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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ainJ Jan 23. 2024

fearless

아, 무섭다.


살람바 시르사아사나가 드디어 조금 편해졌는데 기쁨은 순간이고 다시 고비다.


묵타 하스타 시르사아사나. 묵타는 해방, 하스타는 손, 즉 뒤통수에 깍지꼈던 손을 풀어 어깨 아래 따로 두고 머리서기를 해야 하는데 해방감은 무슨? 두려움이 엄습한다. 팔을 후들거리며 무릎을 바짝 당겨 비틀거리며 오르긴 했는데 다리를 주욱 펴는데서 공포를 느낀다.


또, 두렵다.


이번에는 살람바 시르사아사나에서 등을 후굴하듯 뒤로 굽혀 다리가 뒤로 넘어가 발이 매트에 닿아야 하는 시르사파다아사나다. 와, 목이나 허리가 꺾이는 건 아닌가? 골반을 뒤로 접어야 하는 이 아사나에서 반대로 골반을 말고 다리를 뒤로 넘기지 못하고 공중에서 버티고 있다는 걸 지적받고서야 깨달았다. 몸과 마음이 바짝 졸아있다.


몇 번 시도하다 정작 급할 때 차를 두고 택시를 탔던 여자. 그리하여 20년째 장롱 면허인 사람이 어떻게 요가를 해보겠다고 매일 이토록 애를 쓰고 있다. 눈 큰 사람은 겁이 많다는 속설을 증명해 보이기라도 하듯 매일 매트 위에서 반복된 혹은 새로운, 다채로운 두려움을 만난다.


특히 몸을 뒤집어 세우는 머리서기는 나 같은 쫄보에겐 쥐약. 가뜩이나 미덥잖은 상체를 믿고 거꾸로 서서 세상을 바라보는 건 신기하고 재미있기보다는 공포 그 자체였다. 그래서 누군가는 요가원 오자마자 해내는 살람바 시르사아사나를 제대로 하기까지 혼자 5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을 터.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도 중요한 수련이라고 원장 선생님은 늘 조언하신다. 무엇보다 절대 안 될 줄 알았던 머리서기를 어찌어찌 결국 해냈다는 경험이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는 든든한 힘이 되어준다.


오랜만에 벽으로 매트를 옮겨 다시 하스타 시르사 아사나를 수련한다. 벽이란 존재는 심리적인 비상약 같은 것이다. 시르사파다아사나는 중간에 버티지 않고 아예 뒤로 굴러 본다. 쿵 소리를 내며 구르면 창피하지만 생각보다 그리 아프지 않다는 걸 스스로 각인시킨다.


너무 오래, 참 많은 것을 두려워하며 살았다. 학창 시절엔 성적이, 취준생 시절엔 취업이, 아이를 낳고는 육아가, 해외에 있을 땐 만나는 낯선 모든 것들이 새롭기보다는 무서웠다. 그래서 더 부지런히, 더 열심히 해냈다. 더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더 좋은 직장을 가기 위해, 더 나은 엄마가 되기 위해 등등. 성취나 발전으로 포장되었던 것들이 사실은 두려움에서 시작되었다는 걸 안다. 두려움으로 범벅된 결과들은 얻고도 어쩐지 진짜 내 것이 아닌 느낌이라 정말 기쁘진 않았던 적도 많았다. 두려움으로 점철된 인생은 온전히 내 것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답게 살기 위해 오늘도 수련한다. 육체 수련을 통해 힘을 줄 곳과 뺄 곳을 분별하고 정신 수련을 통해 두려움에 맞서는 연습을 계속해보는 것이다. 무엇을 해도 예쁘기만 한 아이돌의 그것처럼 당찬 고백은 아닐지라도 멋진 결말에 닿고 싶은 건 중년의 아줌마도 같은 마음이니까 두려워하지 않고 나아가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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