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잘 안 될 때가 있다. 노회찬 의원이 그런 경우였다. 출입 정당조차 아니었지만 나는 그 사람을 좋아했다. 굉장히 좋아했다.
정치인이고 국회의원의 여부를 떠나서, 국회 밖을 돌아다니던 그 사람이 평소에 얼마나 웃었고 또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아주 조금은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철없던 시절 철거 반대 운동을 비롯해 몇 개 운동판을 오가던 시간이 있었다. 국회의원이던 그 사람은 언론의 조명 없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한여름에 조용히 철거 현장을 찾았다. 그 자리에 오래 있던 20대 초반 이하의 사람들은 익숙한 듯 그 사람을 맞았다. 청년들에게 치킨을 샀고, 땅바닥에 털석 앉아 함께 웃었다. 격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호감이 생겼다.
내가 국회 객식구가 되기 전부터 그 사람은 이미 '스타' 정치인이었다.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이 무너지고 원내 진보 정치는 궤멸했다. 그 둘을 떠받치고 있던게 심상정과 노회찬이었다. 인물에 기댄 정치는 그만 하자고 당 내에서도 말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어쨌든, 당을 떠받친 사람은 그 둘이었다.
20년 넘는 시간 동안 때로는 혼자 그리고 때로는 함께 어쨌든 힘들게, 원내 진보 정치라는 맥을 이어왔었다. 그는 TV에 나와서 달변을 늘어놓았다. 그의 탁월한 말빨도 한 몫을 했지만, 나는 그렇게라도 정당 이름을 알리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생각한다. 민주당 세 줄, 한국당 두 줄, 바른미래당 한 줄을 담아내는 메이저 언론의 리포트에 정의당을 위한 자리는 많이들 없었다.
원내 5당은 서럽다. 5당 원내대표가 회동을 마치면 기자들은 원내 1,2,3당에게 집중한다. 원내 5당 원내대표인 노회찬은 대개 기자들의 주목을 받지 못한다. 원내 5당 원내대표는 그게 너무 당연하다는 듯, 조용히 사라지곤 했다. 그 뒷모습을 수차례 봐왔다. 나의 출입 담당은 그쪽이 아니었다. 노회찬을 굳이 쫒아갈 명분이 없었다. 나는 마음이 아팠지만 아주 빨리,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돌렸다.
심지어 나조차의 외면을 받는 시기를 버텨내고 겨우겨우 10%라는, 한국당과 같은 지지율이라는, 원내정당 지지율 2위라는, 말도 안 되는 결과를 물밑에서 일궈냈다. 여론조사 결과를 받아들고 나는 다시 원내 진보 정치가 살아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품었다. 그리고 불씨를 살려내기까지 참 힘들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미안했고, 어쩔 수 없는 사상적 치우침 때문에 자생하는 정의당이 참 많이 고마웠다.
사람의 죽음에 경중은 없다지만 나는 가끔 어떤 사람에 대해선 객관적일 수가 없으니까. 그래서 조금 더 많이 안타깝고 믿기지가 않고 또 명복을 빈다.
그리고 그를 애도하는 만큼, 부끄럽지만, 진보 정치라는 가시밭길에서 희망을 안고 버텨오던 어떤 사람들이 이제 그만 상처받았으면 좋겠다.
내가 선택하지 못하고 도망친 길이다. 그 길에 남은 사람들은 조금 덜 힘들었으면 좋겠다.
너무나도 이기적인 마음이다.
PS. 노회찬 의원은 2012년 진보정의당을 출범하면서 이런 연설을 했다. 당시 나는 이 세계를 떠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마음을 굳히고 있던 중 그의 연설을 들었다. 결국 끝끝내 고개를 돌렸지만 오랫동안 머리를 맴돌았다.
그 연설을 다시 한 번 기억하고 싶어 올린다.
6411번 버스를 아십니까? 서울시 구로구 가로수공원에서 출발해서 강남을 거쳐 개포동 주공 2단지까지 대략 2시간 정도 걸리는 노선버스입니다. 6411번 버스는 매일 새벽 4시 정각에 출발합니다. 새벽 4시에 출발하는 첫 버스와 4시 5분경에 출발하는 두 번째 버스는 출발한지 15분쯤 지나 신도림과 구로시장을 거칠 무렵이면 좌석은 만석이 되고 버스 안 복도까지 사람들이 한명한명 바닥에 다 앉는 진풍경이 매일 벌어집니다.
새로운 사람이 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6411번 버스는 매일 새벽 같은 시각 같은 정류소에서 같은 사람이 탑니다. 그래서 시내버스인데도 마치 고정석이 있는 것처럼 어느 정류소에서 누가 타고 강남 어느 정류소에서 누가 내리는지 거의 다 알고 있는 매우 특이한 버스입니다.
이 버스 타시는 분들은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새벽 5시 반이면 직장인 강남의 빌딩에 출근해야하는 분들입니다.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 시각이기 때문에 매일 이 버스를 탑니다. 어쩌다 누가 결근이라도 하게 되면 누가 어디서 안탔는지 모두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좀 흘러서 아침 출근시간이 되고 낮에도 이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고 퇴근길에도 이용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 누구도 새벽 4시와 4시 5분에 출발하는 6411번 버스가 출발점부터 거의 만석이 되어 강남의 여러 정류장에서 5,60대 아주머니들을 다 내려준 후에 종점으로 향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분들이 아침에 출근하는 직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들 딸과 같은 수많은 직장인들이 그 빌딩을 드나들지만, 그 빌딩에 새벽 5시 반에 출근하는 아주머니들에 의해서 청소되고 정비되는 것을 의식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입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한 달에 85만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입니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지금 현대자동차 그 고압선 철탑위에 올라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23명씩 죽어나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용산에서 지금은 몇 년째 허허벌판으로 방치되고 있는 저 남일당 그 건물에서 사라져간 다섯 분도 투명인간입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이들은 아홉시 뉴스도 보지 못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이 분들이 유시민을 모르고 심상정을 모르고 이 노회찬을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 분들의 삶이 고단하지 않았던 순간이 있었겠습니까. 이분들이 그 어려움 속에서 우리 같은 사람들을 찾을 때 우리는 어디 있었습니까. 그들 눈 앞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손이 닿는 곳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에 과연 있었습니까.
그 누구 탓도 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이 정당이 대한민국을 실제로 움직여온 수많은 투명인간들을 위해 존재할 때 그 일말의 의의를 우리는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상 그동안 이런 분들에게 우리는 투명정당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정치한다고 목소리 높여 외치지만 이분들이 필요로 할 때 이분들이 손에 닿는 거리에 우리는 없었습니다. 존재했지만 보이지 않는 정당, 투명정당. 그것이 이제까지 대한민국 진보정당의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이분들이 냄새 맡을 수 있고 손에 잡을 수 있는 곳으로 이 당을 여러분과 함께 가져가고자 합니다. 여러분 준비되셨습니까?
어쩌다 보니 브런치에 레퀴엠만 줄곧 쓴다. 그래도 기록해서 기억하고 싶었다. 그래서 한에게 바치는 레퀴엠의 마지막 문장을 또 한 번 가져온다.
그가 편히 쉬었으면 좋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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