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역

감사원발 기사에 구의역 현장 촬영을 넣은 건 반쯤은 내 욕심이었다.

by 밍경 emb


품 안 들여도 되는 감사원발 기사에 굳이 구의역 현장 촬영을 넣은 건 반쯤은 내 욕심이었다. 강서에서 태어난 나는 강동 2호선 끝에 있는 구의역이란 데를 한 번도 가보질 않았다.


오후 4시 10분쯤 영상취재팀에 연락했다. 퇴근 시간 즈음이라 놀라움과 짜증이 섞인 반응이 돌아왔다.

굳이 이 시간에 구의역까지? 스탠딩(뉴스에서 기자가 직접 화면에 등장하는 부분)하러? 왜?

어색하게 웃어넘겼다. 말하자면 이번 스탠딩은 불필요한 장식이었고, 스스로에 대한 자기합리화였다.

조금 더 정확히는, 누군가를 기억해보고 싶어 넣은 나만의 워터마크였다.


구의역 관계자들은 놀라며 긴장했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대합실 기류에 내가 오히려 더 당황했다.

최고참으로 보이는 분이 뒷자리에서 일어났다. 공무원 특유의 말투로 서울교통공사 관계자의 허락을 얻어오라고 했다. 이게 허락이 필요한 건지 사실은 의아했다.

교통카드 찍고 들어가서 촬영해도 되었겠지만 뒤탈은 남기기 싫었다. 그 자리에서 서울교통공사에 전화를 걸어 "구의역 분들이 당신을 찾는다"고 말했다.

전화를 받은 홍보팀 직원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떤 기사인가요?"

차마 당신들이 채용비리 저질렀다고 터는 기삽니다, 라고는 못했다. 그냥 감사원 자료 관련 리포트라고만 했다. "감사원에서 미리 자료 뿌린 것 있잖아요. 보셨죠?"

모를 리가 없었다. 직원의 침묵엔 냉기가 돌았다. 어쨌든 촬영 허가가 나왔다. 카메라팀과 구의역에 들어갔다.


"서울교통공사의 경우 정규직 전환자 1천285명 가운데 약 15%에 달하는 1백92명이 친인척으로, 공사 자체 조사보다도 80명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감사원에 따르면 이들의 비정규직 채용이나 정규직 전환 과정은 총체적으로 부실했습니다.
서울교통공사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45명은 비정규직으로 채용될 때 기존 직원의 추천으로 면접만 보고 입사했습니다.
또한 불투명한 과정을 거쳐 입사한 비정규직 인력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거나, 무기계약직을 거쳐 일반직으로 전환 될 때 아무런 평가를 거치지 않은 사례가 다수 적발됐다고 감사원은 지적했습니다."

(MBC 기사 중 일부 발췌)


사진출처 중앙일보


원래 스탠딩 멘트는 이랬다.


"이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된 계기는 이곳 구의역에서 발생한 안타까운 참사였습니다. 비정규직의 눈물을 친인척 채용 기회로 이용한데다, 이후에도 사건을 수습하기에만 급급했단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입니다."


차를 타고 구의역까지 오면서도 족히 열 번은 연습한 것 같은데 뒷부분이 자꾸만 틀렸다. 구의역은 지상에 있었다. 해가 지면 스탠딩을 못 했다. 노을이 떨어지는 애매한 시간이라 마음은 급했다.

사실 노을보다 신경쓰였던 건 촬영 현장 뒤편에 서있던 아까 그 최고참 관리자였다. 위에 보고를 해야 한다며 기사의 주제와 내용까지 세세히 묻던 관리자는 짐짓 헛기침을 하며 촬영 현장을 지켜봤다.

결국 "이후에도 사건을 수습하기만 급급했다"는 부분을 뗐다. 기사에 충분히 채용비리 전환자를 솔직히 밝히지 않았단 이야기가 들어 있었으니까. 떼버린 게 맞는 판단인지는,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기사를 쓰면서 교통공사 관계자랑 잠시 통화했다. 말을 아낄 줄 알았던 관계자는 누가 전화 좀 걸어주길 바랬다는 듯 해명을 쏟아냈다.

"축소 발표는 말도 안 되고요. 친인척이랑 채용비리를 무조건적으로 엮는 것 자체가 넌센스죠. 그리고 저희가 비리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잖아요? 이미 다 알던 직원들이었고...그 사람들을 도와준 건데, 너무 심하게 옭아매진 맙시다."

조곤조곤한 설명을 듣다 보니 나름 그들의 입장이 이해가 가서 "아이고 힘드셨겠어요" 라고 화답했다. 날을 세워도 되나 망설이기도 했다.


구의역 9번 승강장엔 더이상 흔적이 없다. 3년이 지나니 포스트잇은 다 사라졌다. "너는 나"라는 시 한 줄만 이곳이 사람을 앗아간 장소라고 표시해줬다.


흠 없어 보이는 지하철 승강장에도 사람들의 사연이 쌓인다.

나보다 젊은 남자 하나가 죽었다. 사연이 돼 먼저 쌓였다. 그러자 나보다 젊은 남자 하나의 죽음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 기회에 자신의 배우자, 동생, 친척을 공기업에 집어넣은 사연이 함께 따라왔다.

그 사연 속엔 아는 사람이니까, 좋은 사람인 걸 내가 아니까, 죽은 건 안타깝지만 그래도 기회는 기회니까, 도와준 거니까 라는, 보편적이고 순수하고 환하고 착한 악의가 숨어 있었다.


그렇게 부정의와 관행은 인정으로 자신을 선처럼 포장한다.


나는 문득 그놈의 관습이란 게 참 무서워졌다.

어쩌면 김군을 죽인 건, 기자질을 하면서도 인정이니 뭐니 하는 관습에 자유롭지 못한 나일 지도 모르겠단 서늘함이 스쳐서인지도 모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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