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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진이 Aug 24. 2018

미치도록 그리웠던 퀘벡에서 존버 하기

ft. 캐나다 워홀 비자의 현실


몬트리올 멘탈 정착기 팔십 일간의 로그

2년 전, 퀘벡을 여행하지 않았더라면...

아니 차라리 퀘벡을 몰랐다면...

그토록 퀘벡에 대한 향수로 맘고생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2년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내 스스로가 잘났다고 생각해 고개 숙일 줄 몰랐던 에스 땡 기업 대외활동을 나 스스로 박차고 나왔고,

별들이 바람을 따라 스치는 그 길을 걸어갔으며,

두 번의 쥬르날리즘 인턴생활을 했고,
구멍 난 학점을 겨우겨우 메워 학사를 억지로 만들 수 있었으며,
안암동에서  마스터 디그리 어플라이를 리젝 당했고,

뭣도 모르고 아프리카까지 갔다가 아프니깐 아프리카다라는 걸 깨닫고 된통 상처 입던 찰나,

캐나다 학생비자를 만들려면 통장 잔액 증빙이 최소 몇천만 원 이상 있어야 될까 말까라는 카더라 뉴스를 듣고 뭐 같은 내 인생, 캐나다도 못 갈 바엔 '차라리 아프리카에서 혀 깨물고 할복하는 게 훨씬 낫지 않겠나' 싶던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던 바로 그때, 주변 지인들에게 끊임없이 캐나다를 전도했던 나의 지극정성 마음에 하늘이 감동했는지, 정말 영화처럼 경쟁률 20:1을 뚫고 2018년 5월 첫째 주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인비 선발에 뽑혀 곧장 도망쳐 온 이곳.


2년 전 갔던 몽로얄,

2년 전 갔던 Centre Bell,

2년 전 갔던 가라오케 르다트,

2년 전 봤던 자르뎅 서커스,

2년 전 봤던 폭죽놀이,

2년 전엔 몰랐던 베리유컴에 유난히 무지개 깃발이 많았던 이유까지...


무엇이 나의 심장을 진자 운동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마음으로 그리워했던 퀘벡이다.

그렇게 퀘벡에 도착한 지 벌써 82일 째이다.

이곳의 80일 또한 결코 순탄한 시간만은 아니었다.


(씬 넘버 만들고, 은행계좌 만들고 했던 과정들은 다른 분들이 친절하고 디테일하게 로그를 남기신 글들이 수도 없이 많으니 생략.)


2년 전 왔던 호스텔에 다시 찾아가 거두어달라고 사정하며 워싱 디쉬와 런드리 그리고  하며 석 달 동안 존버 했지만 성수기가 끝난 지금, 외노자들을 부담스러워하는 빠 트롱의 압박에 못 이겨, 암할 스트 스트릿 라이프의 전역을 앞두고 있다.

드디어 암할스트 스트릿에서 전역한다, 난 갈게 너흰 런드리 ㅋㅋㅋ ㅃ2


퀘벡 불어; 내 불어는 워낙에 근본이 없었기에 삼뚝이 깨질 것 같이 어려웠다. 처음에는 선생님이 레벨 4에서 아랫반으로 좌천시키려고 했으나, 여기서 배우고 싶다고 계속 존버 해서 겨우겨우 이수는 했다 ㅡ.ㅡ;;


일자리 구하기; 지구 반대편에서 천한 백정 신부의 피부색을 지니고 타고나 처음 이 땅을 밟은 내게 그나마 허락되는 일은 워싱 디쉬, 런드리, 멉 수준이다. 그나마도 구하면 다행, 그것도 아닌 경우 스시레스토랑 인터뷰 잡혔다고 밴쿠버로 뱅기타고 리턴하는 일본인 친구도 직접 목격했다. (주작ㄴㄴ투르 팩트 경험담) 퀘벡에 연고가 없는 한국인 청년이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가지고 처음부터 사무직을 구한다는 건 마치 낙하산 타고 떨어지자마자 칼 구팔에 육 배 줍줍 해서 치킨을 먹었는데  그 기세로 한 번에 호돈신을 9 카에서 10 카 만드는 수준만큼, 이론상으론 가능하나 실질적으론 쉽지 않다고 비유하고 싶다.

 

학교 어플라이; 학생비자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일단 입학지원서는 냈는데... 글쎄... 그냥 입 구녕에 먹을 것을 구겨 넣기 전마다 조용히 눈을 감고 열심히 기도하고 있다.


물론 순탄하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서 있는 이 땅(몬트리올)내 청춘의 애증이자 자부심이다 ^^

뷰가 좋았던 내방 테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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