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 하리꼬미 첫날

기자 세계의 은어를 알아간 과정

by 밍경 emb
송파경찰서 2진 기자실



1.사쓰마와리, 그리고 하리꼬미


사쓰마와리는 '경찰서를 돌아다닌다' 는 말의 일본어다. 수습이 각자 맡은 경찰서 나와바리(구역)을 돌아다니며 사건을 챙긴다는 말인데, 흔히들 '마와리' 로 줄여 말한다. 마와리가 '돌다'는 의미다 보니 경찰서만을 돌아다니진 않는다. 경찰서가 메인이 되긴 하지만 대학도 가고, 시민단체와 소방서도 간다.

하리꼬미는 사쓰마와리 안에 들어가 있는 하나의 방법이다. 경찰서에서 살면서 하루 온종일 사건을 챙긴다는 의미다. 여기서 '산다'는 건 거주를 의미한다. 경찰서 2진 기자실에 짐을 내려놓고 일 주일, 이 주일에 한 번 정도 집에 간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그야말로 몸을 잠시 눕힐 수 있는 곳이다. 내부에 화장실도 없으니 씻지도 못한다. 다시 말하면, 숙소로서의 최소한의 기능만 할 뿐 인간다운 생활을 못 한다.



이 하리꼬미와 사쓰마와리는 각자의 라인 안에서 이루어진다. 수습은 각자 라인을 할당받는다. 자신이 맡은 경찰서 몇 개(보통 4-5개)를 묶어서 '~라인'이라고 부른다. 라인은 2주-한 달 사이에 바뀐다. 내가 처음 맡은 곳은 강남 라인이었다. 강남 라인의 2진 기자실은 송파경찰서와 서초경찰서에 있었다.

그 마와리와 하리꼬미를 내가 처음 하게 된 날의 새벽은 제법 쌀쌀했다. 새벽 세 시였나. 최소 몇 주간 집에 전혀 들어갈 수 없다는 말에 가방 빼곡히 짐을 챙겨서 집을 나섰다. 네 시쯤 되서야 송파경찰서에 도착했다. 기자실 문이 열리지 않아 일단 입구에 가방을 세워두었다. 그리고 새벽 네 시 십오분, 송파경찰서 형사당직실 앞에 섰다.




2. 형사과 당직실


처음 들어간 형사과. 형사과는 당직제로 24시간 돌아간다.


처음 만난 형사들은 솔직히 무서웠다. 안 무서울 리가 있나. 영화에서 나오던 형사들의 인상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형사들은 정말 마동석마냥 몸집이 크고 무섭게 생겼으니까.

"어쩐 일로 오셨어요"
"어.. 수습기잔데요"

벌떡 일어난 형사들이 에이..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털썩 주저앉았다. 환대를 받으리라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박대는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나는 곧이어, 수습기간 내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말을 들었다.

"사건 없어요, 몰라요, 나가세요.

모든 언론대응은 과장님 통해 일원화 되어 있어요. 이렇게 와 봤자 아무 것도 못 얻어요"


어버버버 하다가 "네..." 라는 모기만한 소리를 내뱉었다.

그대로 형사당직실을 나왔다. 아, 원래 이렇게 문전박대를 당하는 건가. 아무 것도 건지지 못하는 게 당연한 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리꼬미를 처음 시작한 날, 선배는 아침에 무조건 형사당직실과 교조계로 가보라 했다. 형사가 실패했으니 교조라는 곳을 가보자. 그런데 교조계는 또 어딜까? 한참을 헤매다가 그 곳이 교통사고를 담당하는 교통조사계라는 사실을 알았다.





3. 교통조사계


교조계(교통조사계의 줄임말)로 들어가는 출입구는 경찰서 정문이 아니었다. 뺑그르르 돌아 다른 출입구로 들어갔다. 그 곳에는 차단유리막이 없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교통조사계는 다루는 사건의 특성상 형사과보다 훨씬 더 자유로운 출입이 가능했다.


"무슨 일이시죠"
"수습기잔데요..."
"처음 보는데... 새로 왔어요?"
"네 이제 시작했습니다"
"며칠짼데요?"
"오늘 처음 왔는데요..."
"하하하 완전 초짜네! 그래서 쌩쌩하구만. 이리 와 봐요"


교조계는 형사과보다는 친절했다. 어버버 하고 있는 모습이 대번에 초짜임을 알려줬나보다. 교조계 팀장은 어디서 왔냐, 무슨 언론사냐 등등의 말 몇 마디를 나누더니 오히려 먼저 나에게 물어봤다.

"사건 필요하죠?"
"네..네!!"
"사건 하나 줄게요, 주차후 뺑소니 사건인데..."

줄줄 불러주는 처음 듣는 정보들. 무슨 정보가 필요한 지도 모르니 일단 받아 적었다. 한 삼 일이 지나고서야 알았다. 그렇게 아침에 던져 주는 사건들은 수습들이 '면피'라고 부르는 존재였다. 뉴스거리 안 되는 사건들이지만 첫 보고 때 전화로 주절주절 말할 수 있는 무언가를 의미했다.





4. 5시 첫 보고


회사마다 다르지만 나는 하리꼬미 기간, 새벽 다섯 시에 첫 보고를 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강남 라인 경찰서 네 개를 다 돌지 못 했다. 일진 선배에게 처음 전화를 걸어서 보고를 했다.

"네 선배 안녕ㅎ.."
"네가 뭐야. 다시 해."

전화 하면 무조건 "여보세요"나 "네"가 처음이니, 당연히 그렇게 말 하면 될 줄 알았지만 선배는 내 말을 중간에 잘랐다. 그 후에 "00라인 수습 000입니다." 로 시작해서 보고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첫 보고가 끝나고 또 당연히 혼났다.

"소방서 전화해서 화제 사고 체크 해"

소방서? 내가 아는 소방서는 119뿐인데. 소방서 체크를 도대체 어떻게 하는지 몰라 119 번호를 눌러 전화를 걸었다. 당연히 소방서에서는 짜증을 내며 바빠 죽겠는데 왜 이리로 전화하냐고 타박했다. 매달릴 곳은 먼저 기자가 되어 지금 마와리를 돌고 있는 타사 수습뿐이었다.

그 수습에게 카톡을 보냈다. 새벽 6시도 안 된 시간이었지만 그 수습도 마와리를 도는 기간인지라 당연히 깨어 있었다. 그 수습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타사 수습은 소방 체크는 상황실을 통해서 해야 한다는 사실부터 초짜가 알아야 할 온갖 정보를 알려줬다. '응 그리고?' 라는 카톡을 쉴 새 없이 보내며 정보를 일일히 머리에 입력했다.






5. 1시 막보고


정신 없던 하루가 지나갔다. 5시 첫 보고를 시작으로 두 시간마다 선배에게 전화로 보고를 하고, 보고 내용을 카톡으로 정리해 올렸다. 그 기간 동안은 계속 경찰서를 돌아다녀야 했다. 돌아봤자 사람 응대하는 법도 모르던 내가 무언가를 건질 리는 만무하다. 그저 돌아다니며 형사들이랑 눈인사나 할 뿐이었다. 돌려 말하면, 두 시간마다 혼나는 것이 일상이었다.

저녁이 되자 회사로 돌아가 기사 교육을 받았다. 교육을 마치고 늦은 밤, 다시 강남 라인으로 돌아왔다. 약 세 시간 동안 다시 경찰서를 돈 후 1시 막보고를 해야 했다. 아침 세 시부터 일어나 있었으니 당연히 몸은 죽도록 피곤했다. 그럼에도 다시 꾸역꾸역 택시를 타고 경찰서를 돌아다녔다. 이 날 택시비만 8만 원이 깨졌다고 기억한다. 그리고 하리꼬미 기간 내내, 하루 택시비는 최소 8만원에서 최대 12만원 사이를 오갔다.

막보고 전화를 마치자 온 봄이 바스라지듯 피곤해졌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첫 날은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과 같았다. 수습이 챙겨야 할 기본적인 것들도 하나도 챙기지 않은 채 말 그대로 경찰서 정문만 찍고 돌아다니기만 했으니까. 말 그대로 맨 땅에 헤딩을 하며, 진은 진대로 다 빠진 채 첫 하리꼬미를 마쳤다.





6. 그리고 짧은 휴식


첫 마와리를 도는 하루 종일 내 짐은 경찰서 로비 데스크 앞에 있었다. 교대 경찰관들이 돌아가며 내 짐을 지켜줬다(민폐가 따로 없다). 새벽 한 시에 피곤한 몸으로 짐을 챙긴 후 경찰서 뒤쪽 컨테이너 건물 비슷하게 생긴 기자실로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문은 열려 있었다.

문을 열자 보인 2층 침대들. 바닥에는 온갖 짐이 어지러이 놓여져 있었다. 정신 없이 자고 있던 수습 한 명은 문소리가 들리자 부스스 눈을 떴다. 나는 먼저 "안녕하세요" 라고 말을 걸었지만, 그 수습은 세상 죽어가는 목소리로 "네" 라는 말과 함께 이불을 그대로 뒤집어 써버렸다.


한 일 주일이 지나고서야 알았다. 그 수습은, 그러니까 선배 수습은, 도저히 말이고 자시고 할 기운조차도 다 빠져버린 방전 배터리였다. 씻고 먹는 시간보다 3분, 10분 더 자는 시간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람이었다.

아직은 그 모습을 이해하지 못한(그리고 곧 이해해버린) 선배 수습의 지쳐 나가떨어진 모습을 4초 정도 바라본 후 나 역시도 곧장 침대로 직행했다.


청바지차림 그대로 침대에 누운 채 이불을 덮자마자 곧바로 잠들어버렸다. 다음날 새벽 세 시, 그러니까 앞으로 한 시간 사십 분 후의 알람을 맞춰놓기만 하고 말이다. 하리꼬미 첫 날은 그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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