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펜 선생님

기사를 고쳐달라던 빨간펜 선생님은 늘 청와대의 '인싸'였다.

by 밍경 e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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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을 부르던 호칭은 많았다. 젊은 기자들은 종종 빨간펜 선생님이라고들 말했다.


기사를 쓰면 종종 텔레그램으로 연락이 왔다. 기사를 출고한 지 한두 시간밖에 지나지 않아서였다.

"이런이런 부분은 사실과 다르니 고쳐주십시오." 대충 말하는 것도 아니고 몇 줄의 무슨 문장, 이라고까지 지칭하며 기사를 고쳐달라 했다. 대학 입시 논술 첨삭을 받는 기분이었다.

사실과 달랐던 부분도 있었지만 아닌 경우도 꽤 있었다. 발언의 취지가 그게 아니란 건데, 내 생각에는 아무리 봐도 그런 취지었다.

"제 생각엔 이런데요..." 말은 했지만 대부분 재반박이 들어왔다. 결국 빨간펜 선생님 말대로 기사를 고쳐주곤 했다.


우리는 늘 신기해했다. 어떻게 매번 실시간으로 자기와 관련된 기사를 확인하고 또 연락을 할까.

한편으론 고마웠다. 기자란 게 원래 관심을 갈구하는 존재들이라 유명한 취재진이 자기를 알아보고 연락을 해주면 어깨가 으쓱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짜증이 났다. 넘쳐나는 게 언론인 세상이다. 수많은 기사의 텍스트 하나하나를 전부 살펴보며 고쳐달라 하는 건 꼼꼼한걸까 과도한걸까. 이건 언론에 대한 정당한 요구일까 혹은 탄압이란 방법 대신 선택한 또 다른 감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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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기사를 쓰지 않았는데도 텔레그램을 받았다. 열어보면 자신의 페이스북 링크였다.

일본의 수출규제 사태가 터진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링크를 따라가보니 새로운 게시글로 유튜브 링크를 하나 올렸다. 동학농민을 모티브로 한 '죽창가'였다.

의도가 뻔히 보였는데 기사를 안 써줄 수가 없었다. 빨간펜 선생님은 청와대의 수석이었다. 수석 중에서도 중요한 민정수석이었다. 그 사람이 일본과의 전면전을 선포하는 노래 링크를 올린 건 해석의 여지가 넘쳐나는 떡밥이었다.

그런데도 조금 싫었다. 기사거리를 판단하는 건 기자가 마지막으로 가진 권한이자 보루였다. 빨간펜 선생님은 이렇게 기자의 마지막 자존심을 넘나드는 것 같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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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펜 선생님은 늘 청와대의 '인싸'였다. 여민관(비서실 건물)에서 가장 인기있는 건 그 사람의 소문이었다.

점심 시간에 약속이 없으면 커피 한 잔에 빵 하나를 사들고 가서 헬스장에서 운동을 한다더라, 헬스장에서 요가 매트를 펼쳐놓고 요가하는 모습을 본 행정관이 한둘이 아니다......


넘쳐나는 가십을 생산해내는 그 사람은 확실히 잘 생겼었고, 잘났었다.


청와대 사람들은 그 사람과의 인연이나 관계를 이야기하곤 했다. 기자들은 그 사람과 교감하는 정도로 취재 능력을 판단받았다.

난 빨간펜 선생님과 별로 친하지 않았다. 능력 부족이었다. 그런데 친해지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었다. 굳이 열심히 그 사람과 관계를 구축하려 시도하지 않았다.

분명 인간적으론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가끔 청와대 근처 카페에서 만나면 특유의 예의바른 표정으로 막내 기자들에게도 한 사람 한 사람 인사를 해주었다.

딱히 사람, 특히 취재원에게 강하게 감정을 두는 성정은 아니다. 그런데도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빨간펜 선생님은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되며 청와대를 떠났다. 춘추관에서 그 사람은 의기양양하게 검찰 개혁을 선언했다. 꽤 많은 기자들이 박수를 쳐줬다. 그동안의 정과, 격려가 담긴 박수였다고 생각한다.

주니어급인 나는 박수를 치지 못했다. 떠나는 빨간펜 선생님의 마지막 모습과 분위기를 파악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사람이 춘추관을 떠난 뒤 기자들이 가장 많이 한 말은 "아이고 살았다" 였다. 청와대의 이슈메이커였던 빨간펜 선생님이 떠나니 더이상 한밤중에 기사를 쓸 일이 없다는 안도의 환호성이었다.

"이제 법조 기자들도 빨간펜 선생님 첨삭 좀 받아봐야지" 어떤 친한 선배는 이렇게 말하며 싱글싱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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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법조 기자들은 빨간펜 선생님의 첨삭을 받진 못하는 것 같다. 빨간펜 선생님은 그러기엔 나라 전체를 흔드는 인싸가 되어버렸다.


50일쯤 전 조국 장관을 청와대에서 다시 봤다. 풀기자로 임명장 수여식 취재에 들어갔을 때였다.

얼굴이 반쪽이 된 게 보였다. 확실히 고생은 한 것 같았다. 실장과 수석 등 참모진들이 한 번씩 와서 등을 두드려주며 고생이 많다고 위로해줬다. 무표정으로 목례만 하는 걸 보고 환담장에서 빠졌다. 따로 인사를 하거나 대화를 하진 못 했다.

기자가 빠진 환담장에서 조국 장관의 모습이 어땠을 지는 잘 모르겠다만, 그 사람도 사람인지라 무표정으로 목례만 하진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봐온 조국은 그냥 이런 사람이었다.

여전히 서초동이나 광화문, 그 어딘가에 속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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