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성진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진이 May 04. 2018

세상에서 제일 Hot한 곳

부르키나파소와 스페인 까미노의 오마주

산티아고를 걸어갔던 그 기억 조각이 오늘날의 현실과 겹치는 이유


이미 3월 초부터 시작된 부르키나 파소의 폭염. 3월 초부터 5월 초인 지금까지, 폭염의 절정을 훌쩍 뛰어넘고 있는 와가두구. 살면서 이토록 Hot했던 동네 또한 처음이다. 요즘은 날씨때문에 집 생각이 간절한 주기가 점점 잦아지고 있지만, 집 근처 PuB에서 서비스라고 한잔 더 받은 시원한 맥주 한잔에 모든 피로가 눈 녹듯이 사라지는 것도 솔직 담백한 팩트이다.

가만히 있어도 숨통이 턱턱 막히는 이 날씨에 어떻게 나무가 저렇게 푸를 수 있을까?


사실 그동안 있던 곳은 유난히 몸도 마음도 얼어붙을 것만 같던 곳이었다. 집이 있는 파주는 춥다. 그중에서도 판문점과 가까운 문산은 정말 춥다. 사실 파주보다 훨씬 추웠던 곳이 있는데 경험상 시베리아 한가운데 있는 치타나 하바롭스크만큼 강원도 고성 또한 한겨울에는 엄청 춥고 바람도 강하고 눈도 많이 온다. 거의 쁘띠 시베리아라고나  할까? 서울 같았으면 아직 따스한 햇살이 조금은 남아있을 수 있는 10월 중순부터 경칩이 훌쩍 지나고도 남을 4월 중순까지 눈이 오는 곳이니 말이다. 여담이지만 강원도 고성에서의 군생활 3년은 전방 보급로 제설작전을 했던 기억밖에 남아있지 않다. 좋게 표현하자면, '내가 눈이되고 눈이 내가 되는 호접지몽의 경지'라고나 할까?갓 들어온 이등병부터 중대장까지... 눈에 반사된 햇빛에 그을린 얼굴들... 오들오들 떨면서도 참 맛있게 먹었던  주먹밥과 컵라면. '일반인들은 돈주고도 볼 수 없는 금강산의 설경을 공짜로 만끽하고 있으니 감사한줄 알라'고 말하던 당시 중대장의 (아무도 공감할 수 없었던) 발언도 생각난다.


그래도 와가두구에서는... 4월 중순에도 눈이 오는 금강산 일만이천봉 중 한곳을 제설하며 등산해야 할 일은 없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인 건 확실하다.

주간온도 영하25도를 자랑하는 시베리아의 한파, 숨을 마실 때 허파가 어는 것 같다는 느낌이 정확한 표현인듯 싶다.


물론 혹자의 의견에 따르면 금년에는 평균 50도에 달하는 진짜 폭염이 빗겨간 것이고  차드나 말리, 니제르의 날씨에 비하면 와가두구는 파라다이스라고 하지만... 확실한건 본격적인 우기가 시작되는 5월 말 부터 6월 초까지는 이러한 폭염이 지속될 것이라고 모두가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평균 주간온도 40도, 야간온도 30도 이상을 유지하고 있는 와가두구. 한국 기준에서 폭염이라 불리지만 이곳에서는 그냥 평범한 날씨. 축축한 빨랫감이 바짝 마르는데 1시간도 채 허락하지 않는 와가두구의 잔인한 태양. 그 아래에 잠시만 걸어도 땀이 흥건히 나는데, 1년 전, 산티아고를 걸어갔던 그 기억 조각이 오늘날의 현실과 겹치곤 한다.

주간온도 영상 40도를 자랑하는 부르키나 파소의 폭염, 매일 황토 찜질방에 살고있다는 느낌이 정확한 표현인듯 싶다.


스페인 레온 지방을 걸었을 때의 느낌은... 마치 달궈지고 있는 거대한 프라이팬 위에 올려져 있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은 존재라고나 할까? 2월에도 살갗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느낌이었던 황야의 연속. 군대에서 100km 행군할 때는 응급한 상황에 나를 돌봐줄 수 있는 전우도 있고 응급차도 있고 때가 되면 알아서 밥 주고 간식도 주고 휴식도 취할 수 있게 해줬지만... 스페인 한가운데서 쓰러지면 누가 언제 지나가다가 객사한 나를 발견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내 곁에는 아무도 없고 오직 신과 나와의 관계뿐이었던 그날의 산티아고 가는 길.

끝이 없었던 산티아고 가는 길... 스페인어딘가...


첫발을 디딜 때부터 이미 확실하게 맛이 간 허리. 목근육부터 양팔을 거쳐 손끝까지 전해지는 저리저리한 고통. '제발 시원한 물 한 모금만 넣어달라고 아우성치는 목구멍.' 내가 왜 스페인까지 와서 이 개고생을 하고 있을까...' 하며 밀려오는 후회감.  하지만 까미노 위에서 우연히 프랑스인 신부님회복의 기도를 받은 다음날, 정말 신이 나를 어루어 만져 주신 듯, 전날보다 고통이 덜하고 몸이 가벼웠던 경험.

순례자의 유명한 상징인 가리비 표식, 그리고 팜플로나에서 구입한 소가죽 물통


천근만근 배낭과 함께 두발을 답답하게 조이고 있는 등산화와 양말을 잠시 벗어놓고 팜플로나에서 구매한 소가죽 물통에 고이 담아두었던 수돗물을 벌컥벌컥 들이키고 있노라면 지금 당장 숨을 거두어 주님 곁으로 갈 것만 같았던 기분에서 그나마 숨을 돌리 수 있었던 그 감사함. 산티아고를 두발로 걸어서 갔던 이들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물론 부르키나 파소에서도 그때와 비슷한 느낌을 겪곤 한다. 요즈음의 와가두구는 밖에서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픽-하고 쓰러질 수 있을 만큼 위험하지만, 어쩔 수 없이 지방 출장을 가야 할 때는 잠깐이나마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는 야외를 도보로 이동해야 한다. 사람뿐만 아니라 모바일 디바이스도 너무 힘들어하기 때문에... '디바이스의 온도가 너무 높아 동영상 촬영 기능이 불가능하다'는 문구를 심심찮게 본다. 죽을 것 같을 때마다 동네 작은 구멍가게를 찾아가 한화로 100원 정도 하는 살얼은 봉지 물을 벌컥벌컥 마시면 심신이 안정되며 세상 부러울 것 하나 없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물론 경우에 따라 약간의 흙 맛이 느껴질 때도 있고 각종 유해한 균이 있을 수도 있으니 주의를 하라고들 하지만...

평소 즐겨 마시는 부르키나 파소의 물봉지, 다행히 아직까지는 아무런 탈이 없었다.


사실 스페인 한가운데서 그토록 개고생을 하는 동안 중간에 만났던 다른 한국인 친구들은 이미 문명의 혜택을 누리며 기차 타고 버스  타고 쉽게 쉽게 프리패스를 하곤 했지만 왠지 모르게 그런 비겁한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고집대로 순수하게 두발로만 걸어서 결국  완주를 했고...

스페인 끝에서 끝까지 정직하게 두발로 걸어가면 모을 수 있는 '까미노 쎄요'


성실하게 두발로만 산티아고까지 갔던 나에게 주어진 특별한 선물은 오직 선택받은 극소수의 순례자에게만 주어지는 Hostal dos  Reis Católicos 의 호텔 전식 초대권이었다.

선택받은 순례자에게만 주어지는 호텔 전식 식사권


신부님의 회복의 기도? 신의 선택을 받은 성실하고 깨끗한 극소수에게만 주어지는 호텔 전식 식사권? 와가두구의 그토록 뜨거운 태양을  견디고 있는 대가는 과연 무엇일까? 아니, 나 자신은 이 무더위를  통해 무슨 깨달음을  얻고 있는 것일까? 오늘도 와가두구는 참  덥구나... ㅜ

성실하게 두발로 산티아고까지 도착한 내 자신에게 수여한 까미노 반지


매거진의 이전글 디자인 전공인 내가 굳이 뉴스 생산자가 되려는 고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