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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ainJ Apr 23. 2024

나는 없다

요즈음은 밥을 해 먹거나 아이를 챙기는 일처럼 꼭 해야만 하는 급한 일들을 대충 처리하고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은 그날 수련 시퀀스 복기와 요가 책을 읽는 데 쓰고 있다.


읽을 책도 많고 과제로 해야 하는 시퀀스 복기가 만만치 않아서 선생님들께 양해를 구하고 녹음 후 따로 정리를 하는데도 시간이 상당히 걸린다. 분명 편안하게 수련했는데 하나하나 되짚어 보면 아사나 정확한 명칭부터 모든 게 헷갈리는 미스터리.


대신 문자 그대로 밥 먹고 하루종일 요가만 해선지 체감하는 변화도 빠르다. 수련생이 아닌 선생님의 입장에서 아사나 시퀀스를 평소보다 섬세하게 바라본다. 양과 질 모두 전보다 강도 있는 수련을 하다 보니 몸도 빠르게 이완되고.


아사나 자체는 오히려 전보다 덜 집착하게 된다. 어차피 매일 수련을 하니 억지로 해봤자 도리어 다음 날 수련에 영향을 줄 뿐이니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무리하지 않는다. 대신 호흡을 조금 더 의식하며 불편한 곳 세포 하나하나에 호흡을 집어넣어 보는 데 집중한다.


세포에 호흡이라니 어쩌면 낯설 수도 있다. 아니, 먼저 내 몸의 세포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있는지......


지난 수업 때 우리 몸은 약 7년을 주기로 완전히 새로워진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음식물이 계속 들어오는 위 점막 세포 같은 경우는 2~3일에 한번, 피부는 2~3주에 한번 정도로 더 자주 바뀌는데 전체적으로는 평균 7년 정도를 주기로 싹 바뀌고 새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7 년 전 나와 같은 사람인가?


요가는 한 발 더 나간다. 세포로 이루어진 육체뿐 아니라 그 안에 존재하며 나만 볼 수 있는 마음마저 온전히 나의 것이 아니라 한다. 마음은 외부 자극에 대한 감각과 반응일 뿐이며 심지어 그 마음 안에 존재하는, 우리가 흔히 에고라 말하는 나(the self) 또한 이 경험의 기억 혹은 그 기억의 축적이라 본다.


오랫동안 '진짜 내'가 있을 것이라 굳게 믿고 생각과 감정을 헤아리는 데 충실했던 나로선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물론 요가에서도 이 모든 것을 가만히 바라보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소우주, 진짜 내가 있으며 이 영혼을 가장 중시하지만 평생 이런 우주적 관점으로 스스로를 바라본 적 없는 나에겐 이제껏 그토록 찾아 헤매던 건 그저 에고의 작은 나였다. 그런데 그게 완전한 나는 아니라니 허탈한 마음 어찌할까.


몸도 마음도 내가 아니라는데 그럼 매일 그 몸과 마음에 수련 따윈 대체 왜 하나?


역설적으로 육체도 마음도 에고도 깨워내기 위해서다. 그래서 죽음과 함께 사라질 이러한 것들이 유일무이한 나라고 믿었던 데서 오는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진짜 나'를 깨닫는 것이다.


이런 형이상학적이고 큰 주제를 구체적으로 다룬다는 게 내가 생각하는 요가의 가장 큰 매력이다. 가만 앉아서 말장난 같은 이야기를 머리와 입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 아사나 수련을 통해 직접 몸을 움직이며 가장 바깥 겹인 육체부터 깨워내는 것이다. 자극을 인위적으로 주어 진동을 만들면 우리 몸의 작은 세포에까지 그 영향이 전달되고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하니까.


일차적인 육체의 회복과 건강은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리고 회복된 몸을 바탕으로 한 겹씩 한 겹씩 안으로 에너지를 모아가는 이 모든 과정이 요가인 것 같다. 비록 믿었던 나는 없다지만 보다 큰 나를 만나리라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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