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새벽이 여명조차 허락하지 않은 채 어둠을 품은 채로 하루가 시작될 때가 있다. 어스름한 빛 속에서 창밖의 고요함을 바라보며, 가슴 한편이 서늘해지는 아침을 맞는다.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있을 것이다. 고양이가 창가에서 느릿하게 기지개를 펴는 모습을 보면서도, 오늘 하루는 그리 가볍지 않겠다는 예감이 들어오는 날이 있다.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듯한 기분에, 반나절이라도 나만의 조용한 안식처에 틀어박혀 세상과 잠시 떨어져있고 싶다. 하지만, 현실이란 언제나 녹록치 않고, 그 안식조차도 사치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우리네 인생의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매일 아침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을 머릿속에 새기고, 그날의 우선순위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진다. 나에게 있어 아침 시간은 고요한 재정비의 순간이다. 샤워를 하거나 출근길 운전대에 앉아 차창을 타고 흘러가는 풍경을 보며 마음을 정리한다. 오늘의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차근차근 떠올리며 나의 하루를 설계한다. 예를 들어, 오늘 작성해야 할 소장이 두 건이라면, 그리고 변호사 회의를 주재해야 한다면, 이 각각의 작업에 얼마만큼의 시간과 에너지가 소요될지 먼저 가늠해 본다. 최근에 유사한 소장을 작성하는 데 들였던 시간을 기억하고, 회의 안건의 무게를 되짚으며 나만의 시간표를 만든다. 마치 고대의 철학자들이 하늘의 별을 보며 내일을 예견하듯이, 내게도 하루라는 별자리를 그려내는 과정이 있다.
“시간은 우리에게 가장 공평한 자산이지만, 단 한 순간도 되돌릴 수 없는 잔인한 속성을 지녔다.” 토마스 제퍼슨의 말처럼, 하루의 일정은 신중히 짜야만 한다. 오늘 반드시 마쳐야 할 일은 가장 집중력과 활력이 넘치는 오전 중에 배치하고, 그것을 완수하겠다는 결심을 단단히 새긴다. 일은 언제나 사람의 생각보다 길고 무거울 때가 있기에, 이른 시간에 중요한 일을 마쳐놓으면 그 자체로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후반부는 좀 더 느긋하게 나머지를 정리할 수 있다.
그러고 나서 ‘하고 싶은 일’을 차례로 생각해본다. 책상 위에 무질서하게 쌓여있는 서류들이 은근히 마음을 짓누르고 있을 때가 많다. 그래서 오늘은 한 시간을 투자해 책상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쓸모없는 서류를 파쇄하며 기분 전환을 하겠다고 마음먹을 때가 있다. 이러한 일은 주로 오후의 무력해지는 시간대, 즉 점심을 먹은 직후의 느슨한 1시 30분쯤에 배치한다. 그 시간대는 보통 집중력이 떨어지고 졸음이 오기 쉬운 시간이라, 가벼운 정리정돈이나 평소에 하고 싶었던 단순한 작업을 하기 적합하다. 이렇게 작은 정리만으로도 묘한 해방감을 느끼며, 마치 정신이 다시금 정돈되는 기분을 맛볼 수 있다.
이렇게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적절히 마친다면, 그 하루는 가볍게해내는힘을 느끼는 기회가 될 뿐 아니라, 상당한 성취감으로 가득 찰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 이상을 욕심내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모든 일들을 완벽하게 처리하고 싶지만, 삶은 늘 완벽함과는 거리가 멀다. 철학자 니체는 “완벽함을 향한 집착은 우리를 인간답게 하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완벽을 추구하다가도 지칠 때가 온다. 그럴 때는 미진한 성과도 ‘충분히 근사한 결과’로 인정해주는 법을 익혀야 한다. 우리가 가장 아끼는 사람에게 따뜻한 격려를 보내듯이, 스스로에게도 다정하게 위로와 격려의 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 정도면 잘했어, 충분히 노력했어’라는 말을 건네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하루하루를 가볍게 해내는 힘을 갖기 위해서는, 타인의 인정보다는 나만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 기준은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조금은 여유가 있는 기준이어야 한다. 우리는 종종 타인의 기대에 스스로를 맞추려고 애쓰지만, 나를 위한 삶의 기준을 세우고 매일 그에 맞춰 살다 보면 그 자체로 삶에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더불어, 그 근사치에 다다른 스스로를 매일 보살피고 격려하는 일은 내일도 비슷한 일에 도전할 수 있도록 만드는 중요한 힘이 된다. 내면의 지지자이자 가장 큰 위로자가 되어주는 일, 그것이야말로 하루를 견디고 내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가볍게해내는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