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출입기자는 대통령과 가깝고 또 대통령과 멀다.
조심스러운 글이다.
같은 정치부라고 해서 안일하게 생각했는데, 국회와 청와대는 정말 많이 달랐다.
국회는 정보를 드러내기 위해 애쓰는 곳이다. 넘쳐나는 정보들 중 어느게 제일 좋은 정보인지 가려내는 데에서 일이 시작됐다.
반대로 청와대는 정보를 가리기 위해 애쓴다. 나쁘거나 불순한 의도는 아니고 이 기관 자체가 나라의 주요 사안을 관할하는 역할을 해서 그렇다. 잘못하면 국가전략이자 기밀이 흘러나오는 셈이라 모두 말을 조심한다.
이런 곳에서 취재를 한다는 건 솔직히 상호가 불편한 일인데, 그렇다고 기자질을 하는 입장에선 또 손을 놓을 수도 없는 일.
그래서인지 청와대에는 공개적으로 또 암묵적으로 지켜지는 취재 시스템이란게 존재한다.
받아쓰기 기레기 언론쟁이가 되는 게 싫은 기자들과 그런 기자들이 싫으면서도 옆에 두어야 하는 묘한 관계의 결과물이라고 해야할까.
여튼 대통령을 취재하기 위해 받아들여야 할 청와대만의 규칙 7개를 정리해봤다.
엠바고: 보도 유예, 즉 정해진 시점까지 기사를 공개하지 않는 것. 예를 들어 26일 11시 엠바고라 하면 26일 11시부터 기사를 송고(=작성된 기사를 방송, 인터넷 등에 공개하는 것)할 수 있다.
백브리핑: 공식 브리핑 후 이어지는 추가 질문. 브리핑=발표+질의응답 을 의미하는데 질의응답이 끝난 후에 이어지는 추가 질문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브리핑의 질의응답까진 실명으로 보도 가능하지만, 백브리핑에서 나온 말들은 "고위 관계자" 나 "관계자" 등으로 인용한다.
딥백브리핑: "관계자"로 인용 처리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우면 딥백브리핑(딥백)을 요구한다. 딥백을 걸고 한 말은 기사에 자연스럽게 톤을 녹여내는 정도로만 사용할 수 있다. "~로 알려졌다" "~한 기류다" 정도로 기사를 쓸 때 참고만 하는 식.
오프더레코드: 정보를 제공하지만 기사에는 쓰지 말아달라고 요청하는 것. "오프더레코드로 말하면, A의 사정은 이러저러하다" 라는 식이다. 기자가 어떤 사안의 배경 설명을 요청하는데 그 내용이 외부로 유출되면 안 되거나, 정보 제공자가 너무 빤히 드러나는 경우 오프더레코드를 요구한다.
업계 용어를 먼저 설명한 이유는 유달리 청와대에선 저런 규칙이 강하게 지켜져서다. 이 곳의 기사는 기사를 쓰기 위한 배경을 이해해야 할 때가 많다.
일단 엠바고 같은 경우는 대통령의 경호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대통령이 청와대 밖에서 행사를 진행한다면 대통령이 해당 장소까지 이동하고, 행사를 치르는 동안에는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한다는 차원에서 대통령의 동선을 밖으로 유출할 수 없다.
백브리핑과 딥백, 오프더레코드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틀린 기사를 쓰지 않기 위해서 필요하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울 방문에 대한 기사를 써야 한다고 생각해보자. 기사에는 서울 방문의 의미 정도만 녹여낸다 쳐도, 정작 글을 쓰는 사람은 올해 남북관계의 기류와 청와대 내부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알아야 맥락을 제대로 짚는다. 40만큼의 기사를 제대로 쓰려면 100만큼의 지식과 배경 파악이 필요한 셈이다.
그 맥락을 제대로 짚기 위해서 취재원과 편의상 만든게 백브리핑과 딥백, 오프더레코드다. 보안이 철저한 청와대인만큼 저 세 가지 규칙을 암묵적으로 지켜야 기자에겐 철문 너머의 청와대를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여기까진 저런 시스템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지만 다 필요없고 결론만 내리자.
여기는 알아도 못 쓰는게 많고, 안 되는게 참 많다.
북한처럼 개발이 덜 된 나라만큼은 아니지만 대통령도 국가 자체라는 상징성을 갖는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의 일정은 분 단위로 나누어져있고, 2주 이후의 계획까지 완성되어 있다. 하다못해 엘리베이터를 타는 시간까지. 물론 대통령의 동선은 모두 사전 조사를 통해 치밀하게 짜여진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일정에 동행하는 취재기자는? 마찬가지로 '통제'의 대상이다. 경제 단체 행사 같은 곳에 동행한다 치면 기자가 움직일 수 있는 영역은 의자 하나 정도로 제한된다.
청와대 기자는 이런 식의 취급(?)을 받아들인다. "알 권리 침해"니 "보도 통제" 라는 주장보단 국가 자체인 대통령의 경호가 공익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는 셈이다.
앞의 규칙과 비슷한 맥락이다.
풀 취재라는 게 있다. 10명의 기자가 모이면 그 중 한 명이 대표로 현장에 들어가 취재를 한 뒤 그 취재한 걸 모두가 공유하는 형식이다.
원칙적으로 기자는 자기가 눈으로 보고 들은 것만 팩트라고 생각한다. 모 방송사에서 "A씨가 B회사에서 50억을 횡령했다" 는 뉴스를 단독으로 내보낸다면, 모 방송사를 제외한 다른 언론사에선 A씨와 B회사, 해당 경찰서까지 싹 다 전화를 돌려 "그 뉴스가 맞냐"고 확인하는 식이다.
취재원 입장에선 엄청나게 귀찮겠지만 여과지마냥 꼼꼼한 팩트체크 덕분에 어느 언론사가 오보를 내도 무차별적으로 퍼져나가진 않는 셈이니 필요악이다. 오히려 이걸 안 하는 기자는 욕 먹어도 할 말이 없는 셈인데...
풀 취재만큼은 예외다. 풀러로 들어간 기자 한 명이 보고 들은건 의견이나 해석이 아닌 철저한 팩트라는 걸 전제하고 그 취재정보를 모두가 공유하는 거다.
청와대에서는 모든 취재가 이 풀 취재로 돌아간다. 100명의 기자가 한두 명씩 순번을 돌아가며 현장에 가고, 현장에서 취재한 걸 100명과 공유하면 100명의 기자가 그 정보로 기사를 쓴다. 적어도 대통령이나 여사의 일정에 대해선 개별 취재란 없다.
까다로운 출입처는 당연히 기자단 관리도 까다롭게 한다.
TO가 정해져 있는건 보편적인 현상이지만, 여긴 출입증을 받기까지 과정이 특히나 까다롭다.
무엇보다 신상을 철저히 조사한다. 고등학교 재학 증명과 시민단체 활동 내역, 부모님, 본적, 남자의 경우엔 군번까지 적어낸다.
물론 우리가 청와대 직원도 아니니...이적단체에서 활동한 것만큼 엄청난 문제가 있지 않는 이상 웬만하면 출입증은 나온다. 다만 객식구라도 청와대라는 곳에 머무르려면, 신분 확인이 필요하다는 게 이쪽의 입장이기에 출입기자도 거기에 맞추는 셈.
출입증을 받고 나서는 취재처럼 정해진 경우에 한해 경내에 들어갈 수 있고, 후술하겠지만 대통령 전용기에 동행할 수 있다.
청와대에 출입한 몇 개월동안 어디서도 못 해볼 독특한 경험을 잔뜩 해봤다.
성남 공군 공항(=서울공항)이란 데에 여러번 들어가봤다. 공군 기지인만큼 일반인의 출입은 통제되는 곳이다.
공군 1호기, 즉 대통령 전용기를 타봤다. 해외 순방에 동행하는 기자들은 공군 1호기 1층 뒷자석의 이코노미석을 타고 함께 이동한다. 대한항공 승무원과 현직 공군들이 함께 항공 서비스를 제공한다. 공군 1호기에는 영어 안내판이 없고, 이륙할 때도 "승객여러분"이 아니라 "대통령님, 여사님, 공군 1호기는..." 으로 안내를 시작한다.
국내 지방 일정에 따라갈 때는 헬기도 타봤다. 헬기가 그렇게 빠를 줄은 몰랐고, 헬기는 멍하니 바깥풍경을 바라만 보고 있어도 황홀한 딱 그정도 높이에서 이동했다.
원래 이쪽 업계가 국방부를 출입하면 군함을 타보고, 남의 나라에 태풍이 나면 비행기를 타고 굳이 태풍이 있는 데로 가는 등 특이한 경험을 많이 한다.
그중에서도 청와대는 이 직업이 아니라면 못해볼 만한 경험을 잔뜩 해보는 출입처라는 게 분명한데 이유를 굳이 따져보자면 대통령의 일정에 좋든 싫든 동행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빨리 가면 우리도 빨리 가야 하고 비행기를 타면 우리도 비행기를 타야 하니까 이 모든게 가능하지만...
취재에 필요한 정도의 편의 제공을 제외하면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기자의 금전적 특혜"는 이 출입처에 없다.
대통령의 일정에 동행하는 건 돈이 엄청나게 든다. 특히 해외 순방이라면 회사에 부담이 될 정도로 엄청난 돈이 며칠만에 나간다. 순방에 따라가는 삼시 세끼 식사비와 접근성 좋은 도심의 호텔 숙소비, 비행기 탑승비는 당연하다. 여기에 화물 수송비와 현지 인터넷 랜선 설치비까지 모두 부담하게 되는데, 그 비용이 일인당 어마무시하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언론사라면 대통령이 해외 간다는데 기자를 안 보낼 수가 없다. 한미정상회담이라도 하면 하루 종일 나갈만한 중요한 뉴스가 숭덩숭덩 뽑아져나온다.
다만 필요한 것과 별개로 회사 입장에선 보조원 연봉만큼의 금액이 뭉텅뭉텅 떨어져나가니까 참 부담스럽고, 기자는 내 돈 안 내고 해외 가서 좋으면서도 슬금슬금 회사의 눈치를 본다.
좋은 징후다. 돈이 든다는 건 이 세상이 그만큼 깨끗해졌다는 증거니까. 다만 세간에서 생각하는 "청와대 출입기자를 위한" "부패한" "금전적" "특혜"는 적어도 내가 출입한 이 정권에서는 없다. 욕 먹을 짓을 많이 하는 직업임은 인정한다만 이 부분은 꼭 짚고 싶었다.
청와대 출입기자는 대통령과 가깝고 또 대통령과 멀다.
청와대 관계자를 제외하면 대통령이란 사람을 지근거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사람은 춘추관 기자들이 유일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출입기자들은 취재원이 대통령인만큼, 대통령에 대해 무한정의 지지를 표할 수도 없고 또 표한다 해도 아무도 믿지 않는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고.
대통령 주변 사람들도 다르지 않다. 기자를 통해 정책을 홍보하지만, 기자를 완전히 믿는 바보는 없다(바보라고 칭하는 이유는 나 역시 수비수 입장이 되면 기자를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넓게 친해져야 하면서도 깊이 있고 건강한 관계를 맺기는 몇 배나 어려운 직업이다.
그 사이 균형을 잃으면 소위 말하는 기레기가 된다. 나쁘게 가까워지면 유착으로 균형을 잃고, 지나치게 멀어지면 브리핑만 받아쓰는 능력 없는 직업인이 되니 둘 중 무엇이 되어도 나쁜 기자인 건 마찬가지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청와대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가 그렇지는 않지만, 본인들조차 자조적으로 입에 올리는 '기레기' 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상당수였다. 인간적으로 사람들과 친해지되 객식구로서 취재처에 대한 감시와 의심의 시선을 없애진 않았다.
그래서 비서관이든 수석이든 하다못해 대통령이든, 상대방의 말이 논리에 맞지 않거나 반박거리가 있으면 술의 힘을 빌려서라도 "당신은 잘못됐다" "이 정책은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를 하고야 만다. 혹은 그런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무척 부끄러워한다.
권력자에게 그런 이야기를 어떤 형식으로든 할 수 있고 또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데서 말하기조차 오그라들던 언론의 신념이란 걸 어렴풋이 느낀다.
그런 식의 당돌함이 청와대라는 폐쇄적인 공간에 최소한의 긴장감을 불어넣는다고 생각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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