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자는 기억 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누군가가 '변'을 당해 '사망'하는 사건이라면 모두 변사라고 부른다. 반대말은 자연사다. 자살과 타살, 돌연사와 의문사 등 꽤 많은 죽음이 변사라는 단어에 묶인다.
변사가 터지면 경찰은 움직인다. 노화로 돌아가신 노인이라도 경찰은 반드시 현장에서 체크해야 한다. 변사가 터지면 수습지가도 움직인다. 사건 사고를 챙겨야 하는 수습에게, 자연스럽지 않은 죽음만큼이나 정석적인 사건 사고는 없다.
수습이란 글자를 달고 다니던 시기에는 여러 죽음을 전해들었다. 눈 앞에서 죽음을 본 적은 없고 취재만 했으니 전해들었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경찰서를 떠돌면서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이 죽고, 또 생각만큼 많이 죽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함게 깨달았다. 자살은 정말 많고 타살은 꽤 적다. 한국, 특히 서울의 모습이었다.
라인(취재 경찰서 구역)마다 다르지만 당시 나는 정말 한가한 라인에 배치받았다. 유독 사건 없는 경찰서를 은어로 절간이라 부른다. 당시 내 라인은, 어느 경찰의 표현에 의하면 "절간 돌아다니며 도 닦는" 공간에 가까웠다.
평화로운 절간에서 자살 변사 사건이 터졌다. 30대의 여성이 목을 메고 죽었다 했다. 네다섯 시간 동안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사망자에 대해 알아봤다. 사건 현장을 돌아다니며 이웃들의 초인종을 누르고, 당연하게도 문전박대 당하는 동안에도 내가 예상하는 그 지시만은 떨어지지 않기를 바랬다. 그러나......
"장례식장에 가보자. 유가족 접촉해봐."
어찌저찌 장례식장을 알아냈다. 택시를 타고 장례식장 이름을 말하니 택시 기사는 나를 흘긋 쳐다봤다. 검은 색이라고는 없었던 나의 복장. 피곤하지만 슬프진 않은 표정. 서울 외곽의 한 장례식장에 내렸다. 대낮이었다.
내가 장례식장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뻔하다. 30대 여성이었던 변사자를 찾아야 했다.
사망자의 시간이나 나이대 등으로 사망자를 추리해야 한다. 운이 정말 좋다면 경찰이 사망자의 성씨를 알려준다. 고인의 장례식장 로비 앞에 고인의 사진과 가족관계가 뜨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장례식장을 헤맬 필요가 없이 바로 유추가 가능하다.
나는 운이 좋진 않았다. 로비엔 사진이 뜨지 않았고 나는 성씨를 알지 못했다. 성씨를 모르는 사망자를 찾아내기 위해선 장례식장을 그야말로 빙빙, 돌아다닐 수밖에 없다. 로비에 있는 발인 시간을 통해 일차적으로 빈소를 추려낸다. 다음으로는 직접 돌아다니며 영정 사진을 확인해 보아야 한다. 영정 사진과 나이대를 맞춰보며 고인을 찾아내는 과정이다.
장례식장의 빈소들을 돌아다니는 이방인같이 느껴졌다. 상복을 입은 사람들 사이에 큰 가방을 메고 이곳 저곳을 기웃거렸다.
힘들었다. 안 힘들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도저히 감정을 공유할 수가 없었다. 울음을 터뜨리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가족들 근처에서 이야기를 엿들으며 저 사람이 내가 찾는 고인이 맞는지 확인해야 했다. 영정 사진을 넋 놓고 바라보는 가족들 앞에서 '왜 죽었는지'를 기어코 물어봐야 했다.
엿듣고 눈치보고 정보를 짜맞춰서 겨우 내가 찾던 고인을 찾아냈다. 고인의 빈소에는 화환이 없었다. 가족들 몇 명이 울고 있었다.
유족 취재가 처음은 아니었다. 성공한 경험도 있다. 다만 자살자 유족 취재는 처음이었다. 여러모로 알아본 바로는 자살의 이유와 가족 관계가 얽혀 있었다. 나는 그 가족에게 접근해야 했다.
40대 남성이 부은 눈을 하고 빈소를 나왔다. 담배를 태우러 나가는 듯 싶었다. 심호흡을 볓 번이나 하고 쭈뼛거리며 다가갔다. "저기 혹시 A씨 지인이신가요." 부은 눈의 남성은 곧장 물어왔다 "누구신데요." 경계가 가득한 말 뒤에 내가 해야 할 말은 또 다른 경계를 만들어내는 말일 뿐이었다.
"기잔데요... 고인분의 이야기를 조금만 듣고 싶어서 감히 찾아왔습니다."
그 한 마디를 꺼내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 때 내 표정은 어땠을까.
남자는 목청을 높였다. 당신이 어떻게 알고 여길 왔는데, 왜 왔는데, 건질 것도 없고 우린 인터뷰 안 한다. 우리 일이다. 나가달라. 목소리가 높아지니 빈소에 있던 몇 안 되는 가족들 역시 고개를 내밀었다. 누구래. 기자래. 아니 이걸 어떻게 알고 왔대. 수군수군대는 소리. 옆 빈소까지 날 바라보는 상황이 그저 싫었다.
인간일까?
장례식장에서 가장 많이 고민한 문장이다. 사실, 이 일을 시작한 후 저 문장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정보를 알아내는건 분명 재미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어느 정도의 인간성을 도려내야만 하는 작업이다. 전부는 아니고 꼭 얼마 만큼만. 전부를 도려내면 사람을 대하는 일을 잘 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그게 소위 말하는 냉철한 시각이 아닐까, 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경지에 오를 수 없었다. 정보를 알아낸다는 재미와 잔인하다고 느껴지는 고통이 공존했다. 그래서 장례식장 벤치에 우두커니 앉은 나는 또 스스로 되물었다. "인간일까?"
"인간이 못 되어도 기자는 되어라." 어디서 본 문장이더라.
고개를 꾸벅 숙이고 도망쳤지만 장례식장 밖으로 도망가진 못했다. 지시가 전부인 삶을 살고 있었으니 어찌 됐든 뭔가 시도는 해보아야 할 것 같았다.
입구에서 쭈뼛거리다 보니 목청이 높아졌던 남성과 몇 번이고 마주쳤다. 그 남성은 나를 아예 외면해버렸다. 빈소에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는 지루한 작업을 이틀 동안 반복했다.
누구는 등을 돌리고, 누구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말하고, 누구는 애초에 말을 붙일 수 없도록 가버린다. 사람을 많이 만난 것도 아니다. 고작해야 대여섯 명. 그렇게 아주 조금씩 정보를 알아갔지만 핵심에는 접근할 수 없었다. 힘들어하면서도 장례식장 밖이나 빈소에서 멀찍이 떨어지진 않았다. 그게 자랑이 될 수 있을까.
수습 기간은 전반적으로 힘들었다. 지금은 수습이 아니지만, 수습 기간 중 가장 힘든 게 무엇이냐고 누가 물어온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장례식장 유가족 취재"라고 이야기한다. 유가족 취재 과정은 나에게 스스로 "인간일까" 란 질문을 가장 많이 던지게 했다.
죽기 전까지 일면식도 없는 이가 죽음 이후의 삶을 밑둥부터 파고 들어간다. 장례식장 취재에 성공하면 단신 기사에 한 줄을 더 붙일 수 있다. "A씨는 생전 XXX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이 한 줄을 덧붙이기 위해서는 장례식장의 이 모든 과정에 뛰어들고, 성공해야 한다. 저 한 줄의 가치와 과정이 이토록 무거울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날이 더웠다. 당시 며칠 동안 빨지도 않은 옷에는, 장례식장 특유의 향 냄새가 오랫도록 남아 있었다. 아직까지도 망자는 나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