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퇴사생활
은실이는 아파트 현관문을 살며시 열고 엘리베이터를 탔어요. 엄마가 항상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것을 봤거든요. 은실이도 엘리베이터의 1자 버튼을 눌렀어요. 숫자가 많이 있었지만 은실이 손에는 0자 버튼이 겨우 닿을 뿐이었어요.
은실이는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았어요. 매일 아빠와 엄마는 현관 밖으로 나갔어요. 은실이에게 “빠이빠이, 엄마 아빠 일하고 올게.”하고 말했지만 엄마 아빠가 돌아오기까지 너무 시간이 안 갔어요. 할머니와 잠깐씩 유모차를 타고 나가긴 했지만 은실이는 벌써 걸을 수 있는걸요. 유모차 밖으로 나가 아장아장 걷고 싶었지만 할머니는 “안돼!” 하고 무섭게 말했어요.
오늘도 아까 오전에 벌써 한 번 밖에 나갔다 왔어요. 지나가는 까만 고양이가 “안녕?”하고 인사했는데 할머니가 끄는 유모차는 벌써 지나쳐버려 고양이에게 인사하지 못한 것도 마음에 걸렸어요.
놀이터에 그네가 ‘쉬잉~쉬잉~’ 재미있어 보였지만 할머니는 “안돼! 너무 위험해.”하고 말해서 놀이터에 있는 그네를 한 번도 못타봤어요.
꽃향기가 ‘향긋~’하게 은실이의 콧가를 스쳤지만 유모차 지붕이 덮여 있어 어떤 꽃인지 보지도 못했어요.
할머니가 은실이에게 점심을 주고 잠깐 소파에 누워 잠이 들었을 때 은실이는 살금살금 아파트 현관으로 나갔어요. 아까 할머니가 문을 살짝 열어놓아서 은실이는 몰래 쏙 빠져나올 수 있었어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슈웅 하고 15층인 은실이네 집에서 0층까지 한번에 내려갔어요. 엘리베이터에 아무도 타지 않아 은실이는 0층까지 바로 내려갈 수 있었던 거에요.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멈추자 엘리베이터 밖에는 은실이가 생전 처음 보는 정원이 펼쳐져 있었어요.
은실이는 1층을 누른다는 것이 0층을 누르고 말았던 거에요. 아직 키가 작은 은실이는 0층에밖에 손이 닿지 않았거든요. 아파트 밖에는 계단도 없고 현관도 없고 푸른 잔디밭이 펼쳐진 앞에 키가 무척이나 큰 나무가 쑥쑥 올라가 있는 숲이 보였어요.
푸른 잔디밭에는 아까 봤던 고양이가 늘어지게 낮잠을 자다가 은실이를 보고 졸린 눈을 반쯤 감은 채 말했어요.
“지금 어린이는 낮잠 잘 시간이야. 왜 나왔어?”
“응. 까망이 고양이구나. 아까 인사를 못해서 미안. 여기는 처음 보는데 너는 여기 살아?”
“멍청하긴, 0층에 살고 있는 길고양이가 어딨어? 아까 비밀의 숲 여왕님이 손님을 맞으러 나가라고 해서 마중나온거야. 작은 여자아이라고 했으니 아마 너인 것 같아. 같이 가자.”
은실이는 얼룩고양이를 따라서 넓은 잔디밭은 지나 키큰 나무가 있는 숲으로 들어갔어요. 밖에서 볼 때는 나무가 빽빽하고 어두워보였는데 나무사이로 들어가니 꽃과 나비들이 여기저기 있었어요.
튤립, 장미, 데이지, 개나리, 수국, 해바라기......
밖에서는 한 계절에 볼 수 없는 꽃들이 모두 모여있는 것 같았어요.
“여긴 어디야?”
은실이는 고양이에게 물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