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밍경 emb Feb 03. 2020

"타다가 없어지면 대리운전을 해야죠"

어떤 가장에게 '최선'은 애초에 선택지가 아니었다.

2020년 1월 1일에는 출근을 했다.

하는 일이 뉴스를 만드는지라 늘 있던 일이었다. 회사 차원에서 단체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메뉴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하나같이 떡만두국을 골랐다.

테이블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선배가 메뉴판을 집었다. 다른 테이블의 눈치를 보더니 주문에 감자전과 만두를 추가했다. 50을 넘은 나이의 선배는 그렇게 새해 점심을 먹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점에 별 감흥은 없었다. 1월 1일 퇴근 후에는 몸이 조금 더 아팠고 거짓말처럼 생리를 시작했다. 

끙끙대다 진통제를 털어넣고 죽은듯 쓰러져 잤다. 1월 2일에도 출근은 해야 했다.





1월 초 광화문 근처에서 저녁약속이 있었다.  분에 넘치게 비싼 소고기를 얻어먹었다. 한 점에 몇천 원은 할 것 같던 꽃등심은 돈값을 하는지 맛은 있었다.

2차가 끝나니 11시가 넘었다. 마침 저녁을 먹은 사람들이 비슷한 지역에 살아서 타다를 불렀다.


30대 후반, 혹은 40대 초반 남짓의 운전기사가 왔다. 의도하진 않았는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운전기사의 딸은 이제 여덟살, 마침 그 날 취학통지서를 받으러 학교에 다녀왔단다.

기사는 일주일 중 7일 동안 타다를 몰았다. 운영 시간은 저녁 7시부터 12시, 집에 들어가면 새벽 1시라고 했다. 운영시간이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물어보니 "출근해야 하니까요" 는 대답이 돌아왔다. 

"딸애가 과자를 좋아하더라고요". 기사는 그렇게 투잡을 뛰었고, 백만원쯤 되는 부수입을 올렸다.


하루 수면시간은 4-5시간 남짓.  작년 7월부터 타다를 몰기 시작했고, 그 전에는 대리운전을 했단다.

3년 남짓 하던 대리보다는 타다가 훨씬 좋다면서 기사는 웃었다.

"저희는 너무 고맙죠. 겨울에 춥지도 않고, 적게나마 고정수익도 있잖아요.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닙니다."

혁신경제니 기존사업과의 충돌이니 하는 논란의 중심에는 타다가 있었다. 만약에 타다라는 사업이 중단되면, 기사님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어봤다.

예상 가능했지만 그래서 예상하긴 싫었던 답변이 나왔다. "다시 대리운전을 해야죠."


그러니까 투잡을 접는다, 따위의 선택지는 기사님한테 애초에 없던 것이었다.

어린 딸이 딸린 그의 생은 새해든 연말이든, 타다라는 사업이 있든 없든, 멈추는 법을 잊어버린 바퀴처럼 쉴 새 없이 굴러갔다.


인터넷에서 흘려 봤던 기사 하나가 생각났다. 타다 기사들이 화장실 갈 시간조차 확보하지 못해 고생한다는 비판이었다.

사실 타다가 유명해진 이후, 비슷한 이야기는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예컨대 이런 식의 기사였다.



물론 필요한 지적이다. 그러나 지적은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타다를 없애야 한다는 결론은 제3자가 내릴 영역이 아니었다. 우리는 각자의 삶을 모르니까. 이 쉬운 사실을 우리는 자꾸만 까먹었다.


타다를 하지 않으면 대리를 뛰어야 하는 어떤 가장에게 '최선'은 애초에 선택지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최선을 들이밀며 혹사나 착취라는 단어를 쉽게 쓰는 건 너무 안일한 시각이었다.

기준은 늘 상대적이었다. 그런데 나는,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계속 절대성을 추구하고만 있었다.

그러면서 세상을 자꾸만 우리만의 절대적인 시각으로 좁혀 보는 것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어서 나는 살짝 당황해버렸다.





타다 기사와 나는 약 15분 동안 단둘이 대화를 나누었다.

기사는 딸 이야기를 쉴새없이 이어갔고, 유튜브를 너무 많이 봐서 걱정이라는 토로를 했다. 잠깐 일을 쉬었을 때의 고통도 털어놓았다. 그렇게 싫던 일도 일 년 남짓 쉬니까 몸이 달아 견딜 수 없더라는 말을 했는데 일에 지쳐 치어넘어지던 나도 어느 정도는 공감이 갔다.

타다 카니발 차에서 내리면 날아가버리는 가벼운 대화였다. 속마음을 감추거나 다음 대화 내용을 예측해볼 필요가 없어서 잠시 위안이 됐다.


자정이 조금 지나 집앞에 내렸다. 기사는 이제 퇴근해야겠다고 말했다.

"오늘은 수익이 괜찮네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나도 다행이라고 대답해 줬다.


주택가를 조용히 빠져나가는 차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나는 투잡을 뛰어야 하는 기사의 건강과, 사칙연산을 유튜브로 배웠다는 딸이 부디 올곧고 바르게 자랄 수 있기를, 경자년의 행복과 함께 간절히 빌었다.


(끝)


매거진의 이전글 빨간펜 선생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