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들이 넘쳐나는 청와대 춘추관에서 막내 of 막내가 되어버렸다.
어느 날 윗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기사와 관련된 내용인 줄 알고 받았는데 윗분은 대뜸 물었다.
"너 정치적 성향이 뭐냐?"
이게 뭔가 싶어 3초를 멍때리고 있었다. 수화기 건너편 윗분은 푸하하 웃더니 다시 말했다. "너 성향이 야당은 아니지?"
1년 넘게 야당을 출입하지만 성향이 확실이 야당쪽은 아니었으니 그렇다고 했다. 윗분은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사흘이 지난 퇴근시간. 업무방에 웬 공지 하나가 떴다. 다음주부터 청와대로 출근하라는 윗분의 지시였다.
부서 내부 인사이동이니 따로 방은 붙지 않았다. 그러나 부서원들은 난리가 났다.
그만큼 뜬금 없는 인사였는데, 아무리 황당하다 해도 나만큼 뒤통수를 맞은 사람은 없었다. 문재앙을 외치던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다가 우리 이니, 문재인 프린스로 태세 전환을 해야 하다니. 현실감 없이 짐을 쌌다. 쇼핑백에 살림살이를 담아 다음주 월요일, 청와대 춘추관으로 출근했다.
춘추관.
왜 이런 이름을 붙였는지는 역사책을 뒤적거려 알겠으나 사실 한 번에 이해는 안 간다. 그럴 땐 오히려 영어가 편하다.
춘추관은 말하자면 Blue House Press&Briefing Room 이다. 청와대 본청과 연결되는 통로도 없고, 거리도 조금 떨어져 있다. 청와대 소속 기관이긴 한데 또 청와대라고 하긴 애매하다.
국회는 기자와 보좌진과 국회의원이 한 데 뭉쳐 복작거린다. 마음만 먹으면 의원실이든 원내대표실이든 쳐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청와대는 기자와 청와대 직원(대통령 포함)을 명확히 구분한다. 소통창구 일원화라는 멋진 이름 아래 언론 관계자들은 춘추관에 '갇힌다'. 춘추관 밖으로는 자유로운 출입이 불가능하다.
대신 청와대에서 알릴 소식이 있으면 대변인-국민소통수석-기타 등등이 춘추관으로 찾아온다. 언론들은 대부분 같은 정보를 같이 공유한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정권도, 전 정권도, 전전 정권도 모두 그래왔다.
갇힌다 - 는 표현은 괜히 부정적인 것 같지만 사실 나는 이 표현 넘어서는 단어를 나는 찾지 못하겠다. 마음만 먹으면 좁디 좁은 2층짜리 건물을 벗어나지 않아도 된다.
그럼 취재는? 대통령 관련 취재는 보안 등의 문제가 얽혀 기자들이 떼로 달려들 수 없다. 그래서 기자들의 집단인 풀(POOL)단이 순번을 정해 대통령 취재에 동행한다.
예컨대 40명의 집단에서 2명이 뽑혀 현장을 취재하고 그 내용을 40명이 공유하는 구조다. 즉 대통령 일정 20번에 한 번만 따라가면 된다는건데, 청와대 기자는 물론 40명보다도 더 많다. 순번은 절대 자주 오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 주변을 맴도니까 어쩔 수 없다. 언론은 아무데나 가서 강짜를 부릴 수 있는 프리패스 티켓이 아니고, 티켓이어서도 안 된다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동의와 별개로 씁쓸했다. 나는 국회를 출입하며 스스로를 국회의 객식구라고 생각했다. 언제 국회를 떠날지 모르는 위치기도 했지만, 치이고 욕먹어도 같은 집 아래를 쏘다니며 밥을 빌어먹었기 때문이다.
청와대로 옮겨진 지금, 정신 없이 지낸 한 주일을 돌이켜보면 객식구보단 이제 사랑방 손님이 적절해 보인다. 주인과도 허물 없이 지내지만 주인이 가끔 사랑방을 들리는 것 외에는 사랑방을 쉬이 떠날 수 없고 떠나면 오히려 눈치를 보게 되는 그런 존재.
사랑방 손님이라도 경륜이 쌓인 사람이라면, 그러니까 십 몇년차쯤 기자질을 한 반장급 들이라면, 그 속에서도 어떻게든 자신의 자리를 찾아 비집고 들어갈 테지만.
사랑방 사람 중에서도 제일 막내 손님이 된 나는 이제 나 혼자 힘으론 뭘 할 수 있을까?
배우는 게 늦는 내가 한 주 동안 춘추관의 지리만 겨우 익힌 뒤, 스스로에게 물은 첫 질문이었다.
누가 봐도 연차에 맞지 않은 옷을 입어버린 것 같이 허덕이며 나의 삼청동 사랑방 손님살이는 시작됐다.
ps 브런치 포스팅에 올릴 정도로 너무 싫은 그놈의 전화마와리는 삼청동 사랑손님이 되어버리며 더욱 중요해졌다.
ps 출입처가 바뀐 첫 날. 그나마 일년 반동안 내 이름을 알아준 의원 몇 명에게 전화를 해 근황을 전했다. 대부분 자유한국당 의원들이었는데, 섭섭함의 토로부터 잘 다녀오라는 인사까지 다양했지만 나쁜 말은 없었다. 실컷 까대는 기사만 쓴 내가 미안할 정도로 훈훈한 인사였다.
괜히 코끝이 찡해졌다. 낯선 출입처에 던져져 불안해하다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다시 힘을 내 청와대 춘추관 관계자들에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이건 뭐지' 라는 표정과 문전박대를 당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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