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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경 emb Oct 12. 2020

남겨진 사람은 운다

설움이 조각낸 문장이었다. 누나는 끝내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어느 여름의 중순에 쓴 일기를 여기에도 옮긴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11시 40분, 점심시간을 코앞에 두고 기자회견을 챙기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오랜만에 샐러드나 먹으며 책을 보는 편한 점심자리가 되지 않을까 했었다. 끼어든 일정은 솔직히 말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빨리 끝나기를 바라며 기자회견장으로 이동했다. 카메라 기자들을 위한 높은 단상 구석에 걸터앉았다. 곧 회견장으로 국회의원 7명과 열 명쯤 되는 사람들이 들어왔다.


코로나19로 격무의 시달리는 택배기사의 처우를 개선하라는 촉구성 기자회견. 나에게 그건 과로사로 세상을 떠난 몇 명의 택배기사를 향한 정성어린 레퀴엠처럼 느껴졌다.

묵념으로 시작한 회견, 냉철한 정치인들은 건조하지만 또 능숙하게 자기의 감정을 담아내 회견 앞부분을 채웠다. 이제서야 이 자리에 서서 무척이나 송구하다는 한 원내대표 출신 다선 의원의 말이 정치적 수사에 그치지 않기를 나는 잠시 바랬다.


이어서 단상에 오른 유가족은 울었다. 말을 시작하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울고 있었다. 가슴으로 눈으로 목젖으로 몸뚱아리로 표정으로 눈썹으로 머리카락으로 내뱉는 침묵의 절규가 기자회견장을 가득 채웠다. 산만하고 정신사나운 게 유구한 전통인 국회 회견장은 순간 조용해졌다.

감정은 전파된다는 말 낭설 아니었다. 마스크로 가렸어도, 말소리없어도 느껴지는 고통은 메마른 날 사로잡서. 나는 부러 열심히 노트북 화면만 쳐다보았고 냉철한 표정을 지키려 노력했지만 속으로는 그저 동요하고 또 흔들렸다.


동생을 떠나보냈다는 누나의 문장은 짧았다.

"하루만 쉬면. 동생은 지금. 살아있을 겁니다. 저희는 생각합니다."

설움이 조각낸 문장이었다. 누나는 울먹일지언정 끝내 눈물을 흘리진 않았다.


남편을 깨우지 못한 아내의 손은 떨렸다. 다음날 딸아이를 데리고 근교라도 놀러가자며 들떠 잠든 택배기사 남편은 다음날 딸의 손을 잡지 못했다고 한다.

저녁과 심야, 새벽과 아침, 그 어느 순간에 남자의 숨은 끊겼을까. 여행가방이라도 챙겨야 하냐며 설레했다던 그는 행복했을까. 남겨진 자는 저토록이나 서러운 목소리로 가슴을 부여잡고 카메라 앞에 서있는데.


정리하지 못한 아내의 부스스한 머리카락이 보였다.

자신의 사연을 눌러 말한 아내는 마지막에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가 내쉬고, 조금 오래 문장을 가다듬고는 결국 말했다.

"남겨진 이들이 하루라도 쉴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남겨진 이들의 울음이 얼마나 버석거리는지.  그러니까 울부짖을 힘조차 없 탈수된 산 자의 존재들은 얼마나 치열하게 그 자리에 버티고 서있는 건지. 겹겹이 쌓인 한이 결국 그들에게 기자회견, 공론화, 언론노출이라는 극약에 손을 뻗게 했을 텐데, 극약이 피부로 스며드는 억겁의 시간을 그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견디는 것일지.


독약이라도 만들 수 있는 약사가 되면 그걸 약으로 바꿔 써가며 이들의 퍼석거림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대학교를 다니던 나는 그렇게 생각을 했었다.

이제서야 돌이켜보면 손에 짚이는 건 "남겨진 사람은 운다"라는 짧고 건조한 문장밖에 없다.

새벽시간 상하차 노동은 일절 보상받지 못한다는, 이 처절한 현실을 최대한 담아달라는 이의 호소를 꾹꾹 눌러 문장을 썼고 기사로 내보냈다.

비겁하게도 나는 함께 울지는 못했고 그래서 최대한 묵묵히, 나의 극약만큼은 선약이 되길 바라며 못다한 말을 여기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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