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를 쥐여짜여본 경험

우리 사회가 평등하다면, 나의 경험과 공포는 정신병인 걸까.

by 밍경 emb


엉덩이를 쥐여짜여본 경험


초등학생때 일이다. 초콜릿을 먹으며 익숙한 동네를 걸어가고 있었다. 아파트 단지의 넓은 사잇길이었다. 오른쪽 뒤로 자전거 한 대가 지나가며 속도를 줄였다. 그 다음, 엉덩이를 꽉 죄는 느낌을 받았다. 손가락 다섯 마디가 강하게 힘을 주었는데 나는 너무 놀라 그 자리에 순간 멈춰섰다.

1초 정도 지난 뒤 자전거를 탄 중년 남자가 속도를 높여 지나갔다. 엉덩이가 얼얼했다. 별 일이 아니라며 마음을 추스린 후 가던 길을 갔지만 가슴은 계속 쿵쾅댔다. 20년이 다 되도록 손가락의 감촉이 선명히 기억난다.


스물 둘, 터키를 여행할 때 방값이 싼 싸구려 숙소를 잡은 적이 있다. 세 달 동안 혼자 세상을 돌던 중이라 지독한 몸살이 났고 저녁도 거른 채 잠이 들었다. 새벽 1시쯤 누가 문을 부수는 소리가 났다. 화들짝 놀라 일어났고 39도 가까이 되는 열꽃 속에서도 식은땀을 흘리며 이불을 움켜쥐었다.

쾅, 쾅, 쾅. 서너 번 충격을 받은 나무 문의 경칩이 흔들렸다. 곧 문이 부서졌다. 웬 백인 남자가 비틀거리며 걸어 들어왔다. 술냄새가 독하게 났고 머리엔 피를 흘리고 있었다. 남자는 날 보더니 씩 웃었다. 곧 내 이불을 부여잡았다. 그 순간 옆방에던 젊은 남자와 건너방 숙소 주인이 급히 들어와 남자를 끌고 가며 경찰에 신고했다.


백인 남자가 걸어들어오던 순간이 슬로우모션처럼 기억난다. 그 순간 나는 참 많은 생각을 했는데,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 다음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남자가 나에게 달려들어도 소리를 지르지 않아야 살까? 아니면 술에 취한 것 같으니 빠르게 벗어나 아무 방문이나 잡고 도움을 청할까. 그 바쁜 순간에도 초등학생 때 엉덩이를 부여잡고 간 남자의 뒷모습은 왜이렇게 생각이 났던걸까.



대기업에서 인턴을 하던 친구와 저녁을 먹었다. 며칠 전 회식을 했는데, 부장과 팀장이 아무렇지도 않게 "여자들은 일을 안 한다"는 말을 했다고 했다. "승진을 시켜줘도 애를 본다고 집에 가고, 거울 본다고 던져준 일도 안 하는데 어떻게 프로젝트를 맡기"냐며 투덜댔는데 그 자리에 있는 여자 사원들조차 모두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단다.

"여자들은 이래서 문제"라며 "00이는 나중에 사회 나가서도 그러지 마라"고 했다는데, 친구는 어떻게 대답할지 몰라 "네"라고 답했다 한다.


기사에서 남자와 여자를 같이 나열해야 할 때가 있다. 특히 교통사고로 다친 사람이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이라면 누구 한 명이 심하게 다치지 않은 이상 남자를 먼저 쓰고 여자를 그 다음에 쓰라고 가르쳐줬다. 그게 정석이고 탬플릿이었다.


한 번은 이런 적도 있다. 남성과 여성을 동시에 써줘야 했는데, 내가 '32살 남성 A씨' 와 '32살 여성 B씨'라고 쓰니까 선배는 "A씨는 그냥 32살 A씨라고 쓰면 돼"라고 했다. 나는 왜 여성에게만 여성이라고 써붙이냐고 물었다. 그 선배는 "여성에게 써붙이면 나머지는 남자인걸 바로 알잖아"라고 대답했다. 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대답은 아니었다. 선배도 그걸 알고 있을 테다.



나는 그냥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니지만 어두움 밤거리를 걸을 땐 무서워했다. 언제나 엉덩이를 쥐여짜질 수 있다는 공포 때문이었다. 그 공포는 차라리 본능에 가까웠고, 살면서 숱하게 마주한 경험에서 나온 교훈이었다. 나는 초등학생때 엉덩이를 쥐여짜여진 후, 무서워해야 그런 일을 당할 확률이 조금이라도 준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나쁜 새끼들만 여자들한테 그런다고 하는데 억울함은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내 본능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그러니까 여자로 태어난 나와 우리는, 각자의 사건은 다를지언정 사소하든 크든 이런 경험 몇 개씩은 가지고 있기 때문에, 늘 세상의 불확실한 폭력을 무서워하며 살고 있고, 아주 자연스럽게 두 번째로 언급되는걸, 성별이 함께 쓰여지는걸 받아들였다.


처음 미러링이 시작됐을 때 나는 재미있어했고 지지했다. 그건 우리 모두가 경험했지만, 부끄럽다며 숨기기 바밨던 우리 모두의 공포와 본능을 처음으로 깨닫게 하는 과정이었다.

지금은 그저 분노를 제어하지 않은 욕설과 나쁜 말이 오가는 상황 자체가 싫다. 나는 개새끼란 욕설을 싫어하는 것과 정확히 같은 이유로 쿵쾅이란 단어와, 한남충이란 단어가 싫다.



소위 PC(정치적 올바름)함을 지지하지만 정말 친한 친구들과 농담을 할 땐 PC하지 않은 장난도 자주 치는 편이다. 원래 야한 농담은 PC하지 않을수록 재밌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지만 나는 서로간에 '이게 장난이고 농담이다'라는 암묵적 합의가 있다면 "여자들은 하여간 얼굴이랑 몸매만 믿고 설쳐"라던지 "남자들은 X만 믿고 깝치잖아" 라는 정도의 말을 할 수 있다 생각한다. 뭐 어때. 우리는 언제나 올바르게만 살아오진 않았고 사람은 원래 비틀대며 살 때 낄낄대는 법이니까.



여자와 남자가 현시점 동등치 않단건 좀 이해 안돼
우리 할머니가 그럼 모르겠는데
지금의 너가 뭘 그리 불공평하게 자랐는데
넌 또 OECD 국가중 대한민국
남녀 월급 차이가 어쩌구 저쩌구
fucking fake fact

여성부 좀 뻘짓 좀 그만하구
건강한 페미들 위해서라두
먼저 없애야 해 남성혐오 워마드
(...)

-산이(san-E)-Feminist 中-


그러나 유명한 가수가 우리 할머니 정도 되는 세대만 여성차별을 느꼈다고 하는 하는 건 심하게 불편하다.

엉덩이를 쥐여짜보고, 술 취한 백인 남자가 한밤중 방문을 부수고 들어온 걸 본 나는 아무리 고민하고 생각해도 그 공포를 없애진 못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이미 평등하다고 말하는 건 나의 공포를 정신병으로 단정짓는 것과 같았다.

그 감정이 끔찍하게 싫었다. 관심받기 위한 더러운 방법인 걸 알면서도 굳이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다.



일부라 해도 여성 차별은 여전히 존재하고 일부가 존재한다면 여성 차별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여성 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력해야 맞는거지, 있는 차별을 없다고 우기며 다른 혐오를 덧씌우고 진흙탕 싸움으로 끌고가면 안 되는 거다.


나쁜 말은 진지하게 쓰면 안 되고, 있는 차별을 없다고 우기면 안 된다.

김치녀도 한남충도 나쁜 말이고, 아무것도 아닌 나는 길 가다가 엉덩이를 쥐여짜여져봤다.

세상은 옳고 잘못된 걸로 똑 떨어지게 나눌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건 나쁜 거고 잘못됐다.


배척과 혐오는 이런 데서나 사용해야 할 단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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