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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군 Apr 30. 2024

“이상한 나라의 약사”

…가 아니라 “보험 회사에서 일하는 약사”

2020년 초에 브런치 활동을 제법 열심히 하다가, 집안에 크고작은 일들이 생겨 한참동안 글을 안썼었다. 그 와중에 두 아이들은 어느새 6.99살 (다음달이면 7살!), 3.5살이 되어버렸다. 그 옛날 누군가의 랩처럼 “가만히 있어도 시간은 가고“ 브런치 활동 안한 지난 몇년을 돌아보니 남은게 하나도 없는거같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천천히 조금씩 하루하루 기록해 나가보려고 한다.


나름 큰 맘 먹고 시작한 이 매거진은 2021년 첫 글을 끝으로 거진 3-4년간 아무 진전이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시간이 흐른 뒤인 지금도 나는 같은 보험 회사 약국 부서에서 쭉 일 해오고 있다. 일을 잘 해왔나? 못해왔나? 파고들면 할 얘기가 또 많은데, (롤러코스터마냥 쭉 위로 올라가기도 하고 쭉 밑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지난 3-4년을 돌아보는 내용의 글들을 천천히 하나하나 써봐야겠다.


오늘 기록할 이야기는 가장 최근의 이야기 — 졸업한 약대에 돌아가 30분짜리 짧은 발표를 하고 온 이야기이다.


***


캘리포니아에 있는 많은 약대중 하나에서 2019년에 졸업 한 이후로 쭉 “매니지드케어 (managed care)” 분야에서 일을 해오고 있다. 약대 다닐때 매니지드케어 학생 클럽 지도 교수님과 졸업 이후로도 꾸준히 연락 하고 있는데 (일 하는 중 미팅에서도 가끔 뵙고) 올해 초에 나를 비롯한 몇 졸업생들에게 초대 이메일을 보내셨다.


“4월 말에 약대 지망하는 고등학생/대학생들 상대로 하는 설명회 겸 초대 행사인 RxPerience 이벤트가 있는데, 약국에서 약 파는 일 아닌 조금 다른 분야에서 일 하고 있는 약사들을 초대하려고 합니다. 관심 있으면 알려주세요~“


내가 일하는 보험 회사에 지금 나 포함해서 나와 같은 약대 나온 약사들이 네댓명 있는데, 이 친구들한테 얘기 해보니 다들 안간다고 그런다. 그 주말에 일을 한다고 그러고, 그때쯤 머리가 너무 길어있을 거라 안간다 그러고 (?) 안가는 이유도 제각각. 그래서 나도 안가야지 그러고 있었는데 (ㅋㅋ) 그래도 일 관련으로 자꾸 교수님과 엮여서 (?) 이메일 하게 되고, 또 안부인사 겸 조언 받을 겸 전화 통하도 한두번 하고 그러다보니 어느새 내가 당연히 그 행사에 참가 하는 걸로 기정사실화 되어가고 있었다.


“아 교수님, 일이 이렇게 안풀리는 와중에 제가 학교 가서 미래의 약대생들에게 “여러분 매니지드케어의 미래는 밝습니다. 저는 제 일이 너무 좋고 이보다 더 행복할 수가 없어요 (웃음 웃음)’ 해버리면 그건 위선이에요..“


“와서 회사 얘기 구체적인거 하나도 할 필요 없어요. 그냥 고등학생들 상대로 하는 편한 발표라고 생각 하고, 학생들에게 매니지드케어가 뭔지 귀띔 해주는

정도면 괜찮을거같은데.. 와줄수 있음 넘 고맙겠지만 강요는 안할게요.“


“(뭔가에 홀렸다..) 넵 교수님 발표 할게요. 발표 슬라이드도 만들어갈게요.“


***


몇 주가 흘러서 RxPerience 이벤트 날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발표 2주 전쯤 한 밤에 몰아서 슬라이드 다 만들고 (역시 발표 준비는 몰아서 해야 제맛!), 한 1주 전쯤 동생 앉혀다 놓고 1차 발표 연습 설렁설렁 해보고. 발표 하루 전날 남편 앉혀놓고 2차 발표 연습 해보며 아 고등학교애들한테 이걸 어떻게 설명하지? 망했네 망했어. 그냥 지겨운 이야기 다 빼고 구체적인 예시랑 이야기 중심으로 가면 되겠다. 그래그래. 하고나니 발표날이 되었다. (두둥!)


토요일 아침엔 또 아들내미 찬찬이의 이번 축구 시즌의 마지막 경기가 있는 날이라, 온가족이 우루루 가서 (남편, 나, 딸내미 진진이, 시아버지, 남편의 형, 멕시코에서 방문중인 아들의 대모님, 그리고 대모님의 어머님까지) 찬찬이를 응원 하고, 팀이 경기 이기는거까지 보고나서 나는 이벤트가 있는 학교로 향했다.


내 발표 시간은 오전 11:30이어서 30분정도 일찍 갔는데, 학교 다닐때 너무나 좋아라 하던 교수님 두분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졸업하고 거진 5년만인데 학교도 두분도 하나도 변한게 없으시다.


내 앞 차례엔 pharmaceutical industry분야에 디렉터로 있는 약사분의 발표가 있었는데, 학생때는 분명 지루했을게 분명한 이 발표가 슬라이드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 너무 소중하고 재밌게 다가왔다. 또 그 분이 발표하시는 내용과 내가 발표할 내용이 겹치기도 해서 이상하게 흥분이 되었다 (?). 이분도 나처럼 학생들 눈높이 맞춰서 발표 준비해오신게 너무 역력해서 뭔가 동지애 비슷한 기분이 올라올뻔 했다. (막상 서로 인사도 못하고 급하게 나와버려서 아쉽다.)


***


11:35분에 시작한 내 발표는 사실 한 25분 조금

덜 되게 끝이 났던 것 같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주제로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만들고 “Pharmacist in Wonderland”로 발표 제목을 달았는데, wonderland에 크고 빨갛게 엑스 치고 Insurance Company라고 넣었다.


이렇게!

대충 매니지드 케어 약사 분야가 뭔지, 보험회사에서 일 하는 약사는 무슨 일들을 하는지, 이 학교에 오면 매니지드케어 관련된 커리큘럼이 뭐가 있는지 세가지 주제를 어필 하고. 청중에게서 질문도 한두개 받고 나니 시간 딱 맞춰서 발표가 끝났다. 뭔가 다 끝나고 박수도 막 쳐준거같은데 아무튼 생각보다 발표가 잘 흘러갔다. (끝에 갈수록 긴장해서 말하다 숨이 막 찬건 안비밀.)



그래도 발표 후에 여러 학생들이 와서 말도 걸고 질문도 하고 그래준게 고마웠다. 생각했던것보다 학생들이 발표 내용을 잘 이해하고 따라와준 것 같아 고마운 마음도 들고 내심 뿌듯하기도 했다.


그 날 오후에 아들내미 친구의 생일 파티가 있어서 점심 안먹고 서둘러 가려고 했는데, 어떤 중년의 남자분이 오시더니 대뜸:


“저기요, 제가 누군지 모르시겠지만 우리 이메일 주고받은적 있어요“


하셨다. 학생인가? 아니 그러기엔 나이가 많아보이는데. 새로오신 교수님인가? 누구지? 혼자서 머리를 굴려보고 있는데 본인 이름을 말해주셨다.


이름 딱 듣고 머리가 띵- 했다! 몇년 전 신정 연휴 빨간 날임에도 불구하고 큰 약국 체인점의 디렉터와 이메일 실시간으로 주고 받으며 일 해야 했던 적이 있는데, 그 디렉터가 내 눈 앞에 계셨던것이다. 몇년이 흐른 지금이지만 그분도 나도 각자 같은 회사에 그대로 있었고 또 서로의 이름을 기억했다. 이 큰 약국 체인점이 오늘의 학생 이벤트 스폰서였기때문에 이분도 학교에 와 계신것이었다.


사람들이 항상 약사 세계는 진짜 좁아 (Pharmacy is a small world) 하는데 그 말이 진짜 사실이다.


***


이상한 나라의 약사 이야기를 천천히 하나하나 다 풀어보려고 한다. 몇년만에 처음 쓰는 브런치 이정도면 예전만큼 잘 쓴건가? 나중에 또 읽어보고 고치고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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