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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진이 Oct 17. 2018

이 죽일 놈의 퀘벡 입학 시스템

ft. 忍(참을 인)x 100,000,000




귀하의 요청을 처리 중입니다. 조만간 요청에 대한 답변을 드릴 예정입니다.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깨끗한 대자연, 걱정 없이 마음껏 사 먹을 수 있는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의 착한 유통가, 비교적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가진 이웃  등등, 캐나다 생활에서 하루하루 감사한 삶을 살고 있지만 여기도 사람이 사는 동네인지라 흠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곳에서의 가장 대표적인 흠을 말하자면, 바로 忍(참을 인)x 100,000,000을 요구하는 행정 시스템이 아닐까 싶다. 간단한 증명서류 정도는 무인발급기나 웹으로 셀프 발급이 가능한 한국을 생각한다면 복장 터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에서 간편하고 편리한 행정시스템을 누리던 나에게는 스트레스로 느껴질 정도의 곤욕이다.  

물론 부르키나 파소에 거주했을 때도 뱅크 오브 아프리카에서 간단한 수표 입출금 업무를 보기 위해, 전기도 안 들어오는 은행에 서서 기본 3시간 이상씩 기다렸던 기억이 있고, 퀘벡 밖의 다른 캐나다 주에서도 행정 속도가 빠릿빠릿한 편은 아니라고들 하나, 특히 퀘벡에서도 서아프리카 때처럼 거북이 기어는 듯한 행정을 겪어야 하니, 이즈음 되면 복장 터질 정도로 답답한 행정이 불어권 종특 주특기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퀘벡에 있는 학교를 지원한 지 벌써 두 달이 다 되어 간다. 혹시나 조금이라도 바뀐 문구가 있을까 싶어 하루에 스무 번도 더 입학 요청 계정에 접속을 해보지만, 오늘도 나를 반기는 문구는

"귀하의 요청을 처리 중입니다. 조만간 요청에 대한 답변을 드릴 예정입니다."

라는 말 뿐이다.

내가 지원한 곳의 입학 과정은 다음과 같다.

○ 입학접수팀이 지원자의 지원서를 꼼꼼히 살핀 후, 행정적으로 입학 조건에 문제가 없다는 확정이 되면, 해당 학과의 신입생 평가 소집 위원회에 지원자의 프로필을 준다. (이때부터 입학 지원자는 후보자로 신분이 격상된다)
○ 해당 학과의 신입생 평가 소집 위원회에 후보자의 지원서를 평가하고 선발을 한다.
○ 해당 학과의 신입생 평가 소집 위원회에서 선발한 신입생의 입학 추천서를 다시 입학팀에 보낸다.  
○ 마지막으로 정말 입학에 문제가 없는지 꼼꼼하게 살핀 후, 후보자에게 입학허가 통지서를 보낸다.

> Certificat d’acceptation du Quebec, 학생비자 등의 절차 등, 사실상 전쟁은 여기서부터가 진짜 시작

위의 입학심사를  진행함에 있어, 한국처럼 입시일정이 따로 공시되어 있는 것도, 학교 행정팀에 문의한다고 가려운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 주는 것도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용기를 내어 입학지원팀에 보낸 문의 연락은 응답을 제대로 기대하기 힘든 게 사실이었고 그나마 3주만에 왔던 답변으로는 "처리 중이오니 기다려라"는 답변뿐이었다.

10월 2일에 보낸 문의연락에 10월 17일날 응대한 학교 입학처... ㅎ (결론은 처리중이니 기다리세요 ㅎ)


오지게 복잡한 입학과정은 이해할 수 있다지만, 한국식 정서로써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는 황당한 희망고문을 뽑자면, 입학접수팀에서 지원자의 입학 지원서를 정상적으로 접수하고 인정하는 즉시 학생포털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물론 학생포털은 입학 확정과 절대적으로 무관하다. 학교에서 후보자를 위해 학생포털까지 만들어줬더라도, 경우에 따라 입학 거절을 당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물론, 입학 거절 사유는 학교측 컨디션에 따라 알려줄 수도 안 알려줄 수도 ㅋ)


실제로 후보자 단계의 학생포털에는 "귀하의 프로필에 프로그램이 등록되어있지 않아 요청을 진행할 수 없다"는 문구만 덩그러니 있을 뿐이다. 입학이 확정되고 입학금까지 납부를 해야 학생포털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만들어주는 한국식 정서와 가장 큰 차이이다.

혹시나 정말 입학이 된다면 당장 1월 초부터 수업 시작인데 도대체 학교를 다니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체류비자를 만들 시간마저 압박을 받고 있지만, 교민사회에 문의를 해봐도 100이면 100 '여기는 원래 그러니 무조건 기다리는 것 밖에 답이 없다'는 식이다. 이즈음 되면 희망고문을 넘어 입학 후보자의 씨를 말리는 수준이라 생각하지만... 별 수 있겠는가... 로마에 오면 로마의 방식을 따르는 수밖에...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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