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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u Poloi Apr 06. 2018

대한민국 끝자락 완도군 소모도

그 작은 섬에서  Hopitaility를 맛보다

뜨겁던 한국의 어느 여름날 우리는 전라남도 해남과 강진을 거쳐 완도에 도착했다. 막상 고속버스를 타고 완도로 오기는 했는데 어디를 가야 할지 모르겠어서, 일단 배가 다니는 완도의 주요 선착장으로 갔다. 그곳에 걸려있는 커다란 지도를 보면서 얼마간이나 고민했을까. 갈 수 있는 섬들은 꽤나 많았고, 선창장에 널려있는 관광 안내지들은 각자 여기로 오라며 자기네 섬을 안내하고 있었다. 그중에 이런 안내지가 없는 아주 작은 섬이 우리 눈에 띄었다. 이름은 '소모도'라는 섬이었다. 그 옆에 있는 '대모도'와 함께 '모도'라 불리는 곳이었다. 섬에 대한 마땅한 안내는 찾을 수 없었다. 근데 또 마침 10분 뒤에 그 섬으로 들어가는 배가 들어온다는 것이 아닌가. 애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배에 올라타고 '소모도'로 향했다.


소모도에는 마을이 2개가 있다. 한 마을은 주민이 한 30명 정도 된다고 했고 다른 마을은 그것의 한 두배 정도 된다고 했다. 우리는 어버버 하다 작은 마을로 가게 되었다. 일단 해안선 절벽을 따라 걸었다. 사람의 손을 많이 타지 않은 소모도의 자연은 아름 다웠다.


마음껏 걷고 선착장으로 돌아왔을 때, 하루에 두세 번 들어오는 완도로 돌아가는 배는 이미 끊긴 후였다. 마을에 민박집이 하나 있다고 했다. 근데 민박집은 그날 마침 낚시를 하러 소모도로 들어온 한 무리의 낚시꾼들+그리고 그들의 아내들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침 가방에 가지고 다니던 텐트가 하나 있었다. 1.5인용 정도 되는 초경량 텐트인데, 여름에 그 텐트에 사람 두 명이 들어가면 너무 더워서 잠을 잘 이루지 못할 정도이다. 그래도 텐트를 저~어기 어딘가 쳐야 하나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마을을 서성이고 있는데, 마침 마을 할아버지 무리들을 만났다. 소모도에서 외국인을 보기는 참으로 힘들 터. 우리는 보고는 할아버지들이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중 한 할아버지는 영어실력이 수준급이셨다. 지금은 은퇴하시고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원래는 항해사로, 세계 방방 곳곳을 누비셨다고 했다. 남자 친구는 독일 사람인데, 독일에도 가보셨다며 자신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셨다.


마을 어르신들은 우리에게 오늘 잘 곳은 있냐며. 우리 마을에 온 손님들을 그냥 이렇게 보낼 순 없다며. 특히나 소모도에 언제 이렇게 외국인 손님이 와보겠으며, 좋은 인상을 남겨주고 싶으시고 하셨다. 그렇게 우리는 마을회관에 초대되었다. 마침 하루 전 마을에 장례가 있었고, 남은 음식들을 마을 사람들이 다들 모여 저녁으로 나눠먹는다고 했다. 방학을 맞아 할머니 집에 내려와 있는 아이들도 몇 보였다. 남자 친구는 마을 어르신들에게 둘러싸여 있게 되었고, 나는 주방으로 가 할머니들 음식 준비 일손을 도왔다. 김치를 나눠 담고, 밥을 나눠 담고, 커다란 스티로폼 박스에 담겨 있는 각종 반찬들을 나눠 담았다. 그날은 메인 반찬은 '홍어회'였다. 나는 삭힌 홍어의 악명을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먹어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마을회관 한구석에 우리도 자리를 잡았다. 홍어가 입에 들어가는 순간 역겨운 맛이 목을 타고 내려가는 듯 했다. 나는 홍어 한입을 먹고는 다시는 젓가락을 홍어 쪽으로는 가지고 갈 수도 없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남자 친구는 홍어를 곧 잘 먹고 있었다. 후에 말하길, 별로 맛은 없었다고.. 그래도 역해서 못 먹을 정도는 아니어서 그냥 먹었다고 했다.


저녁을 먹은 후 우리는 본격적으로 마을 투어에 나섰다. 서울에서 내려온 마을 출신 아저씨를 포함한 몇 분과 함께. 단 하룻밤이었지만 우리는 마을에서 유명인사가 된 것 같았다. 마을 할머니들은 우리가 인사하면 동시에 즐겁게 인사를 받아주셨고, 조금은 신기하게 그리고 한편으로는 마치 자신들의 손주가 내려온냥 애정 어린 눈빛을 보내주셨다.


그리고 그날 마을회관에 계셨던 마을의 작은 교회 목사님은 교회 한쪽에 있는 자신의 숙소 방하나를 우리에게 내어주셨다. 잠자리에 들기 전 심지어 우리가 입고 있던 냄새나는 티셔츠까지 세탁기에 돌려주셨고, 우리가 편한지 계속 물어오셨다. 그 덕에 그날 밤 우리는 목사님이 설교 준비를 하는 작은 방 한켠에 좋은 냄새가 나는 이불을 덮고 오래간만에 아주 편히 잘 수 있었다. 아침으로 시래깃국을 비롯해 손수 준비하신 김치와 몇몇 반찬들까지 곁들인 호화로운 아침식사까지 목사님과 함께했다.


이 작은 마을의 끝자락에 있던 작은 교회. 신도가 몇 명 정도 되냐고 물었더니, 7분 정도 매번 예배시간마다 오신단다(마을 인구 30명). 그리고 목사님의 고향 완도와 주위의 섬 소개까지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그 마을 한편에서 우리는 정말 평화로운 아침을 맞이했다. 목사님은 마을 주변의 숨겨진 해변도 알려주셨다. 우리는 목사님이 알려주신 대로 길을 따라 숲 속을 지나 바위를 타고 내려갔다. 정말 마법 같게도 작은 해변이 나왔다. 그곳에서 우리는 잠시 해수욕을 즐겼다. 그리고 점심 즈음에 배를 타고 다시 완도로 돌아갈 수 있었다.


외국에서 온, 그리고 한국은 처음이라 아주 생소했을 나의 남자 친구는 소모도를 다녀온 후 어느 정도의 따뜻함을 느꼈을까? 육지로 돌아온 후, 그는 잊지 못할 기억을 만들었다며 아주 추억에 젖은 눈빛을 나에게 보내왔지만, 그가 느꼈을 섬 마을 사람들의 따듯한 정을 내가 짐작할 수는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계획 없이 무작정 들어가게 된 섬에서의 마법 같은 하룻밤과 대한민국 끝자락 어디쯤의 그 평화롭던 섬을 곱씹어 본다. 그리고 이 마을에서 우리에게 내어준 어르신들의 '정'도 한번 더 곱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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