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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진이 Oct 20. 2018

무엇이 나를 퀘벡으로 이끌었나?

자기 암시란 정말 있는 것일까?

부르키나 파소에 있을 때, 와가두구에서 보보-디올라소로 가던 중, 갑자기 차량이 고장 나 한참을 엉거주춤하다가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고속버스를 타고 다시 목적지로 향할 수 있었다. 버스가 도로를 한참 달리던 중, 갑자기 몇몇 현지인들이 왼쪽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려 그쪽을 쳐다보니, 엄지손가락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저 멀리, 엄마 야생 코끼리와 아기 야생 코끼리 그리고 긴 막대 창으로 그들을 위헙하던 원주민들의 모습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워낙 찰나의 순간에 휙- 하고 지나갔기에 동행했던 현지인 동료들은 아무도 그 야생 코끼리를 보지 못했다지만, 나는 똑똑히  봤다.

| 사진출처: 픽사베이


며칠 후, 다시 와가두구로 돌아왔을 때, 지인분들께 야생 코끼리를 봤다고 하니 갑자기 그분들의 안색이 굳었다. 이유를 여쭈어보니, '부르키나 파소의 야생 코끼리를 목격했다는 한국인들은, 얼마 뒤 행운과 함께 부르키나 파소 땅을 떠났다'는 것이다.

"나도 야생 코끼리 봤으니깐 부르키나 파소에서 곧 떠날 것이다!"라고 이야기할 때마다, 배꼽 잡고 쓰러지며, "제발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좀 멈추라"라고 한참 동안 나를 조롱했던 현지인 동료들. 자기 암시란 정말 있는 것일까? 야생 코끼리를 목격한 후, 약 두 달 하고도 보름 후, 진짜 부르키나 파소를 떠나 캐나다로 가게 되었다고 사정을 이야기하니, "나도 야생 코끼리 꼭 발견해서 너 따라서 캐나다 갈 것이다"라고 절박한 농담을 하던 현지인들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며칠 전 우연히 3년 만에 접속한 나의 개인 블로그에 나 스스로가 아주 예전에 게시했던 게시물을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얼마 전, 지원한 학교의 입학정보와 관련된 게시물을 나 스스로가 이미 3년 전에 개인 블로그에 게시했던 것이다. 3년 전에는 그냥 대수롭지 않게 했던 행동이었겠지만, 지원한 학교의 존재 자체를 인지하고 본격적인 입학정보를 조사하기 시작한 것은 근래의 일이었기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from CHO


3년 전에는 기억해야 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던 나의 뇌 속 기억장치 조차 인식하지 못할 만큼 은밀하게 삭제된 과거라고 생각하지만, 내 심장은 퀘벡과 아무 상관없던 당시의 그 엉뚱했던 행동을 소중하게 보관했고 또 나 자신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관념'이라는 시그널을 보내기 위해 그동안 베이스를 울렸던 것일까?  

from CHO


2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캐나다에 장기체류를 할 수 있는 여건과 상황이 아니었기에, 미국 동부 여행을 하면서 곁다리식으로 퀘벡 여행 일정을 무리하게 껴맞추었던 추억이 생각난다. 여행을 하며 잠시 발만 담갔던 퀘벡 몬트리올 대성당 앞 광장에서 '언젠가 이 광장을 다시 올 것이고 난 여기서 살 거야!'라고 스스로 굳게 다짐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몬트리올 정착에 본격적인 걸음마를 때기 시작한 지금, 2년 하고도 2개월이 지난 오늘, 다시 찾아간 몬트리올 대성당 앞 광장에 노랗게 물든 낙엽이 휘날리는  가운데 '결국 내가 스스로 다짐했던 작은 목표 하나를 이루었다'는 벅차고도 복잡 미묘한 심정에 한참  동안 성당 입구 계단에 앉아 낙엽들을 보며, 사색의 시간을 가졌다.

from CHO


경의선 출·퇴근 시간에 매일 같이 반복해서 보고 듣던 퀘벡 샹송? 캐나다 국가? 몬트리올 캐네디언스 경기 영상? 정말 자기 암시가 나를 이곳으로  이끈 것 일까? 정말 3차원 세계의 자기 암시란 것이 있어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일까?

혹은, 공상과학영화처럼, 이미 3차원 세계 시간의 처음과 끝을 관장하고 있는 4차원 이상의 존재의 시점에서 흘러가고 있는 시간의 과정일 뿐인 것일까?


 마치 '산티아고 가는 길의  순례자들이 고된 순례길에 오른 이유를 오직 하늘 위에 계신 그분만이 알고 계시다'라고 하였듯이, 하늘 위에 계신 그분만이 답을 알고 계시리라 생각한다.

from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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