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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경 emb Dec 25. 2020

굶는 엄마는 고개를 숙인다

이주를 굶은 김미숙은 매일 저녁 팻말을 들고 천막 밖으로 나온다.

이 이야기는 정치와 진영이 아닌, 두 인간의 간절함을 애써 이해하려는 노력이자 기록이다.



겨울은 늘 그랬지만 유난히 건조하고 시리던 날, 아들을 잃은 엄마는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또 다른 아들을 떠나보낸 아빠도 단식에 동참했다. 엄마의 아들은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기계에 머리가 끼어 죽은 김용균이다. 아빠의 아들은 비정규직 정리해고에 반발했다가 따돌림을 당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한빛이다.



국회 본청 앞 땅바닥에 앉아 이들의 최후통첩을 받아쳤다. "어제 용균이 얼굴을 못 본 지 2년째 되는 날이었다". 김용균의 엄마 김미숙은 말했다.

"용균이로 인해 만들어진 산업안전법으로는 계속되는 죽음을 막지 못한다. 세상은 변한 게 없는 것 같다. 끼어 죽고 떨어져 죽고 질식해 죽고 감전되고 과로로 죽고 화약약품에 중독되어서 죽는다. 너무나 많이 죽고 있다."


김미숙은 숨을 고르고 덧대었다. "그만 좀 죽었으면 좋겠다. 보고 있기 너무 괴롭다. 국회를 찾아가 의원들에게 법 좀 만들어 달라고 간절히 이야기했다. 때로는 들리지 않을 듯해 소리 높여 답답한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도 법이 논의가 안 된다고 한다. 애가 타고 답답해서 어쩔 줄 모르겠다."


울먹이고 있었다. "저는 평생 밥을 굶어본 적이 없어서 무섭고 잘할지 걱정된다."

사람들이 고개를 숙였다. "자신을 갉아먹는 투쟁방법이라 다른 사람도 뜯어말렸는데 이제 제 스스로 택한다."

김미숙은 떨지 않았다. "제가 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다. 나의 절박함으로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이다."


이한빛의 아버지 이용관은 예순이 넘었다.

"백 명보다 소중한 가족을 잃고 살아남은 가족에게 무슨 힘이 있을까. 그저 모든 사람이 부서져버린 저희와 같은 가족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는 나라를 위해." 그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래서 저희도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마지막 선택을 한다."


김미숙과 이용관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즉각 제정 촉구 단식자'라는 글자를 갑옷처럼 입었다. 이어서 국회 본청 오른쪽 돌바닥에 앉아 여의도를 바라본 뒤 눈을 감았다.

진보 정당의 원내대표도 함께 곡기를 끊었다. 그 정당의 의원들과 대화를 나누며 나는 이번 주말부터 한파가 몰아친다는 일기예보를 곱씹었다.


출처 뉴스핌



본청 앞에 초록색 천막이 생겼다. 유가족의 의사가 강해 노숙 투쟁을 하기로 했다고, 진보 정당의 대표는 걱정스럽게 말했다.

단식 4일 차에 잠시 짬이 생겼다. 천막 안으로 들어가 난로를 쬐고 있던 김미숙과 이용관을 만났다. 쭈뼛거리는 나에게 그들은 어서 와 앉으라고 손짓했다. 함께 둘러앉았다.


아직은 버틸만하다고 김미숙은 말했다.


이용관에게 이한빛의 이야기를 꺼냈더니 김미숙이 더 큰 관심을 보였다. 당신이 기억하는 이한빛은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 나는 너무 작은 일이라 말하기조차 민망하다고 답했다. 김미숙은 그런 작은 추억이 가장 소중하다고 했고 그래서 나는 이한빛과 나눈 고양이 이야기, 읽은 책, 사진을 찍던 모습 등을 설명했다.

김미숙은 웃었고 이용관은 놀랐다. 그들은 잠시 먼저 간 아이들의 대화를 나눴다.

나는 자꾸 눈물이 나려 한 데다 단어가 입안을 맴돌아 그저 힘내라는 말만 계속 말했다.


출처 연합뉴스

예순을 넘은 이용관의 얼굴빛이 자꾸만 까매져갔다.

이용관은 열 걸음 앞 본청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했다. 코로나 방역 때문에 외부인에 대한 조치는 한층 엄격해졌다.

이용관은 그래서 천막을 나오고, 계단을 내려가, 내리막길을 따라 걷고, 차도를 건너서, 화단을 지나, 회전문을 통과하고, 열을 재고, 방문증을 쓰고, 왼쪽으로 꺾고 나서야 화장실에 갈 수 있었다.



턱뼈가 드러나기 시작한 김미숙은 틈날 때마다 찾아오는 유튜버, 시민단체, 기자 등을 상대했다. 그리고 용균이와 중대재해법, 노동안전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열흘이 넘었지만 김미숙의 목소리는 또렷했다. 나는 감히 김미숙의 삶과 아픔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가 얼마나 단단해졌는지는 뼈를 깎도록 체감했다.


단식 열흘이 되기 며칠 전. 국회에서는 여당이 말하는 '민생법안' 처리를 위한 절차가 야당의 동의나 참여 없이 돌진하듯 진행됐다. 각종 회의가 매일같이 열렸다.

'민생법안'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포함됐지만 김미숙과 이용관이 원하는 중대재해법은 들어가지 않았다. 논란과 이견이 많고 과잉처벌 우려가 있다, 고 여당 의원들은 난처한 표정으로 반복했다.

출처 연합뉴스

그래서 김미숙은 피켓을 들고 회의장 앞에 찾아갔다. 의원들이 입장할 때마다 "올해 안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해 주세요"라고 외치고 호소했다.

의원들은 대개 고개를 숙이고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다. 이들 중 대다수는 고 전태일 열사와 이소선 열사의 기일날, 페이스북에 이들의 사진을 올리며 "이소선은 그저 한 명의 어머니가 아니라 훌륭한 노동운동가셨다. 그 정신을 본받겠다"라고 썼다.


아들을 잃고 열흘 가까이 굶은 김미숙은 김용균 2주기 추모제에 가지 않았다. 대신 국회에서 밥을 굶은 김미숙은 이런 편지를 보냈다.

 "저는 지금 국회 내에서 노동자를 살릴 수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연내에 제정되기 위해 압박할 수 있도록 들어와 있다. 지금도 방치된 현장에서 생사의 기로에 서서 일하는 또 다른 용균이들을 생각하면 하루빨리 법이 제정돼야 한다. 비록 태안 추모제에 참석 못했지만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중대재해법 심사를 위한 법안소위가 단식 14일 만에 열렸다. 앞으로 이런 소위를 한 번 더 열고 전체회의를 열고 본회의를 해야 하는데 그게 언제쯤 일지는 모른다고, 여당 의원들은 나에게 말했다.

출처 연합뉴스

이날 여당 원내지도부가 농성장을 찾아갔다.

"이제 단식 푸세요" 원내대표가 말하자 김미숙은 "본회의가 통과될 때까지 있을 거예요"라고 답했다.

원내대표는 "본회의가 언제 통과될 줄 아나, 이제 시작되었는데"라고 답했다. 김미숙은 "논의하고 무산된 게 많잖아요"라고 응수했다.

"무산은 안돼요" 그러자 김미숙이 눈을 바로 보며 말했다. "저희가 그걸 못 믿어요."


3분쯤 단식을 중단하라는 설득이 계속 반복됐다. 주로 듣던 김미숙은 이렇게 말했다.

"임시국회 회기 내 법을 처리한다 했잖아요. 그럼 역산을 해서 법사위 날짜를 정하고, 구체적인 안을 가지고 나와야죠. 이렇게 갑자기 나와서 단식을 중단하라 하면 저희는 동의 못하죠."

여당 지도부는 잠시 침묵했다. 원내대표는 해명하듯 덧붙였다. "여하튼 야당이 심의를 거부하는 상태라서 악조건이긴 합니다"


그러자 김미숙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이렇게 말했다.

"여태까지 여당이 다 통과시켰잖아요. 많은 법을 통과시켰는데 왜 이법은 꼭 야당이 있어야 해요? 그 사람들 안 들어오면 여당에서 그냥 해주세요."


모두가 조용해졌다. 지도부가 아주 미약하게 흠칫했다.

목울대가 막혔다. 가장 순수하고 진정성 있는 핵심이었다.


김미숙은 이어서 말했다. "이게 국민이 진짜 바라는 법인데. 민생 법안으로 삼은 건데 어떻게 이걸 가지고 이렇게, 이렇게."


묵묵부답이던 지도부는 "여러 말씀을 듣고 고민하겠다"며 몸을 일으킨 뒤 본청으로 돌아갔다.

원내대표는 향후 일정과 계획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부분 침묵했다.


출처 연합뉴스

이주를 굶은 김미숙은 매일 저녁 팻말을 들고 천막 밖으로 나온다.

싸움을 돕는 사람들과 함께, 퇴근하는 국회 관계자와 의원 향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통과시켜달라"며 허리를 굽힌다.



보름째 밥을 굶는 김미숙과 이용관의 천막을 나는 매일 몇 번씩 오가지만 차마 맨정신으로 지나갈 수가 없다.

죽은 아들을 뒤로 하고 다른 아들을 위해 삶을 전부 바친 이들의 신조는 무엇인가.

나는 이 문장을 여러 번 되씹고 체감하려 노력했지만, 손에 잡히기는커녕 상상하기도 어려워 매번 공허하고 죄스럽다.

한참을 생각해도 자식 잃은 어미의 단식만큼 절실해 보이지는 않는 법안과 공방들을 나는 매일 써야 한다.

국토부 장관의 딸이 유학을 했느니 자원봉사를 대학교 입시에 기재했느니 하는 것들은 물론 중요하지만 어째 나에게는 자꾸 붕 뜬 듯 해, 마음 한편에 허리를 굽히는 김미숙을 자꾸만 불쑥불쑥 떠올린다.

출처 한국일보

차라리 주먹을 쥐고 피칠갑을 하고 드잡이질을 하고 땅을 치며 통곡하는 게 보기에는 훨씬 편할 텐데.

끝까지 스스로를 깎아먹고 버려가는 방법을 택한 부모의 간절함이 너무나도 가슴을 찔러와 나는 자꾸 고개를 숙이게 된다.


2020번째 성탄절. 김미숙과 이용관은 지금도 국회 본청 앞에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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