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콜릿상자 Apr 10. 2023

엘리베이터가 멈춘 날, 온기가 찾아들다



요즘 내가 사는 아파트에선 아침저녁마다 곡소리가 난다.



"아이구야~"


"흐미, 죽겄네. 다리 절단 나겄어."


"으악~ 엄마, 아직 5층 밖에 안 왔어. 으악!"




3주 전  엘리베이터 교체 공사가 시작된 이후로 나는 소리다.






우리 아파트는 지은 지 25년이 다 되어가는 구축 아파트다. 엘리베이터 벽면 쪽 2층 버튼은 눌리지 않는지 오래, 문 열림도 느릿느릿. 엘리베이터도 나잇값을 한 지 오래다. 그러던 5개월 전, 드디어 엘리베이터 교체 공사가 확정되었다. 집 앞에는 "축! 00 아파트 엘리베이터 교체 공사 확정!"이라는 현수막이 붙었고 몇몇 주민들은 공사를 하고 나면 집값이 조금이라도 더 오르지 않겠냐며 좋아했다. 아파트 2층에 살고 있는 나는 상대적으로 엘리베이터를 탈 일이 적기에 '아, 그런가 보다~' 하며 무덤덤했지만 그런 나와는 달리 단톡방 속 엄마들은 교체일이 다가올수록 그야말로 두려움에 덜덜 떨고 있었는데...



"우리 집 21층이잖아. 우리 이제 어쩐대?"

"그러니까요. 걱정돼 죽겠어요. 우리 동은 담달인데도 벌써부터 ㅎㄷㄷ.."

"공사 기간이 한 달이라는데 이거 실화예요? 환장한다~"





기어코 공사날은 다가오고야 말았다. 우리집엔 중문이 없어서 복도에서 나는 소리가 고스란히 다 들려오는데  아침저녁 출퇴근 시간만 되면 쿵쿵쿵, 터벅터벅, 각양각색의 계단 오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요즘 엄마들 사이에서 제일 부러운 사람이 나랑 우리 딸내미란다. 같은 동 21층에 사는 엄마 왈, 딸내미가 '우리도 2층으로 이사 가자!"라며 매번 성화란다. 저층에 산다는 것이 이렇게 큰 메리트가 되는 날이 오다니.



그러면서 달라진 풍경 하나. 평소엔 보지 못한 의자가 층층마다 놓여있다.




이게 웬 의자인가 싶어 의아해하는 나에게 어느 날 남편이 말해준다.


"이거 고층 올라가는 사람들 다리 아플까 봐 놓은 의자잖아."



아, 그렇구나. 생각지도 못한 작은 배려다. 아니, 어쩌면 큰 배려다. 성한 사람도 힘든 계단 오르기이거늘 몸이 불편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오죽 힘드실까. 잠시 의자에 앉아 숨이라도 고르며 '이제 5층만 더-!'라고 마음 다잡아 볼 수 있게 한 따뜻한 배려다.




며칠 전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집에 들어오는데 한 할머니가 3층 계단 의자에 앉아 쉬고 계시기에 인사를 건넸다.


"에구, 할머님. 힘드셔서 어떡해요."


그러니 한 말씀하신다.


"아 죽겄슈 아주~~"


할머니 자신도 이 상황이 어이가 없으신지 힘들다 말씀하시면서도 빙그레 웃으신다. 덕분에 나도 웃어본다. 공사 이제 며칠 안 남았으니 힘내시라는 인사와 함께 '천천히, 쉬엄쉬엄 올라가세요-!'라 말씀드렸더니

 

"고마와유~"

하고 다정한 인사말이 돌아온다. 괜스레 작은 선물을 받은 듯한, 기분 좋아지는 아침이었다.






엘리베이터 공사로 인해 아침저녁으로 망치질 소리, 드릴 소리,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의 아우성인 우리 아파트. 하지만 그 덕분에 요즘 나는 7년간 이 아파트에 살면서 한 번도 마주해보지 못했던 다양한 이웃들의 얼굴을 본다. 교복을 입고 바쁘게 계단을 오르내리는 중학생, 지긋이 모자를 눌러쓰신 노신사, 23층부터 낑낑대며 아기를 안고 내려오는 아기엄마. 아, 이런 사람들이 우리 아파트에 살고 있었구나. 바쁘게 사느라 한 번도 본 적 없던 얼굴들을, 엘리베이터 공사 덕분에 마주한다. 계단을 오르내리느라 각자가 모두 고생이지만, 그래도 7년 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눈 맞춤, 안부 인사를 건네본다. 무언가 모르게 아파트가 이전보다 따뜻해진 느낌이다. 2주째 1층 현관에 놓여있는 생수 두 묶음을 보면서 '혹시 할머니 혼자 살고 계신 건 아닐까.'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아마도 나뿐이 아닐 것 같다.




엘리베이터 공사가 끝나 이 생수가 얼른 주인을 만났으면 좋겠다. 모든 주민들의 다리가 편해지는 날이 어서 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공사가 끝나더라도, 1층에서, 또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주하는 사람들마다 서로의 삶을 응원하는 따뜻한 눈빛과 말 한마디는 계속계속 이어져갔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백수가 과로사한다더니 그게 딱 너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