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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OKKO Nov 15. 2015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공지영

 


눈을 크게 뜨고 이 세상을 감상하렴. 네가 좋아하는 푸른 젊은 날이 한 순간 한 순간씩 가고 있다.

네가 졸고 있는 그 순간에도, 네가 눈을 뜨고 있는 그 순간에도. 그러니 민감해지렴.

 

더욱 황당한 것은 상처는 후회도 해 보고 반항도 해 보고 나면 그 후에 무언가를 극복도 해 볼 수 있지만 후회할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때의 공허는

후회조차 할 수 없어서 쿨하다 못해 서늘해져 버린다는 거지.

 

오늘도 가끔 창밖을 보고 있니? 그래 가끔 눈을 들어 창밖을 보고 이 날씨를 만끽해라. 왜냐하면 오늘이 너에게 주어진 전부의 시간이니까.

오늘만이 네 것이다.

어제에 관해 너는 모든 것을 알았다 해도 하나도 고칠 수도 되돌릴 수도 없으니 그것은 이미 너의 것은 아니고, 내일 또한 너는 그것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단다. 그러니 오늘 지금 이 순간만이 네가 사는 삶의 전부, 그러니 온몸으로 그것을 살아라.

 

우리 모두는 늘 우리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배심원석에 앉혀놓고, 피고석에 앉아 우리의 행위를 변명하고자 하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

 

나름대로 이보다 더 불행하긴 힘들다고 생각했지. 실제로 숨죽여서 많이 울었다. 제일 견디기 힘든 것은 우리 집안의 사정도 아니고 유학 간 친구도 아니고 짝사랑하던 사람의 부재도 아니었어. 그건 나의 이런 딱한 처지가 알려지게 되어서 반 아이들이 처음으로 엄마에게 가엾다는 눈치를 보내게 되었다는 거지. 지금은 꼭 그렇지않다마는, 그때는 그것이 그렇게나 엄마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고, 참을 수가 없었어.

 

그때 생각했어. 이왕 피할 수 없다면 끌려가지 말자고. 내가 끌고 가자, 휘둘리지 말고, 억지로 노예처럼 공부하지 말고 내가 이 시간들의 주인이 되자고.

 

지금까지 생각해도 그때처럼 엄마가 열심히 살았던 적은 거의 없어. 그 이후로 한 번도 그렇게 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은 거지. 내가 생각하기에 끔찍했던 불행들이 나를 분발시키고 나를 바른 자세로 살게 만들어 주었던 거야. 가끔 생각하곤 한단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문

주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하게 해 주시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체념할 줄 아는 용기를 주시며

이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너에게는 열정이 있니?

진정 심장을 태워도 좋을 만한 그런 열정이 있다면 너는 젊다. 그러나 네가 이력서와, 사람들이 이미 그렇다고 여기는 모든 것들을 아품 없이 긍정하고 만다면 너는 이미 늙거나 영원히 젊을 수 없을지도 몰라. 사랑하는 딸, 도전하거라. 안주하고 싶은 네 자신과 맞서 싸우거라. 그러기 위해 너는 오로지 네 자신이어야 하고 또 끊임없이 사색하고 네 생각과 말과 행동의 배후를 묻고 또 읽어야한다. 쌓아 올린 네 건물이 어느 날 흔적도 없이 무너지는 기분이 든다 해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생각보다 말이야, 인생은 길어.

그리고 슬픔으로 얼굴이 창백해졌던 네 아름다운 친구에게도 전해 주렴. '우리의 동경이 현세에서 이루어지지 않아도,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를 우리가 바라는 대로 사랑하지 않아도, 우리를 배반하고 신의 없게 굴어도' 삶은 어느 날 그것이 그래야만 했던 이유를 가만히 들려주게 될 거라고. 그날 너는 길을 걷다가 문득 가벼이 발걸음을 멈추고, 아하, 하고 작은 미소를 지을 수도 있다고. 그러니 두려워 말고 새로이 맑은 오늘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이야.

그러고 나면 너희들 모두에게 어느 순간 생이 생 전체로 모든 질문에 대답하고 있는 날이 올 거야!


타샤 튜더 할머니의 신조

자신 있게 꿈을 향해 나아가고 상상해 온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일이라면, 일상 속에서 예기치 못한 성공을 만날 것이다.

 

변명하는 말이 진정 아니기를 바라지만, 젊은 날의 고통은 얼마나 가치 있고 귀중한 것인지 엄마는 이제는 알게 되었단다. 왜 젊은 시절의 고생은 사서라도 하라는 말이 있는지도 알게 되었단다. 그건 그냥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위로하는 상투어가 절대로 아니었다는 것을. 젊은 시절은 삶의 뿌리를 내리는 계절. 무사태평하게 그 시절들을 보내다가 이미 모든 것이 무겁게 익어 버린 가을날에 태풍이 덮치면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란다. 가을에 태풍이 덮치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고? 그래, 그러면 되겠지. 그러나 위녕, 이 지구에 태어나 일생을 산 사람들 중에 오래도록 무사하고 태평하게 산 이는 아마도 아주 적을 거야. 거의 없다고 말하고 싶지만 엄마가 다 조사해 보지 않아 이렇게 말하는 거야.

대신 말이야, 거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기는 해. 직면하는 것, 회피하지 않는 것,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고 충분히 거기에 상응하는 고통을 겪는 것.

그래, 충분히 거기에 상응한 고통을 겪어 내는 것, 그래야 젊은 시절의 고난이 진정 값어치가 있게 되는 거지.

 

탈무드中

'풀잎마다 천사가 있어 날마다 속삭인다. 자라라, 자라라.'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천사가 있다는 것도 솔직히 놀라운데, 풀잎 하나에까지 천사가 있어서 날마다 속삭인다는 말. 순간 고개를 돌리자, 길거리에 서 있는 나무들과 이파리들이 보였는데, 뭐랄까, 갑자기 세상이 다르게 보였어. 같은 초록색이 다 같은 초록색이 아닌 것 같았고, 바람결에 흔들리는 모양새도 그냥 흔들리는 게 아닌 것 같았단다. 사물의 의미도 다르게 다가왔지. 온 세상이 신비한 생명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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