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초대로 동호회 모임에 참석하게 되어도 뻘쭘하지만, 초대 없이 냅다 참석한 동호회 모임에서의 뻘쭘함은 말할 것도 없다. 나는 사교성이 없진 않지만, 모든 이들이 그러하듯 주인의식이 있어야만 사교성이 잘 발현된다. ‘나는 이미 이곳에 속해있고, 새로 들어온 여러분을 환영해요!’ 이 포지션은 내게 자신 있고 익숙하다. 하지만 내가 그 ‘새로 들어온 여러분’의 입장이라면, 게다가 연고도 없이 무작정 들어왔다면 어색한 시간들을 견뎌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동호회 모임의 주제는 ‘스타트 연습’이었다. 우리 센터에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스타트 강습으론 실력이 잘 늘지 않는다. 이렇게 외부의 수영 특강이나 동호회 모임에 참여해 실력을 늘릴 수 있다. 나는 올 1월에 스타트 연습을 하러 A동호회 모임에 참석했었다. 그때 친해진 수(영) 친(구)의 제안으로 오늘은 B동호회 모임에 온 것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이 수친은 이런 연습 모임을 위해 온갖 동호회에 다 가입했다고 한다. (정말 크레이지 스위머...) 그리고 그녀도 이 동호회에 친구 없이 혼자 간다고 했다. 그러니 내게 함께 하자고 제안을 한 것이다.
그렇다. 사실 오늘 나는 원래 혼자가 아니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지각하는 바람에, 그리고 나와 스타트 실력이 차원이 다른 까닭에, 그리고 그녀는 출근을 위해 일찍 퇴수를 하는 바람에 나는 혼자 온 것과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경험치가 있었다. 하나하나 생각해 보았다.
이 수영장은 우리 옆동네의 수영장이라 원정수영으로도 와봤고, A동호회 모임 때도 와봤다. [수영장? 접수]
다른 동호회였지만 어쨌든 스타트 모임을 경험하는 것도 벌써 2번째였고, 무리하게 스타트대에 올라갈 필요가 없다는 것도 배웠다. [실력 객관화, 완료]
게다가 이번 B동호회 사람들은 서울을 기반으로 한 동호회라서 그들 역시 손님의 입장이었다. 인구가 워낙 많은 탓인지 모임에 처음 참석한 사람도 나 외에 여럿 있었다. [동병상련. 좋아]
마음속으로 나는 괜찮다 주문을 걸며 의연한 척 샤워를 하고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런데 혼자 동호회 가는 것, 생각보다 너무 괜찮았다. 왜냐하면 나는 주워가기(?) 편한 포지션이었기 때문이다. 동호회의 호스트 격인 사람들 중엔 나처럼 이렇게 혼자 온 사람을 두고 보지 못하는 사람이 꼭 있다. 행여 소외감을 느낄까 말 한마디씩 걸어주셨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은 다 스타트대 위에서 시원하게 점프해 출발하는데, 혼자서만 스타트대 아래의 발판에서 조심스레 자세를 잡고 뛰고 있으니 그들의 측은지심을 자극하는 건 당연한 이치었다. 그들은 내게 자세 조언도 해주고, 기죽으면 안 되니 간혹 칭찬도 섞어주었다. 특히 언니들은 뒤에서 엉덩이를 밀어주는 등 과감한 터치까지 가리지 않으며 무한 코칭을 해주었다. 처음 말 걸어 주신 보라 수영복 언니, 친절하게 무한 조언해 준 핑크수영복님, 잘한다고 해준 민트 수영복님, 같이 온 멤버 같았던 빨간 수영복 언니들, 발가락 밀기라는 비법을 알려준 파랑 수영복 언니. 이 자리를 빌려 모두들 감사합니다. 여기 동호회.. 참 따습고 좋네요..
친구랑 갔으면 분명 덜 뻘쭘하긴 했겠지만, 이렇게 모두의 조언을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혼자 간 덕에 모두가 내게 말 걸기 편한 포지션이 되었다. 초반의 뻘쭘함을 견딜 수 있다면, 그리고 조언을 받아도 무색할 만큼의 모자란 혹은 어정쩡한 실력을 지녔다면, 혼자 동호회 가는 것도 추천해 본다.
아, 내가 들은 스타트 조언을 정리해 본다.
첫째, 점프가 아니라 발가락 밀기. 점프하려는 마음 때문에 배치기를 하는 것이다. 발가락에 힘을 주고 다리를 피고 끝까지 밀면 멀리 나갈 수 있다.
둘째, 엉덩이가 뒤로 빠지지 않게 하기. 달리기 스타트 자세를 참고할 것.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수 있는 엉덩이를 만들 것. 앞으로 쏟아지는 느낌
셋째, 수면아래에 있을 때는 돌핀킥으로 가볼 것. 저항을 줄일 수 있다. 그렇다고 돌핀킥을 너무 길게 하지 말고 수면 위로 몸이 올라오면 영법을 할 것
넷째, 턱을 들지 말 것. 턱이 들리면 몸이 펴지며 배치기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너무 턱을 내리면 내리꽂아질 수 있으니 조심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