살았는데 퇴사하는 일 순간에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무용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 웬지 조급해지고 뭔가 시작한다. 생각하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시작한다.그러다 큰 손해를 보고 사업을 접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변에서 한 1년 정도 카페나 치킨집, 또는 식당을 하다가 문을 닫는 경우를 종종 본다.
물론 내밀한 사정을 알 수는 없지만 아마 너무 급하게 뭔가 시작해서 금방 접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실 어떤 사업이든 매장을 인테리어 하고 사업을 시작하려고 든 노력과 투자금이 적지 않을텐데 1년도 못하고 접게 되는 것을 보면 내 일이 아니라도 가슴이 아프타.
그런데 나도 실업기간이 길어지니 뭔가 급하게 찾는다. 나름 열심히 바쁘게 살아왔기 때문에 일하는 중에는 찾는 사람이 많아서 좀 귀찮기도 했다. 바쁜 척 하며 성의 없이 대한 것을 이제와 후회해 봐도 소용없다. 그들도 ‘나’라는 사람이 필요했다기 보다 회사에 다니는 내가 필요했었다는 것을 퇴사한 이후에야 알게 됐다.
그렇다고 일과 관계없는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기란 쉽지 않다. 일단 남들에게도 필요에 의해 촘촘한 사회적 네트워크가 갖춰져 있다. 서로의 정서를 위해서라면 좀 더 오랫동안 공을 들인 끈끈한 관계가 필요하다. 어느날 사회와 직업에서 뚝 떨어져 나온 나를 끼워줄 느슨한 모임 같은 것은 없다.
늘 퇴사와 은퇴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정말 심각하게 은퇴 후 삶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능력 있었던 부모님이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으며 늙음과 우울에 대항할 때 조차 그것이 내 노후의 모습이라고 상상하지 않았다. 몇 달 놀다 보니 나도 은퇴한 부모님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는 자각이 든다.
경제활동을 하던 시기에 은퇴준비를 해야 한다는데 아이를 키우느라, 여행을 가느라, 집을 마련하느라 정작 은퇴할 시점에는 거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수입이 없어지고 나서야 알게 됐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지만 겨우 아이 키우고, 집 마련하고 매달 돌아오는 카드빚을 갚는 삶을 다람쥐 챗바퀴 돌 듯 살아냈을 뿐이다.
여기까지 생각해 보니 나의 노후는 절망적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직 나의 상황에 대한 고찰이 끝나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난 한달에 얼마를 가지면 살 수 있는 사람인가? 나의 건강상태는 어느 정도이며 나는 몇살 까지 살 수 있을까. 난 뭘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행복하고 무엇을 하고 싶지 않아 하는가. 내가 가진 것은 무엇이고 가지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
차근차근 정리하고 글로 쓰고 앞으로 30~40년을 대비하는 일.
아무도 시키지 않아서 이제껏 손 놓고 하지 않았던 '나에 대해 알아가는 일'
이제는 나를 고용하고 이 일을 시작해 보려고 시켜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