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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진이 May 01. 2019

나는 꼭 캐네디언이 되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퀘벡 영주권을 딸 수 있을 것 마냥 떠났던 나 자신이 생각난다

너 언제까지 캐나다에서 그렇게 버티고 있을래?

처음 몬트리올에 도착했을 때, 아프리카 출신들을 몇 명 만났다. 개인적으로, 아프리카 사회에서 캐나다로 유입이 되려면 얼마나 어려울지 잘 알고 있었고, 또 느끼고 있었지만, 그들 모두 결국 아프리카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당시에는 그들이 왜 그렇게 말을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었으나, 약 1년 정도 캐나다 체류 경험을 가져보니 지금은 그들의 마음이 200% 이해가 간다. 이민자로서 북미 사회에 유입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언어가 유창해도, 만수르만큼 자본이 풍족해도, 전 세계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오픈마인드를 가졌더라도 그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물론 자본이 풍족하고, 영주권에 대한 열정과 끈기가 있다면 이민 성공에 대한 가능성이 쪼끔 높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넉넉한 인풋으로, 성공할 때까지 캐나다 사회에서 버티면 언젠가는 분명히 성공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다 보니 캐나다에서 태어났다거나, 사촌에 팔촌까지 끌어모은 가족들의 조력으로 유학생 신분으로써 인풋을 쏟아붓지 않는 이상 오늘날 퀘벡 이민은 사실상 꿈조차도 가지면 안 되는 SF급 망상이라는 현실을 누군가 귀띔이라도 해줬더라면 마음의 준비라도 했겠지만, 캐나다를 떠나기 전 내 주변 지인들은 모두 GOOD LUCK이라고만 했지, 현실적인 어려움과 구체적인 차선책들에 대해 조언해줄 수 있는 이들이 없었다.


노트르담 대성당 앞에서 | 출처 Pixabay.com


당장이라도 퀘벡 영주권을 딸 수 있을 것 마냥, 당당하게 캐나다로 떠났던 나 자신이 생각난다. 하지만 몬트리올은 생각했던 것처럼 만만한 사회가 아니었다. 수십 명의 경쟁률을 뚫고 어렵게 얻은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비자였지만, 현지에서 할 수 있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학생비자가 아닌 이상 '어차피 너는 떠날 사람'이라는 편견, 동양인은 말이 어눌하고 서툴다는 편견, 남자는 여자보다 손이 느려서 안된다는 편견 etc...


캐나다에서 버티고 있는 것이 불효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꼭 캐네디언이 되고 싶었다. 

수많은 이민 1세대들이 그러하듯이, 비록 자신이 온갖 차별과 고초를 겪어야만 하더라도 퀘벡에서 제공하는 모든 복지혜택을 누릴 내 미래의 아이를 위해서라도 모든 고난과 역경을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몬트리올 전경 | 출처 Pixabay.com

퀘벡에서 석사를 마치고 영주권과 시민권을 얻으리라 굳게 믿었던 나의 희망과는 달리 부모님과의 관계, 비자 문제 등 현실의 벽은 도저히 물리적으로 깨기 어렵게만 느껴졌기에, 수년간 기대하고 또 기도했던 공든 탑을 스스로 무너트리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에어 캐나다에서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배게에 얼굴을 파묻고 몇 시간을 서럽게 울었던 나 자신이 그렇게 불쌍해 보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슬픈 맘으로 한국에 도착한 지 벌써 보름이 지다. 사실 모든 환경이 몬트리올보다 훨씬 좋다. 쾌적한 우리 집, 빠르게 빠르게 돌아가는 모든 시스템과 인터넷. 저렴한 PC방, 편의점 도시락, 스파 사우나, 야구장에서의 열정, 카페나 레스토랑에서의 질 높은 서비스를 팁도 안 주고 365일 24시간 동안 누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모두가 한국말을 쓰고, 더 이상 커뮤니케이션이 핸디캡이 아니라는 것이 정말 감사하다. 불과 2주 전까지 영주권을 따겠다는 똥고집으로 교회에서 섬겨주는 밥과 짜파게티로 연명했던 기억의 파편들은 잔상만 남았을 뿐이다.

Jean-Drapeau 전경 | 출처 Pixabay.com


하지만, 퀘벡 국경일날 봤던 Hubert Lenoir와 Claude Dubois의 퍼포먼스도, Pont Jacques-Cartier의 불꽃놀이도, Centre Bell도, Jean-Drapeau의 일렉트로닉 댄스파티도, Mont Royal도, La Ronde도, Mont-Tremblant도, Berry-UQAM 근처의 어느 가라오케도, Provigo도, IGA도, Pizza Pizza도…. 여전히 몬트리올의 많은 추억들이 그립다.


내가 캐나다를 다시 갈 수 있을까? 글쎄, 이미 한 번의 기회를 놓쳤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 이런 기회가 흔치 않다는 것 또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단지, Ici Radio Canada에서 자주 들었던 Sally Folk의 Les heures de visite를 들으며 몬트리올에서 지난 추억을 회상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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