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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u Poloi Mar 18. 2018

독일에서의 지난 3개월

지난 몇 개월의 소박한 독일 생활기 

남들보다 조금 늦어진 대학 졸업을 막 앞두고, 남들처럼 대기업 취업 준비에 뛰어들어야 했다. 주위의 친구들은 하반기 취업 준비에 정신이 없었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 대화의 거리에도 단연 대기업이었다. 우리는 서울의 괜찮은 대학 공대생이었으니, S나 H기업이 목표인게 너무나 당연시 여겨졌다. 내 눈에 그 길은 목적 없이 달리는 길로 보였고 현실에 굴복한 타협으로 보였다. 나는 다른 길을 걸어가고 싶었고 새로운 환경에서 나만의 길을 만들고 싶었다. 이대로 어느 전형적인 한국 회사에 취업하게 된다면 지난 몇 년을 고향처럼 사랑했던 스페인과 그리고 그 스페인을 함께 열심히 걸어 다녀 준 독일에서 사는 그와도 영영 멀어지게 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쭈욱 도시에서만 살아온 나는 자연이 너무 그리웠고, 기나긴 유럽 생활에 나는 완전 짠돌이가 되어버린 데다가 채식을 하고 있는 나에게 한국생활은 부담이 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여러 국가에서의 오랜 방황은 나를 거의 히피로 만들어 버렸다.


나는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왔다. 특별히 재능이 있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공부도 곧잘 하고 친구들도 많은 편이었다. 대학에 입학한 후  첫 번째 기나긴 연애에 큰 실패를 맛본 후, 나의 인생이 조금 남들과 다른 길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고독의 항해'라고 나는 칭하고 싶기도 하다. 지난 6년간 3개 새로운 나라에서 살아왔다. 직접 은행에 가서 계좌를 개설하기도 하고 외국인 등록증을 발급받으러 나의 조국도 아닌 남의 나라, 그것도 3개의 완전 다른, 다른 언어를 쓰는, 나라들에서 공공 업무를 보고,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이 모든 일들을 나는 혼자서, 혼자만의 힘으로 애를 쓰면서 해왔다. 그러는 동안 나는 계속 새로운 언어를 배워야 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4개 국어를 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나는 언어라는 나의 재능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모든 일련의 '고독의 항해' 과정은 돌이켜보면 누구도 시키지 않은 나 혼자 결정한 항해였다. 


나는 그렇게 대학 졸업을 앞두고, 나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결심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독일로 가기로 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살고 있는 땅,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성공을 꿈꾸고 발 디디는 땅, 유럽에서 가장 취업의 기회가 열려있다고 알려져 있는 땅, 내가 살아보지 못한 땅 그리고 '말이 통하지 않는 나라' 독일로. 


일단 스페인에서 살 때 주변 친구들이 독일로 취업하고 싶어 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취업률이 유럽에서 최악 중 하나인 스페인 사람들에게 독일은 봉급면에서나 커리어면에서나 꿈의 땅이었다. 아마도 그런 영향이 나아게도 없지 않아 있었나 보다. 나도 막연하게 독일에서 취업이라는 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별생각 없이 비행기 편도를 끊고 독일로 온 지 이제 약 4개월이 다 되어간다. 


독일에 오고 한동안은 개으르게 지내왔다. 남자 친구가 해주는 밥을 먹고, 함께 사는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가끔 인터넷을 통해 비디오를 보며 독일어를 공부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독일어는 그동안 배워온 스페인어나 영어와는 또 다른 엄청난 문법을 자랑하는 언어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배운 것처럼 '오류를 범하더라고 일단 말하기'를 가장 가까운 남자 친구와 몇몇 친구들에게 시도하며 말도 안 되는 문장들을 매일매일 선보이고 있다.


가장 좋은 것은 나는 지금 내가 살아왔던 도시들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작은 도시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인구가  약 100,00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소도시에. 독일인들은 대부분 이런 소규모의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서 프랑크푸르트나 함부르크, 베를린에 사는 사람들을 향한 연민의 감정을 가지고서. 독일은 정말 지방 소도시 경제가 발전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대부분의 독일 사람들은 큰 도시로 가야 하는 이유도 못 느끼는 동시에 큰 도시로 가려고 하지도 않는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자전거로 15분이면 도시 내의 어디든 갈 수가 있다. 그리고 살면서 한 번도 자전거를 가져보지 못한 나는 독일에서 처음으로 자전거를 가지게 되었다. 남자 친구 할아버지가 당신이 쓰던 자전거를 선물해 준 것이다. 나는 이 자전거로 장을 보러 가고 가끔 숲 속으로 놀러 가기도 한다. 집에서 5분만 가도 이런 완연한 자연 속에 자리할 수 있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다만 독일은 겨울 내내 비가 오고 우중충한 날씨를 자랑하기 때문에 아직 자연과 그리 함께 할 시간을 많이 같지는 못했다. 그래서 여름은 여전히 손꼽아 기다리는 중이다. 


남자 친구는 나무를 공부하는 사람이다. 숲을 사랑하고 어디든 나무나 식물이 있는 곳만 가면 나에게 이것저것 설명을 잘 해준다. 서울에 살면서 은행나무, 단풍나무, 소나무를 제외한 그 어떤 나무의 이름도 알지 못했던 나에게 이 사람은 참 반대되면서도 배울 게 많은 사람이다. 우리가 처음 만난 스페인 갈리시아의 숲 속에서는 며칠간 갈리시아 산을 가득 매운 유칼립투스에 대한 설명을 들어야 했다.  


그는 개 한 마리를 키우고 있다. 이 곳에 온 뒤로 자연스레 나 또한 개를 한 마리 키우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유독 개라는 동물을 참 좋아했고 키우기도 했지만 가족들과의 마찰 때문에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아파트에 살았기 때문에 제약이 많았다. 이 곳에서도 사실 우리는 지금 공동주택에 살고 있지만 주변에 공원이나 숲이 있어서 공간의 제약을 많이 줄일 수가 있다. 게다가 우리는 지금 시간이 많아서 적어도 하루에 3-4번은 강아지와 산책을 하고 있다. 사실 우리와 함께 사는 개는 강아지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대형 개다. 나는 몇 달이 지난 지금 개(이름이 로이다)를 누구보다 사랑하게 되었다. 로이를 위해서 독일어를 더 열심히 공부하려고 마음먹었었는데 (개는 정확한 발음의 독일어밖에 알아듣지 못한다..) 요즘은 마음을 바꿔 한국어를 가르쳐보려고 '앉아' '손' 이런 것들을 시도 중이다. 


우리는 당분간 독일에 머물면서 돈을 좀 모아보려고 한다. 동시에 자기 정비도 하면서.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우리의 목표인 걸어서 세계 여행, 아프리카, 중남미(사실 스페인어를 시작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한.. 그런데 정작 중남미는 못가보고 그놈의 스페인에서 그 오랜 시간을 보낼 줄이야..) 생활 이런 것들을 실현시키고 싶다. 자유를 꿈꾸며, 지구 반대 편의 어느 오지를 걸어 다닐 우리를 꿈꾸며, 오늘도 나 자신을 응원한다. 


ANI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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