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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경 emb Oct 22. 2020

스물여덟 아니 아홉의 거울

성숙은 멀고 혼돈은 가까웠다


부산스럽게 나온 출근길에 거울을 봤다.

피부가 많이 퍼석해졌다. 눈밑이 가라앉았다.

무너진 얼굴이 낯설지 않았다. 거울 건너편서 엄마를 보았다.


이십대 끝자락에서 나이를 곱씹는다.

스물여덟이 되고 빠른을 흐렸다. 한 학년 아래 후배와 친구가 됐고 허물없이 서로를 불렀다.

내년 서른이라는 두려움에서 겨우 애써 벗어났다. 스물아홉 친구들은 면박을 주면서도 씁쓸히 웃었다.


스물넷 입사할 때 한없이 어른 같던 동기가 있었다. 말투마저 멋진 언니 었기에 나는 혼자 동경했다. 언니는 당시 스물여덟이었다. 그토록 여물어 보이던 시간을 나는 이미 넘었다.


내면은 철없는 어린아이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헤매는 사람이었다.


무척 소중했던 사람과 헤어지고 몇 달이 흘렀다. 헤매고 헤매다가 손을 놓기로 선택했다.

우리는 분명 무언가가 삐걱였다.  무턱대고 기다리기에 나는 이제 늙어간다.

너는 말을 잇지 못했고 나는 자꾸만 눈물이 났다. 고개 숙인 우리의 모습은 누워버린 억새 같았다.

하필이면 가을이라 자꾸 네가 생각났다.

계절은 가는데 왜 마음이 계속 버티는지. 무슨 기대로 이렇게나 처절하게 그러는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성숙은 멀고 혼돈은 가까웠다. 가까운 것은 친숙하고 친숙하면 불나방마냥 끌렸다.

정신을 차리면 나는 늘 혼돈행 에스컬레이터에 끌려 타서, 멀뚱멀뚱 엄마를 향해 가곤 했다.

엄마의 얼굴엔 잡티가 가득했고 보통은 쉬지 않았으며 가끔은 무기력했고 대개는 조용히 잠을 잤다.

엄마가 손에 닿을 만큼 가까워졌다. 나는 조용히 눕던 엄마의 등이 자꾸 생각이 났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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