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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로디 Nov 07. 2018

기초반 수영일기, 여덟

강습 한 달 개근! 

평생을 수영장 다니는 것은 사치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게다가 십년도 넘게 집 한 구석에 놓여 있던 수영 가방이 그토록 보기 싫었으니 수영장은 쳐다보기도 싫었다. 그런 내가 한 달간 하루의 결석도, 한 번의 지각도 하지 않고 다섯시에 일어나 여섯시 강습을 받았다. 월말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강사는 둘러서 있는 우리를 보더니 내 이름을 불렀다. 한 달 간 개근한 유일한 회원이라며 박수를 쳐 주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박수를 받아본 적이 언제였을까 싶었다. 앞에 나서는 것도 누군가로부터 주목 받는 것도 어색해 하는 성격. 그래서 사소하게 라도 박수 받을 자리는 애써 피해 왔었다. 나 스스로 내가 박수 받을 처지가 아니라고 여겨왔던 것 같다.  20대 중반,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 나고 어머니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등록금을 낼 수 없어 대학원 공부를 포기하며 격어야 했던 시간들. 20여년간 맺어 왔던 관계가 한순간에 다 끊어지는 것 같은 상실감을 경험했던 시간들. 그렇게 느닷없이 세상에 덩그러니 떨어진 나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패배자라 여겼던 것 같다. 박수 받을 이유도 없고 그럴 여유도 없었다. 그런 감정에 취하면 더 이상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스스로를 채찍질 하지 않으면 언제 절벽으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절박함이 앞섰다. 

아버지는 매사에 앞장서서 박수 받기를 즐겨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중학교 2학년때 아버지는 꽤 잘나가는 회사의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아버지는 새벽 네시면 출근하시고 밤이 늦어야 집으로 돌아오셨다. 주말도 없이 일하셨고, 승승 장구 하며 승진 하셨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아버지는 거침 없으셨다.  


간혹 아버지가 일찍 퇴근하시는 날이면 집안 정리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며 현관에 들어오시면서부터 역정을 내셨다. 우리들은 아버지가 무서워 정신없이 집을 치웠고, 우리가 집을 치우는 동안 씻고 나오신 아버지는 식탁에 앉아 담배를 태우시며 식사를 하셨다. 그리고는 뉴스를 틀어 놓으시고는 우리에게 요즘은 반에서 몇 등 하냐며 똑바로 공부하라고 큰 소리로 야단을 치셨다. 언제인가 한번 토요일 지방의 친척들 결혼식에 가야 하는 날이었다. 강남에 있는 회사에 들러 잠시 업무를 보고 결혼식장으로 가자는 아버지를 따라 회사에 들렀다. 아버지는 커다란 독방을 쓰셨고, 문 앞에는 사장실 이라는 명판이 붙어 었었다. 아버지를 본 직원들은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여 인사 했다. 아버지는 사무실 책상에 앉아 일을 하셨고 우리는 쇼파에 앉아 가져간 ‘소년중앙’을 보고 있었다. 그때 어떤 직원이 서류를 잔뜩 들고 아버지에게 가져갔고, 아버지는 책상 앞에 서 있는 직원에게 한참을 무어라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를 듣던 직원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네, 네...를 반복했다. 그때 나는 아버지가 집에서나 회사에서나 똑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집에서 왜 그러는지 조금 이해가 되기도 했다. 사장님은 원래 저렇게 하는 거구나...

그렇게 자신 만만해 하던 아버지는 무리한 사업 확장에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였을까? 나는 앞에 나가 박수를 받는 일이 몹시도 싫었다. 그럴 때 마다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아버지의 길을 걷게 될 것만 같았다. 그런데 느닷없이 수영장에서 박수를 받게 된 것이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박수를 받으며 코끝이 찌릿해 왔다. 이번에는 아버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열심히 한 내 자신이 뿌듯해서 일까? 누군가에게 잘 살고 있다고 응원 받고 싶었던 마음 때문이었을까... 


하루 종일 코끝의 야릇한 감정이 떠나지 않았다. 내가 얼마나 수고 하고 있는 지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알아 달라고. 박수쳐 달라고... 언제부터 이렇게 인정받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이렇게 수영장에서 느닷없이 받는 박수로 이렇게 위로를 받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가 얼마나 나를 몰아세우기만 하고 나 스스로를 인정해 주지 않았던 것일까. 나 스스로에게 잘 했다고 칭찬해 주었던 적이 있기나 했었을까? 그러고 생각해 보니 지난 십년도 훌쩍 넘는 시간 날 위해 무얼 해 주었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모두가 떠나 버리고 새롭게 맺어진 관계는 대부분 돈을 벌기 위해 만난 이들이었고 스스로 경력이 부족하다 생각했던 나는 상대에게 잘 해 주는 것만 생각했지 날 위해 무언가 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던 것 이었다. 

수영장 한 달 개근했다고 받은 박수가 이렇게 하루종일 기억날 만큼 큰 위로였다는 것은 꽤 큰 충격이었고, 그 날 이후 의식적으로 나 스스로 나를 인정해 주려 노력한다.  

난 참 요리를 잘 해. 

난 운전 할 때 양보를 잘 해. 

난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 줘. 


그래서 인지 요즘은 만나는 사람들이 얼굴이 좋았졌다고, 조금 여유가 있어 보인다며 하는 일이 잘 되냐고 묻는 경우가 생겼다. 그러면 하는 일이 잘 돼서 그런 건 아니고 제가 누군가와 화해를 시작했는데 그러고 나니 맘이 편해서 그런 것 같다고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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