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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진이 Oct 18. 2018

아프니깐 파주다

리틀 헝거는 누구를 위해 날갯짓을 하고 있나.

"여기 귤이 있다고 믿는 게 아니라, 귤이 없다는 걸 잊어버리는 거야. 그게 다야. 중요한 건 진짜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러면, 입에 침이 나오고 진짜 맛있어."
- 영화 '버닝' 中... 혜미의 대사 -

| 사진출처: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 中...

학부시절 땡땡 기업에서 대학생 자원봉사단 활동을 하던 추억이 있다. 중간에 나 스스로 내려놓을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지만, 좋은  환경 출신의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었던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참  감사했던 시절이었다. 아쉬운 기억이 있었다면, 그 당시 뒤풀이 시간을 많이 가졌는데 항상 저녁 10시 즈음이 되면, 막차 끊길 시간이라고 나 혼자 뒤풀이 자리를 박차고 나왔어야 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시절이 정말 아쉽다. 내가 만약 서울에 살고 있었더라면 부담 없이 뒤풀이를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 친구들과 조금 더 친해질 수 있었을 텐데... 그리고 이러한 작은 조각들이 하나 둘 모여 더 나은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지금도 들곤 하지만 벌써 몇 년 전 이야기이기에 아쉬움은 지우고 추억 속 저 구석에 아름다운 장면들로만 저장하려 한다.

프랑스 친구들 사이에서도 이미 유명인사일 만큼 세계무대에서 인정받는 아티스트가 있다. (BTS 말고 ㅜ)

이창동 감독과 그의 작품 '버닝'이다. 이창동 감독은 천재다. 파주에서 초중고를 나오고 지금도 서류상 거주지가 파주에 등록되어 있는 나로서, 그리고 '아프니깐 파주다'의 구성원으로써, 이창동 감독에게 머리 숙여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이창동 감독이 그의 작품 '버닝'에서 그려낸 우리의 모습은 마치 논픽션이 아닌, 픽션이라 느껴질 만큼 정확하고 정밀하다.

| 사진출처: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 中...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보편적인 아프니깐 파주다'는 리틀 헝거이다. 아무리 날갯짓을 해도 결국 리틀 헝거는 리틀 헝거일 뿐이다. 사무실이 있는 정규직 직장은 서울 사는 친구들의  경쟁 자리이고 수많은 우리는 단기 아르바이트라도 구하면 감사한 일이다. 파주가 서울과 몇백 km씩 동떨어져 있는 것도 아닌데  서울과 분위기가 너무 다르다. 군부대와 어르신이 많은 시골이다. 물론 남파주인 운정 쪽은 거의 일산 수준의 생활권이 보장되고 있고, 서울이나 일산 등의 진짜 수도권에서 유입된 외부인들이 많지만.... 북파주인 파주읍은 아직도 1970년대의 모습을 라이브로 보는 듯한 진풍경을 경험할 수 있다. 예를들면 스타벅스가 운정, 금촌(최근)까지만 생겼고 문산은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정작 운정이 고향이지만 신주택을 살 형편조차 못 되는 힘없는 이들은 조금씩 조금씩 이북과 가까운 외지로 내몰리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집, 파주시 파주읍


애당초 그레이트 헝거로 태어났다면 경의선이 25분에 한 대씩 도착하고, 엄동설한에 문산읍내에서 법원리까지 이어지는 12번 버스를 30분씩 기다려야 하는 파주에 살 필요가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파주읍에서 서울까지의 출퇴근을 위해 하루에 약 6시간 이상씩의 금쪽같은 시간을  소진할 수 밖에 없었다.

| 사진출처: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 中...


출퇴근 문제뿐만이 아니라 헬조선에서는 파주 사람인 것 자체가 흙수저 인증인데, 우리가 서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어찌 그리 한결같이 좋은 환경 출신들인지... 나는 정말 한걸음 한걸음 어렵고 힘들게 정면 돌파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데 '내가 몇 년 동안 노력했어야지 이룰까 말까 할 수 있었던 것들을 그들은 그저 타고난 환경으로 너무 쉽게 가져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느껴지는 박탈감과 자괘감의 고통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이다.

| 사진출처: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 中...


아프니깐 파주다 뿐만이 아니라, 조금 더 넓은 시각에서 '버닝'을 해석하자면, 아무리 헬조선의 정권이 바뀌어도 리틀 헝거가 가장 취약한 환경에 있는 건 절대 바뀌지 않는 사실이다. 브라운관 속 이 땅의 지도층들이 '청년실업 해결'을 외치곤 하지만, 최소한 나에게는 그저 지지율에 목마른 정치인들의 모습으로만 보일 뿐이다. 자신들은 이미 어느 위치 이상에 올라간 이들이고, 심지어 금수저 출신들로 능력 있는 부모의 따뜻한 슬하에서 인큐베이팅될 수 있었기에 어렵고 힘든 상황과 환경에 처해있는 보편적인 헬조선 서민들의  삶을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극단적인 예를 들면, 코레일의 가장 황당했던 사업 중 경의선 독서바람 열차 사업이 있었다. 정작 경의선 실이용고객인 우리에게 필요했던 것은 유니버셜급 경의선 배차간격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고 배차 자체를 늘려주는 것이었지만,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했던 것인지 아직도 이해를 할 수 없다. 추측컨대, 위정자들이 경의선을 실생활에서  이용해본 적이 없고, 가끔씩 자전거 끌고 파주나 양평에 바캉스 가는 몇몇 이용자들을 위한 좋은 그림을 만들기 위해 껴맞춘 졸속 사업이라 자신 있게 비판한다.

이러한 피해의식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 비판하는 자! 혹은 통일이 되면 파주 땅값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부럽다는 식으로 말하는 자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 본다. 하지만 그 또한 자본이 있는 자들이 누릴 수 있는 것. 파주읍에 살고 있는 자체가 사회적 제도 보장을 받지 못하는 핸디캡이라 생각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땅의 기성세대는 부모탓 환경 탓하지 말라고들 말한다. 단순하게 생각해도 유아기부터, 거주지 환경에 따라 현실적인 기회의 보장 자체가 달라지는데 어찌 그리 뻔뻔하게 둘러댈 수 있는지 기가 찰 노릇이다.


어쩌면 이창동 감독은 우리에게 이미 답을 정해 준 것이라 생각한다. 그레이트 헝거가 되기 위해 날갯짓하던 혜미가 연기처럼 사라졌던 것처럼, 헬조선 땅에서 미천한 신분으로 태어난 우리는 그저 그레이트 헝거들의 입맛에 체계 잡힌 사회 시스템 속에 연기처럼 사라질 뿐이라 확신한다.

| 사진출처: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 中...


당신은 오늘도 그레이트 헝거가 되기 위해 날갯짓을 하고 있는가. 날갯짓을 끊임없이 하는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소설 속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무지개를 끝없이 쫓던 그 소년의 모습이 결국 나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어른이 된 것이고 진짜 철이 든 것이라 칭찬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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