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쓰는 포항 지진 재난 현장

by 밍경 emb
포항 흥해실내체육관. 사진 한겨레


2017년 11월 15일 포항시 북구에 구모 5.4의 지진이 발생했다. 1500명 남짓한 사람들은 이재민이 되었다. 이재민은 인근 주민센터와 학교 체육관으로 피난을 갔다. 여기까지가 글자로 접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당장 다음날부터 여의도가 시끄러워졌다. 수능까지 연기될 정도로 큰 사건이었다. 각 당의 지도부는 모든 행사를 취소하고 포항으로 갔다. 민주당의 원내대표와 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의 대표들은 KTX 기차표를 예매했다. 회사에서 따라가라는 지시를 받았다. 서울역에서 KTX 특실로 가는 국회의원 몇 명을 보았다. 회사에서는 일반실 금액을 지원해줬다.

포항역에 내려 흥해읍으로 갔다. 택시를 타고 재난대책본부가 위치한 동사무소에 내렸다. 마당에 주황색 간이 천막이 쳐져 있었다. 아저씨 한 분을 잡고 물어보니 각당 지도부가 시간차를 두고 이 곳에서 재난상황 브리핑을 듣는다고 했다. 천막 중앙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양복을 차려입은 중년의 남성이 보였다. 그 남자는 두세 명의 보조를 받으며 원고를 검토하고, 목을 풀고 있었다. 포항 시장이라 들었다.

더불어민주당의 원내대표가 가장 먼저 도착했다. 작업복 차림이었다. 함께 온 국회의원들과 주황 천막 아래 앉아서 관련자들에게 재난 피해 상황을 들었다. 대부분 경청하는 분위기였다. 진지한 질문도 나왔다. 정쟁(政爭)을 불러일으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나를 포함한 취재진들은 정신없이 타자를 두드렸다.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레시가 터져나왔다. 장소가 바뀌면 영상취재 기자들의 소리 없는 몸싸움이 따라왔다. 잡음은 ENG 카메라에 그대로 들어갔다.

다른 당의 지도부가 줄지어 온다고 했다. 브리핑 내용은 뻔해 걸어서 3분 거리인 흥해읍체육관으로 미리 넘어갔다.




흥해실내체육관은 이재민 다수가 모여 있는 장소였다. 살던 집이 무너진 사람부터 안전을 위해 잠시 피신한 가족들까지 다양했다.
넓은 체육관에 펼쳐져 있는 돗자리들이 보였다. 한 가구당 돗자리 하나 혹은 두개가 배정된 듯했다. 침낭은 없고, 대신 이불과 포대기 몇 개가 각 돗자리당 놓여 있었다. 한 집의 사유품이 종이박스 안에 담겨 있었다. 라면 등 구호품이 가장 윗칸에 담겼다. 가장 먼저 손이 가서였다.
몸을 씻을 공간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장소에서 나는 쿱쿱한 냄새는 아직 나지 않았다. 재난 다음날이여서 그랬을테다. 무대 위에는 휴대폰 급속 충전 서비스와 간이 의무실이 차려졌다. 취재진들도 그 곳에 짐을 풀렀다.

민주당의 지도부가 가장 먼저 체육관에 도착했다. 십수명의 취재진과 함께였다. 돗자리가 깔린 체육관은 길이랄 게 없었다. 여당의 원내대표가 걸어가니 카메라와 펜기자는 그 모습을 취재하기 위해 신발을 벗거나 신은 채 주인도 모를 돗자리 위를 뛰어다녔다. 누워 있는 사람들은 하루 만에 익숙해졌다는 듯, 생각보다 표정 변화가 없었다. 돗자리 위는 자신들의 생활공간이었다.




지도부는 어느 돗자리 위에 앉은 노인 가족에게 다가갔다. 가족을 빙 둘러앉은 국회의원들에게 카메라 플레시가 쏟아졌다. 원내대표는 포토타임이 끝날 때까지 이재민의 손을 놓지 않았다. 몇 마디 말을 주고받았다. 노인은 눈물을 훔쳤다.
지도부 사이에 난입해 "내 평생 재산 모아 산 집이 와르르 무너졌다"며 울분을 터뜨린 남자도 있었다. 원내대표는 "잘 해결하겠다"고 다짐했다. 화를 내며 우는 남자와 원내대표의 슬픈 표정이 한 프레임에 잡혔다. 그 후 원내대표는 아이가 있는 가족에게로 자리를 옮겼다. 아이를 쓰다듬고 손을 잡고, 얼마나 무서웠냐고 말했다. 아이들은 이 사람들이 누군지를 모르니, 당연하게도 영문을 모르는 표정이었다.

이런 식의 '위로행보'는 초당적으로 이루어졌다. 조금 도착한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정의당 대표와 원내대표도 만난 가족만 다를 뿐 흡사한 행동을 했다. 자유한국당 대표는 잠시 무대 위로 올라가 손짓으로 마이크를 요청했다. 마이크가 올라오자 곧장 움켜잡은 대표는 "여야가 합심해서 이 재난을 극복하겠다"고 연설했다. 박수를 받았다. 지역구 국회의원은 자유한국당 소속이었다. 여담이지만, 세 달 후 자유한국당 대표는 밀양 화재현장을 찾아 “정부가 아마추어라 예방행정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기사를 썼다. 처음에 "시름에 빠진 이재민을 위로"했다고 썼는데, 틀린 말은 아니지만 쓰기 싫어서 뜸을 들였다. "시름에 빠진 이재민이 모인 장소에 찾아가 이야기를 들으려 했다" 라고 쓰고 싶었다. 생각해보니 문장이 길었고 정형화된 표현이 아니었다. 결국 원래 문장대로 썼지만,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름에 빠진 이재민을 위로하려면 재난 현장에 찾아가지 말았어야 한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서울에서부터 따라온 당직자들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도부를 보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 모습 자체가 내 눈에는 시름에 빠진 이재민들을 방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이재민이 아니어서 삐딱하게 해석한 걸지도 모른다.

아마도 당 지도부들은 이재민들이 정말 안타까웠을 것이다. 지도자로서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했을 테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조금의 진심은 묻어났다. 그러나 재난 현장에 찾아가서 만드는 '그림'과 소위 말하는 표 계산을 연동시키려 하는 정치적 본능 역시 묻어나왔다.


본능이라는 표현을 썼다. 중립적인 단어다. 표 계산은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몇 개월동안 바라본 정치에서 표 계산은 숨 쉬는 것처럼 아무런 위화감 없이 모든 행동과 결단에서 이루어졌다. 그걸 그렇게 나쁘게만 보진 않는다. 어쩌면 표 계산이야말로 정치의 본질이거나, 백번 양보해 정치의 외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대통령과 총리도 포항 지진 현장을 방문했지만, 내가 따라가지 않았으니 구체적인 모습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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