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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경 emb Apr 29. 2024

한을 위한 레퀴엠 - 2

김창완 - 너의 의미


장례식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가지 못했다.


생각해보니 한과 나는 겹쳐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나는 한의 학교인 서울대를 가지 못했고, 한이 활동하던 단체에 소속되어 있지도 않았다. 소위 말하는 '운동권' 친구들과는 상당수 연락이 끊겨 있었다. 결정적으로 한과 나는 꽤 오랫동안 연락이 단절되어 있었다. 



사실 다 변명이었다. 나는 이 세상에 한이 없다는 현실을 마주하기가 무서웠다.


편지 한 통을 간접적으로 남겨 가까스로 전달했다. 가지도 못했으면서 장례식을 치르는 내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를 조금 후에야 들었다.

세상이 워낙 좁다 보니 소문이 퍼졌다. 세 가지였다.


하나, 한이 촬영장의 비정규직을 비호하다가 회사의 미움을 샀다는 이야기. 

둘, 한이 2011년과 그 이전의 운동권 경력 때문에 외압을 받았다는 이야기. 

셋, 과도한 업무를 받아들이기보단 바꾸려 시도했는데, 그 과정에서 우울증을 얻었다는 이야기.



모든 소문이 어째 거짓인 것 같지 않았다. 한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고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한동안 이상할 정도로 감정이 요동쳤다. 우울함이 밀려왔다가 빠르게 사라졌고, 그 과정이 반복됐다.

파동을 그리던 우울함 속에서도 나는 이상할 정도로 잘 살았다. 배가 고파서 밥을 잘 먹었다. 친구를 만나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가도 혼자가 되면 한의 흔적을 뒤졌다. 정신을 차려보면 오래된 이야기를 곱씹고 있었다. 무의식의 세상에 항상 한이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앞의 누군가를 이상으로 삼는다. 자기가 못다 할 것, 혹은 자기가 되고 싶은 이미지를 그 사람에게 투영한다. 그 사람이 내 앞에서 반짝이는 인도자가 되어주길 바란다.

돌이켜보면 한은 나에게 그런 사람이었다. 살면서 해야 하는 일과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을 구분지어줄 수 있는 존재 말이다. 앞에서 반짝이는 별을 만드는 데는 굳이 많은 소통과 진득한 친밀감이 필요하진 않았다. 별은 그 자체로도 날 인도해줬으니까.


한이 존재하지 않는 첫 해가 무척 힘들었다. 그 해엔 한을 제외하고도 사실 많은 것을 잃었다. 자신감, 버팀목, 뭐 이런 단어들 말이다. 다 한과 관련된 '무언가'였다. 



한이 세상을 떠나고 시간이 조금 더 흘렀다.

한을 생각하는 빈도수는 줄었지만 가끔씩 꺼내본 서랍 속 소품처럼 여전히 한을 생각했다.

기자란 직업을 처음 가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앞으로 글을 쓰며 밥을 먹고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하자, 자연스럽게 한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다시 여러 해가 지나서 어느 날이 찾아왔다.

회사 동기인 미소에게 연락이 왔다.

"나 다음달에 계약 만료야"



미소는 같은 직군은 아니었지만 입사할 때 동기로 묶인 친구였다. 미소의 직군은 비정규직 파견근로자 형식으로 채용을 한 후, 평가를 거쳐 본사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그러니까 미소의 계약 만료는 미소가 정규직 전환에 실패했다는 의미였다.


미소는 가명처럼 잘 웃는, 괜찮은 사람이었다. 업무적으로도 그랬다. 내가 알기로 적어도 미소는 계약 만료를 통보받을 정도의 사람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화가 났다. 이해가 가질 않았다. 미소가 왜 그런 처우를 받아야 하는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다음에는 후회가 들었다. 돌이켜보면 미소는 늘 불안해했다.

계약 만료 시간은 다가오고 평가는 어떻게 나올지 몰랐다. 미소는 가끔 그 불안감을 표출했다.

왜 불안한지까지는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전환 되겠지 뭐" 하면서 늘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다. 


마지막으로 부끄러웠다. 미소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게 없었다.

당시 나는 회사의 막내급이었고 노조원조차 아니었다. (당시 회사는 입사 후 1년 동안 노조 가입을 시켜주지 않았다). 노조 선배들도 관행이라며 이 문제로 목소리를 내기 꺼려했다.


신생을 표방하는 노조는 챙길 게 많았고 힘이 없었다. 챙길 게 없고 힘이 있어도 목소리를 키웠을지,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변명을 하자면 무언가를 하긴 해왔다. 자그마한 청원 기회라도 올라오면 미소를 비롯한 비정규직 문제를 꼭꼭 정리해 올렸다. 그러나 다른 의견들과 함께 이 문제는 묵살됐다. 뒷말조차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청원했다는 사실마저 잊혀질 정도로 내 의견은 사라져버렸다.



무언가를 더 할 수는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가능했다.

그러나 큰 손해를 보아야 했다. 피켓을 들거나 공개석상에서 발언을 하거나.

여튼 무언가 보이는 행동을 해야 했고, 집단행동이 필요했다.



그런데 비겁하게 무서웠다. 1년도 못 채운 내가 앞서 행동하면 앞으로 남은 회사생활을 어떻게 할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계약 만료 사실을 알려주던 미소는 나에게 이런 말을 덧붙였다.


"어쩔 수 없지 뭐ㅋㅋ 세상이 다 그런걸 ㅋㅋ"




잔인하게도 세상의 톱니바퀴는 참 잘도 돌아갔다.

수 년이 흐른 지금, 회사를 나간 미소는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연락이 되지 않는다.

그 때, 미소의 말을 듣고 난 다시 한을 생각했다.

너가 무너지지 않았다면, 지금 어떤 선택을 했을까.



-계속-



너의 그 한 마디 말도 그 웃음도
나에겐 커다란 의미
너의 그 작은 눈빛도
쓸쓸한 뒷모습도 나에겐 힘겨운 약속


너의 모든 것은 내게로 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되네

슬픔은 간이역에 코스모스로 피고
스쳐 불어온 넌 향긋한 바람
나 이제 뭉게구름 위에 성을 짓고
널 향해 창을 내리 바람 드는 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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