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인들 사이에선 유명한 야외 수영장이 있다. 아니다, 수영인이 아니더라도 경기 북부 사람들에겐 이미 유명할 것 같다. 바로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통일로 워터파크’이다. 여름이 다가오기만 하면 인스타그램 피드에 자주 오르내리는 곳이다.
수영인이 되고 나자 야외 수영장이 고파졌다. 이유인즉슨, 첫째, 평소엔 실내수영장에서 수영하기 때문에 하늘을 보며 수영하는 것에 대한 갈증이 있다. 호텔 수영장을 가면 되겠지만, 호텔을 가야 하니 비용이 만만찮다. 둘째, 촬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의 영법이 어떠한지, 내 수영복 태는 어떠한지 기록할 수 있다. 보통의 수영장은 촬영이 불가능하기에 이런 기회는 소중하다.
게다가 통일로 워터파크엔 규모는 작지만 물 미끄럼틀이 있다. 캐리비안을 가기엔 조금 거창한 마음이 들었기에 이 정도 크기의 물 미끄럼틀, 정말 딱!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물 미끄럼틀은 성수기엔 어린이들만 이용가능했다. 나는 타지 못했다.) 나는 이렇게 3가지 이유를 들어 야외 수영장을 썩 내켜하지 않은 남자친구를 설득했다. 이 설득은 먹히지 않았다. 다만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다른 한 가지 이유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취사가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남자친구는 야외 수영장 방문일을 기다리며 열심히 쇼핑을 했다. 가스버너, 돗자리, 종이 접시, 삼겹살, 어묵탕 재료, 음료수, 라면 등등.. 얼마든지 배달이 가능하고, 심지어 바비큐를 직접 할 수 있게끔 풀세트가 배달이 되는 곳인데도 남자친구는 직접 하나하나 모든 준비물을 구비했다. 나는 물건을 늘리기 싫어하고, 돈으로 수고를 살 수 있다면 기꺼이 지불하는 타입이라 남자친구의 이런 점이 조금 의아했다. 하지만 운전을 하는 것도 그요, 준비물을 챙기는 것도 그요, 요리를 하는 것도 그일 것이기 때문에 잠자코 있었다. 아 물론 약간의 볼멘소리는 했다.
성수기엔 새벽 6시부터 티켓팅을 해야 좋은 자리를 맡는다더라 등등의 카더라가 있었지만, 꿋꿋하게 새벽수영까지 마치고 출발했다. 도착시간은 대략 8시 50분. 운 좋게 몇 개 남지 않은 지붕 있는 오두막을 맡을 수 있었다. 수영은 9시부터 가능하기에 열심히 짐을 정리하고, 수영복으로 환복을 했다. 두근두근 했으면 좋으련만, 그런 설렘은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야외수영장에 가 고팠던 이유들을 하나도 충족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날씨가 흐리고 간헐적으로 보슬비가 내렸고(햇빛에 탈 일은 없어서 좋긴 했다.), 촬영을 하기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다만 그때서야 나를 다시 설레게 한 단 한 가지 이유가 남았으니, 그것은 바로 이름하야 최. 사. 가. 능. 하다는 것. 남자친구는 하늘이 흐리든 어쩌든 촬영 여건이 열악하든 어쩌든 개의치 않았다. 비가 와도 삼겹살은 구워 먹을 수 있으니까. 비가 와도 라면은 끓여 먹을 수 있으니까. 분명 나는 먹으러 간 건 아니었는데, 먹을 수 있다는 사실 덕에 무척이나 행복했다. 그리고 여기 있는 모두가 다 먹으러 왔다는 게 느껴졌다. 좌우앞뒤 할 것 없이 모두가 열심히 먹고 있었다. 자글자글 삼겹살 굽는 소리, 캔맥주를 부딪히며 짠! 하는 소리, 보글보글 라면 냄새, 치킨 냄새, 피자 냄새... 그리고 정말 정말 진심으로 말하는 데, 수영하다가 라면 먹고, 수영하다가 삼겹살 먹고 그러면 진짜 세상 꿀맛이랍니다.. 우리는 1차 수영 후 어묵탕, 2차 수영 후 삼겹살, 3차 수영 후 라면, 4차 수영 후 삼겹살과 라면. 이렇게 먹었다. 그러곤 집에 가는 길에 시원~한 카페 음료수까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하루였다.
다음에 또 야외수영장을 도전할 테지만, 그때는 나도 전략을 바꾸어 가기로 다짐했다. 야외수영장은 수영하러 가는 곳이 아니야. 날씨도 촬영도 사실 다 필요 없어. 핵심은 먹으러 간다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