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햇빛이 뺨을 달구었다. 더 잠을 청하려고 했지만 반쯤 정신이 들었기에 차에서 일어났다. 차 안은 무척이나 더웠다. 9월이 넘어가는 시점이라 시원한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더운 공기가 가득 차 있었다. 찝찝하기도 했고 더 누워있다가 타 들어갈 것 같아서 눈을 떴다. 그런데 내가 익히 알고 있던 곳이 아니었다. 의식한 건 아니었지만 눈을 떠 밖을 바라봤다. 엄마가 보였다.
검은 봉투를 손에 쥔 엄마는 종종 걸음으로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았다. 오른편에 봉투를 두더니 황급하게 자리를 떠났고 나는 알 수 없는 공간과 알 수 없는 시간대의 기억만을 간직한 채 오랜 기억 저편으로 이 기억을 집어넣었다. 9살 때였다. 누가 볼 세라 다급하게 차를 모는 엄마의 모습이 유달리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엄마는 요리를 곧잘 했다. 손이 큰 것도 있었지만 남도 출신인 것을 유달리 자랑하던 엄마는 요리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뒤지고 싶어하지 않았다. 겉으로는 별거 아니라고 손사레를 치지만 뒤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요리를 만들던 기억이 선명하다. 김치를 담글 때도 엄마는 좋은 재료를 쓰려고 했다. 남도 김치가 유달리 매워 나는 김치를 먹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아쉬워하며 김치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곤 했다. 이 맛있는 걸 왜 자식 놈은 먹지 못하는지 아쉬워하곤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항상 요리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던 엄마는 교회를 다니면서 제대로 된 요리 솜씨를 자랑할 수 있었다. 목사 사모님이 엄마 김치만 찾는다는 소문이 돌면서 엄마는 일약 스타가 되었다. 비법이 뭔 지 물어보는 이들이 많았지만 엄마는 그럴 때마다 겸손한 척, 그저 운이 좋았다는 말로 애써 말을 돌렸다. MSG를 쓰는 것 아니냐는 질문도 있었지만 이제까지 MSG 쓰지 않고 남편과 아들 먹였다는 말에 다른 아주머니들은 입을 다물었다.
김치를 쭉 찢으며 입에 넣을 때마다 나는 대체 이 손맛의 비법이 뭔 지, 종종 물어보기도 했다. 그때마다 엄마는 재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좋은 재료에 적당한 간만 있으면 그 누가 요리를 해도 맛있게 나올 수 있다고 자랑했다. 실제로 엄마가 구해오는 재료들은 상당했다. 요리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봐도 심상치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크기와 때깔이 다른 재료와 달랐다.
별 생각이 없었던 나는 우연치 않게 비밀의 순간을 알 수 있었다. 추석 때였다. 요리를 해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엄마는 부리나케 여러 재료들을 솜씨 좋게 요리했다. 나는 그 과정에서 엄마가 검은 봉투에 든 무언가를 요리에 뿌리는 것을 봤다. 호기심이 생긴 나는 옆으로 쓱 지나가면서 봉투 속을 살펴봤다. 참기름이었다. 어디서 구했냐고 물었더니 엄마는 당황한 모습을 보이며 참기름을 쓱 치웠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봉투 속 참기름은 엄마 요리의 비밀이었다. 보통 향이 아니었다. 입구에서 풍기는 향부터 달콤했다. 봉투 속 참기름을 꺼내 이리저리 둘러봤다. 바코드가 없었다. 시중에서 파는 물건이 아닌 게 분명했다. 혹시 이런 물건들이 더 있나 찾아봤더니 비슷한 재료들, 그러니까 시중에서 판매되는 게 아닌 것들이 눈에 보였다. 그럼 그렇지. 특제 소스가 있었던 것이었다.
요리를 잘하는 사람들은 비밀리에 요리를 공수해 오는 곳이 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인맥을 통해서 아주 귀한 재료들을 구한다는 이야기. 엄마가 그런 곳을 알고 있다는 생각을 떠올린 적이 없기에 나는 호기심에 질문을 쏟아냈다. 대체 비밀리에 운영되는 그 곳에 내가 가볼 수 있는지, 언제부터 그런 곳을 알게 되었는지 같은 것들.
엄마는 웃기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한심한 눈으로 날 쳐다봤다. 너 먹이느라 고생 많이 했다는 말과 함께 때마침 잘 됐다며 날 바라봤다. 운전해서 갈 곳이 있다는 것이었다. 장소는 목포. 목포까지 가는 게 말이 되냐며 떼를 썼지만 내 등짝을 때리며 잔말 말고 운전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는 수 없이 목포까지 운전을 해야 했다.
엄마가 얘기한 장소는 꽤나 한적한 곳이었다. 깊숙한 시골마을까지 가야 해서 장소가 맞냐고 몇 번이나 되물었지만 그 곳이 맞다고 했다. 내비가 안내한 곳은 교회였다. 시골마다 하나씩 있는 교회 건물. 수더분한 모습을 한 아주머니가 반갑게 엄마를 맞이했다. 엄마는 나보고 아주머니에게 인사하라고 눈치를 줬다. 고개를 꾸벅 숙였더니 벌써 이렇게 컸냐고 아주머니가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순간 기억이 났다. 9살 때의 기억이 떠오르며 그 때 어머니가 손에 든 검은 봉투에 대한 기억도 같이 떠올랐다. 아주머니는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교회 안은 생각보다 소담했다. 넓은 강당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던 공간은 상상을 초월하는 장소였다. 한 켠에 쌓여 있는 쌀과 고춧가루, 그리고 강황과 참기름 등 각종 재료들이 쌓여 있는 곳이었다.
전화로 미리 얘기를 해 놓았는지 우리가 가져갈 물건은 따로 떼어놓은 상태였다. 참기름과 고춧가루. 상당한 양이었다. 고생했으니 앉아서 쉬라는 이야기와 함께 아주머니는 내게 수정과를 주었다. 쪽 빨았더니 달콤한 향이 일품이었다. 고생도 했으니 나는 의자에 앉아 대체 이 곳의 정체가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단골집.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엄마는 이 곳을 이용했다고 한다. 어렸을 적, 중학교 음악 선생님이었던 엄마는 종종 주말에 교회 반주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한다. 솜씨가 괜찮았기에 엄마의 연주를 요청하는 곳은 여러 곳이었고, 이 교회도 그런 곳이었다. 오며 가며 일을 하던 엄마를 교회 사모가 좋게 봤다고 한다. 결혼도 안 한 젊은 처자의 입을 걱정했던 교회 사모는 몰래 엄마를 불렀다. 쌀과 기름을 나눠주며 가지고 가라던 사모의 요청을 엄마는 여러 차례 거절했었다. 하지만 간곡한 부탁에 엄마는 음식들을 가지고 갔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엄마 요리 인생이 달라졌다. 사모가 직접 재배하고 가꾼 음식 재료는 놀라운 수준이었다. 처음에는 부담스러워서 거절하려고 했던 엄마도 그 맛과 향에 반할 수밖에 없었다. 한 두 번 받았다가 아예 사모의 연락처를 받아 정기적으로 재료를 공수하기도 했다.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었다.
가끔 고향에 내려간다고 얘기했던 엄마의 말을 곰곰이 돌이켜 생각해보면 재료를 공수해 오겠다는 이야기였다. 모든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지금까지도 이어진 질긴 인연에 감탄했었다. 엄마는 살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계기로 맺어진 인연이 더 오래 갈 수 있다고 얘기했다.
실제로 그러했다. 너무나도 삶이 힘든 시기. 엄마는 모든 걸 다 포기하고 고향에 정착할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엄마를 말렸던 것이 아주머니, 교회 사모였다. 그녀는 힘 없이 주저 앉은 엄마를 가만히 쳐다보고는 말없이 껴안아 줬다고 한다. 엄마는 품 속에서 실컷 울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다시 서울로 돌아왔고, 아빠를 만나 서울에 정착했다.
아주머니와의 회포를 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내 오른편에 놓인 검은 봉투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푸짐한 양이었다. 이제 추석도 됐으니 사람들 초대하자는 엄마의 말이 들렸다. 음식이나 크게 해먹자는 엄마의 말에 나는 몸서리를 치며 싫다고 외쳤다. 그런 내 말을 귓등으로 넘기며 흥얼거리는 엄마의 모습이 익숙하게 느껴졌다.
문득 그 모습을 보니 9살 때 차 안에서 흥얼거렸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알 수 없는 유행가 노래를 흥얼거린 엄마의 모습. 묘하게 즐거운 모습을 하던 엄마는 그 날도 추석을 맞아 먹고 싶은 게 무엇인지 내게 물었다. 내가 뭐라고 얘기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 때 엄마가 지었던 표정은 또렷이 기억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