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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ainJ Jan 16. 2024

일단 숨만 잘 쉬어도

"숨을 끝까지 내보내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내쉬는 숨에 정성을 기울여 보세요, 기운이 상기되지 않도록."


가장 중요한 건 호흡이라고 요가 선생님들은 늘 말씀하신다. 아사나의 완성보다 편안하게 호흡하며 머무르고 있는지를 잘 살피라고.


요즈음은 특히 날 숨에 관심을 갖고 신경을 쓴다. 평소에도 호흡이 짧은 편은 아니고 호흡을 통해 이완되는 느낌을 안다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들 숨에 비해 날 숨이 충분하지 않다. 특히나 버거운 아사나를 만나면 나도 모르게 숨을 참고 버티는 습관이 있는 게 문제. 작년에 이명이 생겼던 이유도 숨을 끝까지 내보내지 못해서 생긴 상기증이 아니었나 싶다.


숨 쉬는 게 이렇게 어려울 일인가 싶지만 의식적으로 호흡을 바라보면 만만치 않다. 아무리 호흡을 가다듬고 수련을 시작해도 막상 힘들 때는 숨을 들이마시는 데 급급해서 내쉬는 숨 따윈 신경 쓸 겨를이 없고 그 사이 얼굴은 시뻘게지고 때론 현기증도 난다.


내쉬는 숨을 가장 고를 수 있는 순간은 일명 앉은 전굴 자세라고 불리는 파스치모타나사나를 할 때다. 후굴로 열렸던 몸을 닫는 아사나로 두 좌골뼈를 바닥에 균등하게 대고 상체를 숙여 배를 허벅지 가까이 대면 처음에는 다리 뒤쪽 햄스트링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긴장감이 든다. 이때 통증이 느껴지는 부위에 호흡을 집어넣는다는 느낌으로 깊이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반복한다. 정성껏 호흡하다 보면 조금씩 상체를 발 쪽으로 납작하게 붙일 수 있게 되고 마침내 두 발 앞에서 손을 묶어 잡고 이마가 완전히 정강이에 붙는다. 내쉬는 숨이 안정되면서 마음이 차분해진다. 상기되었던 기운이 서서히 가라앉는 게 느껴진다.


엄밀히 말해서 조절 가능한 건 날숨뿐이다. 더 이상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가 낯설지 않은 세상, 정제되지 않은 정보와 뉴스가 넘쳐흐르는 현실에서 우리가 지금 마시고 있는 숨이 바람직하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무엇을 받아들이고 내보낼지는 스스로 정할 수 있으니 내쉬는 호흡에 정성을 기울여보는 거다.


천천히 충분히 호흡을 채웠다 쓰고 남은 찌꺼기를 몸 밖으로 밀어낸다. 남은 불안과 걱정도 일단 밀쳐낸다. 다시 또 다른 어려움이 들이닥치겠지만 지금 이 순간은 최선을 다해 해결하고 남은 것들은 밀어내 흘러 보낸다. 처음에는 짧았던 날숨이 연습을 통해 조금씩 길어지고 그만큼 새 숨으로 채울 공간을 만든다.


며칠 전 친한 친구 아버님의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생전에 뵌 적이 없었고 오랫동안 아프셨던 것을 알고 있어 슬픔보다는 슬퍼하는 친구를 위로하는 마음이 컸는데 막상 입구에 놓인 사진과 나이를 보자 울컥한다. 향년 84세. 살아온 날로 치면 짧지 않은 기간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여전히 끝이라기엔 너무 짧은 시간.


여성의 평균 수명이 90세를 넘겼다는 뉴스를 보긴 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중간 값을 의미할 뿐이고 앞으로 내게 몇 번의 숨이 남았는지 알 수 없다.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고 알 수 없는 미래보다 중요한 건 오늘, 지금 내가 쉬는 숨이라는 걸 다시 한번 새겼다.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내 숨을 들여다보고 다듬을 수 있기를 바라며 일단 숨을 잘 쉬어본다,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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