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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진이 May 03. 2018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어글리 코리안이 가득하다면?

특별한 가치의 보편화가 주는 의미

통일이 되기 전에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경험해야 할 이유?


내게 있어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를 손꼽으라고 하면, 포르투갈령 대서양 섬, 테르세이라라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당시 라이언에어 가격이 너무 저렴해서 호기심에 가본 곳이었지만, 대서양의 제주도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경치가 뛰어난 곳이었다. 경치와 더불어 그곳이 가장 좋았던 장점 중 하나는 아이러닉 하게도 동양사람이 나 혼자뿐이었다는 점이다. 사실 여행을 하다 보면 많은 한국인들을 만날 수 있는데 속된 말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어글리 코리안’을 많이 만날 수 있다. 북적대고 번잡한 관광 한가운데에 값비싼 촬영장비들을 늘여트려놓고 인생 샷을 건질 때까지 한 시간이건 두 시간이건 절대 자리를 비키지 않는 청춘들이 있는가 하면, 어르신들이 느닷없이 한국말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등... 최소한 테르세이라에서는 그런 이들을 만날 일이 없어서 진심으로 좋았다.

포루투갈령 대서양섬, 테르세이라의 아름다운 모습  


구체적인 방안 없이 김정은 정권이 스스로 와해되기를 기대하며 밑도 끝도 없이 통일대박을 외쳤던 지난 정권. 촛불의 힘으로 무책임했던 지난 정권을 끌어내리고 새롭게 다시 뽑은 대통령과 새 정권은 북한이 아무리 무력도발을 했어도 줄기차게 평화와 대화를 강조했고 양국 간의 신뢰가 바탕이 되어 역사적인 상봉까지 이어질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난 남북 판문점 상봉 이후, 가장 대두되는 사항은 단연 반세기 넘게 끊겨 있었던 남북철도 연결이다. 집 앞에서 기차를 타고 출발해 중국과 러시아를 거쳐 서유럽 끝까지 갈 수 있다는 블록버스터급 스케일을 상상하며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이들도 많이 있는 반면,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서 굳이 철도를 다시 연결해야 하냐며 의의를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마지막 땅'이라는 의미를 가진 세상의 끝, 피스테라 | 사진: 김두희 순례자


통일대박론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국정운영을 안일하게 대했던 지난  정권이 그나마 잘한 것을 딱 한 가지 꼽아보라고 하면, 개인적으로 러시아 무비자 여행 체결이라 말하고 싶다. 지금이야 수많은  청춘들이 허물없이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와 모스크바 &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오고 가지만, 사실 소치올림픽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사람이 러시아를 간다는 건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러시아를 여행하기 위해선 비자를 만들어야 했고  러시아의 초대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당시 외할머니께서 ‘네가 진짜 빨갱이가 되려고 소비에트를 다 가는구나’라고 말씀하셨을 정도로 러시아는 너무 가깝지만 또 우리에겐 너무 먼 나라였다.

모스크바에 있는 한 호스텔의 모습


시베리아 횡단 열차 티켓을 구매하려고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지금처럼 블로그 포스팅을 통한 자유 여행 가이드도 체계적이지 않았던 때여서 번역기와 함께 외국어로 쓰인 블로그 글까지 찾았던 기억이 난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기 위해 출국한 날은 ‘한-러 여행 무비자 협정 발효일’인 2014년 01월 01일, 00시였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모스크바, 영어를 쓰면 외계인 취급하며 무시하던 현지인들을 겪으며, ‘역시 아직 러시아는 결코 가깝지 않는구나’라는 것을 느꼈지만...

제 1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에겐 다소 낯선 제 2세계의 중심, 모스크바


공산주의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던 모스크바 매트로, 신정 크리스마스 기간을 화려하게 장식하던 귐 백화점과 북유럽의 베네치아로 불리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아름다운 야경 등을 자세하게 묘사한 국내 콘텐츠들이 당시만 하더라도 드물었기에, 내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공산주의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모스크바 매트로


굳이 비유를 하자면 단기 러시아어 어학연수라고나 할까? 화려했던 서쪽 러시아의 추억을 뒤로한 채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집이 있는 동쪽으로 가는 길은 영어가 더욱 통하지 않았고 낯선 동북아시아에서 온 이들은 나와 내 친구뿐이었다. 그나마 기차에서 만났던 아시안은 몽골, 키르기스스탄, 카자흐키스탄 등 CIS권에서 러시안 드림을 꿈꾸며 우수리스크로 가는 이들이었고 당연히 영어나 한국어가 통할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베리아 횡단 열차 여행이 아직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되는 이유는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함께 보드카를 마시며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친구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또한 끝없이 서쪽으로 서쪽으로 이동하던 무궁무진한 지하자원과 물류상품이 우리에게 까지 연결된다면 자원 단가와 물류운송 단가가 파격적으로 낮아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남북철도가 연결된다면 한반도는 분명 유라시아의 위험한 변방에서 세상의 모든 중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까지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동쪽 종착역은 블라디보스토크이다. 4년 전, 그곳에서 집이 있는 파주까지 기차를 타고 가지 못했던 것이 정말 큰 아쉬움이었고 이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경험했던 이들 모두가 공감할 것이라 생각한다.

주유를 하며 잠시 쉬고 있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그 특별하고 소중한 추억을 많은 이들이 경험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던 찰나, 최근 소셜 네트워크에서 통일이 되어 남북철도가 연결되기 전에 빨리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낭만을 먼저 즐겨야 한다는 글을 보았다.

사진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이유인즉 시베리아 횡단 열차 여행이 보편화되면, 등산복을 입은 우리나라 어르신들이 시베리아 횡단 열차 안에 소주파티를 하며 다른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것이 안 봐도 뻔할 일이라는 것이다. 이 글을 보고 어느 정도는 공감이 되어 한참을 웃었지만 한편으로는 전 세계 구석구석 ‘어글리 코리안’으로써 활약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길래 이런 우스갯소리까지 돌아다니는 것인지 씁쓸했다.

혹한의 절정이었던 2014년 01월의 시베리아


물론 관광객이 많을수록 눈살을 찌 부리게 하는 각종 사건 사고들이 늘어나기는 마련이다. 급속도록 성장한 경제의 이면에 비추어진 성숙하지 못한 시민의식 중 하나이다. 당연히 반성해야 할 부분이고 조금씩이라도 고쳐나가야 할 부분이다. 여담이지만 부르키나 파소에서 석 달째 생활을 하다 보니, 급속한 경제성장 이전의 기성세대가 왜 변화와 혁신, 4차 산업혁명입으로만 떠들고 기존의 프로세스와 프레임에서 벗어나질 못하는지는 어느 정도 납득이 된다.

그래서 더욱 한반도의 모두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안목을 기르기를 적극 권장한다. 비행기로 편안하게 하늘 위로 날아다니는 것과 개고생을 할지언정 육로로 광활한 대지를 만끽하며 안목을 넓히는 건 차원이 다른 개념이다. 세상에는 시베리아의 광활한 설원도, 캐나다와 미국의 끝없는 옥수수 밭도, 스페인과 부르키나 파소의 드넓은 광야와 초원도 있는데 우리는 너무 좁은 땅에서 좁은 시각과 편견으로 개인의 능력보다 학벌과 스펙, 부모의 재력 등을 잣대로 대어 서로서로 박 터지게 싸우고 좌절하며 살아가고 있지 아니한가. 단언컨대 한국 땅은 너무 좁다. 설령 지금은 ‘어글리 코리안’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을지언정, 바깥구경을 했던 우리의 경험을 후배 세대에게 심어줘야 그들의 안목과 스펙트럼이 더욱 확장되지 아니하겠는가?

자루비노에서 여객선을 타고 속초항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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