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캐나다 워홀 비자의 현실
몬트리올 멘탈 정착기 팔십 일간의 로그
2년 전, 퀘벡을 여행하지 않았더라면...
아니 차라리 퀘벡을 몰랐다면...
그토록 퀘벡에 대한 향수로 맘고생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2년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내 스스로가 잘났다고 생각해 고개 숙일 줄 몰랐던 에스 땡 기업 대외활동을 나 스스로 박차고 나왔고,
별들이 바람을 따라 스치는 그 길을 걸어갔으며,
두 번의 쥬르날리즘 인턴생활을 했고,
구멍 난 학점을 겨우겨우 메워 학사를 억지로 만들 수 있었으며,
안암동에서 마스터 디그리 어플라이를 리젝 당했고,
뭣도 모르고 아프리카까지 갔다가 아프니깐 아프리카다라는 걸 깨닫고 된통 상처 입던 찰나,
캐나다 학생비자를 만들려면 통장 잔액 증빙이 최소 몇천만 원 이상 있어야 될까 말까라는 카더라 뉴스를 듣고 뭐 같은 내 인생, 캐나다도 못 갈 바엔 '차라리 아프리카에서 혀 깨물고 할복하는 게 훨씬 낫지 않겠나' 싶던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던 바로 그때, 주변 지인들에게 끊임없이 캐나다를 전도했던 나의 지극정성 마음에 하늘이 감동했는지, 정말 영화처럼 경쟁률 20:1을 뚫고 2018년 5월 첫째 주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인비 선발에 뽑혀 곧장 도망쳐 온 이곳.
2년 전 갔던 몽로얄,
2년 전 갔던 Centre Bell,
2년 전 갔던 가라오케 르다트,
2년 전 봤던 자르뎅 서커스,
2년 전 봤던 폭죽놀이,
2년 전엔 몰랐던 베리유컴에 유난히 무지개 깃발이 많았던 이유까지...
무엇이 나의 심장을 진자 운동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마음으로 그리워했던 퀘벡이다.
그렇게 퀘벡에 도착한 지 벌써 82일 째이다.
이곳의 80일 또한 결코 순탄한 시간만은 아니었다.
(씬 넘버 만들고, 은행계좌 만들고 했던 과정들은 다른 분들이 친절하고 디테일하게 로그를 남기신 글들이 수도 없이 많으니 생략.)
2년 전 왔던 호스텔에 다시 찾아가 거두어달라고 사정하며 워싱 디쉬와 런드리 그리고 멉을 하며 석 달 동안 존버 했지만 성수기가 끝난 지금, 외노자들을 부담스러워하는 빠 트롱의 압박에 못 이겨, 암할 스트 스트릿 라이프의 전역을 앞두고 있다.
퀘벡 불어; 내 불어는 워낙에 근본이 없었기에 삼뚝이 깨질 것 같이 어려웠다. 처음에는 선생님이 레벨 4에서 아랫반으로 좌천시키려고 했으나, 여기서 배우고 싶다고 계속 존버 해서 겨우겨우 이수는 했다 ㅡ.ㅡ;;
일자리 구하기; 지구 반대편에서 천한 백정 신부의 피부색을 지니고 타고나 처음 이 땅을 밟은 내게 그나마 허락되는 일은 워싱 디쉬, 런드리, 멉 수준이다. 그나마도 구하면 다행, 그것도 아닌 경우 스시레스토랑 인터뷰 잡혔다고 밴쿠버로 뱅기타고 리턴하는 일본인 친구도 직접 목격했다. (주작ㄴㄴ투르 팩트 경험담) 퀘벡에 연고가 없는 한국인 청년이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가지고 처음부터 사무직을 구한다는 건 마치 낙하산 타고 떨어지자마자 칼 구팔에 육 배 줍줍 해서 치킨을 먹었는데 그 기세로 한 번에 호돈신을 9 카에서 10 카 만드는 수준만큼, 이론상으론 가능하나 실질적으론 쉽지 않다고 비유하고 싶다.
학교 어플라이; 학생비자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일단 입학지원서는 냈는데... 글쎄... 그냥 입 구녕에 먹을 것을 구겨 넣기 전마다 조용히 눈을 감고 열심히 기도하고 있다.
물론 순탄하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서 있는 이 땅(몬트리올)은 내 청춘의 애증이자 자부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