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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로디 Nov 01. 2018

상처의 연대,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보헤미안 랩소디>와 다른듯 닮은 상처받은 이들을 위한 영화

폴란드로 보내진 한국 전쟁 고아 1,500명. 이라는 말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전히 나에게 멀게만 느껴지는 나라 폴란드. 어쩌다 그곳으로 한국 전쟁의 고아가 보내졌을까?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배우로 더 익숙한 추상미 감독의 작품이었다. 2010년 <분장실>, 2013년 <영향 아래의 여자>라는 단편 영화를 감독 했지만 80분짜리 장편 영화를 감독한건 처음. 게다가 기획과 주연까지 1인 3역을 한 영화. 폴란드의 전쟁 고아와 추상미 감독. 이 두 낯선 조합. 


한동안 영화를 멀리 했던 나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속 프레디 머큐리에 대한 인간적인 모습을 보며 감정적 동요가 일었다. 상처, 사랑, 고독, 가족, 아픔...을 딛고 일어선 예술과 그로 인해 위로 받는 대중. 그런 대중속의 나... 무언가 내가 왜 퀸의 음악을 들으며 막연한 위로를 받았는지 알게 되는 순간이어서 더 소름끼치도록 프레디가 그리워 졌던 것 같다.    


그래서 였을까? 무슨 영화인지도 모르고 폴란드로 보내진 한국 전쟁 고아의 다큐멘터러 영화라는 문구만 보고 하루 1회, 9시 15분에만 볼 수 있는 영화를 보게 된 것이... 



1951년 북한의 김일성은 전쟁 고아를 보살필 여력이 없자 공산 국가인 동구권에 아이들을 보호해 달라고 요청을 한다. 그렇게 1차로 300여명의 아이들이 폴란드로 보내지고, 2차로 당시 소련에서 방치되어 있던 1300명의 아이들이 폴란드로 보내진다. 


이 영화는 추상미 감독이 우연히 보게 된 한 폴란드 다큐멘터리에서 시작되었다. 2006년 폴란드 공영방송에서 ‘김귀덕(Kim Ki Dok)’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폴란드의 언론인 욜란타 크리소바타가 한 장례식에 참여하기 위해 찾은 공동묘지에서 우연히 본 ‘김귀덕’이라는 묘지를 보게 되며 시작된 것이다. 묘지명에는 “김귀덕 Kim Ki Dok. 13년의 생을 살았고, 1955년 9월 20일 세상을 떠났다”라고 적혀 있었고 이 묘지명의 인물을 찾아 나서며 1951년 폴란드로 비밀리에 보내진 한국전쟁 고아의 숨겨졌던 이야기를 찾아 세상에 알린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다큐멘터리가 되고 다시 소설<천사의 날개>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산후 우울증을 겪던 추상미 감독은
 이 영화를 기획하고 진행 하게 된 이유가
 ‘상처의 연대’라고 말한다.  

전쟁 고아들이 2년간 머물렀던 폴란드의 외딴 마을의 고아원. 그곳은 외부와 철저하게 통제된 곳이었다. 두려움에 떨던 아이들은 낯선 외모와 낯선 언어를 쓰는 사람들을 만난다. 폭탄이 터지고 부모가 눈앞에서 죽는 것을 경험했던 어린 아이들. 이미 소련의 수용소에서 방치된 경험이 있던 아이들. 기생충과 질병에 시달렸던 아이들. 

두려움과 아픔을 참아내던 아이들은 폴란드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외부와 통제 되었지만 아이들에게는 천국같은 곳이었다. 

당시 폴란드 정부는 정치적인 이유로 비밀리에 아이들을 받아 들였지만, 폴란드 고아원의 교사들은 그렇지 않았다. 독일과의 6년 넘는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는 아픔을 경험했던 교사들 이었다. 아우슈비치의 참혹한 시절을 겪어내야 했던 이들이었다. 이들은 아이들에게 자신들을 ‘아빠’, ‘엄마’라 부르라고 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아이들을 안아주며 상처를 보듬어 갔다. 그래서 이었을 것이다. 70년이 지나 자신들을 찾아온 한국의 다큐멘터리 감독과 아이들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진심의 눈물을 흘렸다. 아무런 상관이 없는 먼 나라 아이들 이었지만 이들은 아이들과 ‘상처의 연대’를 몸소 실천한 것이다. 

북한 정권은 전쟁으로 무너진 경제를 살리기 위해 인민들의 노동력을 동원해 ‘천리마 행군’을 하게 되고 아이들까지 모두 일터로 동원된다. 그래서 폴란드로 보내졌던 아이들은 2년 만에 전원 귀국 시킨다. 아이들은 아프면 귀국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기대로 겨울에 눈을 구르고 찬물로 목욕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고 전원 귀국 비행기에 오른다. 이 아이들은 부모를 두 번이나 잃게 된 것이다. 

돌아간 아이들은 선생님들께 편지를 보낸다. 폴란드와 선생님들을 향한 그리움을 담아... 그 중 한 아이는 북한을 탈출해 폴란드로 가기 위해 도망치다 논에 빠져 죽었다는 소식도 들었다고 한다. 

영화는 한 명이 기획하고 감독하고 배우까지 감당하기에 다소 벅차 보이는 면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 고아들과 폴란드 선생님들의 가슴 절절한 상처의 연대가 그 모든 흠을 덮어 버린다. 

드라마를 보면, 광고를 보면, 잡지를 보면, SNS속 세상을 보면 내 자신은 점점 초라해 진다. 남들에게 보이기 부끄러운 것들만 보인다. 내 상처와 아픔을 드러냈다가는 아무 곳에서 속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좀 잘 나가야 하고, 유쾌하게 웃을 줄도 알아야 하고, 남들에게 부담을 주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될  것 같다. 그런데 나는 마음에 상처도 있고, 아픔도 있고, 우울하기도 하고, 날카롭기도 하고, 똥멍청이 같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고, 이유 없이 나를 사랑해 줬으면 하기도 하고, 말 없이 내 손을 잡아 줬으면 하고, 긴장 하지 않고 내 생각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이가 그립기도 하다. 

그래서 그랬던가.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의>의 ‘상처의 연대’라는 말과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프레디 머큐리가 내 곁에 있어 달라고 하는 말이 꼭 같은 말처럼 들린다. 자연스레 낯선 땅의 고아들을 돌아보면 폴란드 선생님들과 퀸의 음악을 들으며 위로를 받았던 나와 우리들이 어쩌면 같은 연대의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워낙 개봉관이 적어 찾아 보는 일은 꽤나 노력을 해야 겠지만, 상처의 연대를 맛볼수 있는 영화이니 그 정도 노력도 해 볼만 하다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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