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성베드로성당, 스페인광장, 콜로세움
성 베드로 성당 안 할머니의 기도
런던을 떠나 이탈리아에 도착했다. 첫 일정은 바티칸시티.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이 그려진 시스티나 소성당은 사진 촬영을 금지했다. 덕분에 시간의 때를 타 여기저기 벗겨진 벽화를 맨 눈으로 찬찬히 담을 수 있었다. 소성당을 지나자 성 베드로 대성당이 나왔다. 베르니니,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미술 시간에 배운 예술가들이 성 베드로 묘지 위에 세운 걸작품. 축구장 6개가 들어갈 수 있는 규모에서 웅장함이 느껴졌다. 피에타를 포함한 수많은 조각상이 벽마다 천장마다 빼곡해 구경하는 뱁새는 목이 당길 지경이었다.
엄숙한 분위기에 압도당한 건 맞지만 솔직히 신성함까지는 느끼지 못했다. 경건히 기도드리는 사람들을 보니 7살 때가 떠올랐다. 교회 유치부에서 배운 대로라면 할머니는 영원한 지옥 불에 떨어져 활활 타오를 운명. 자동차 그려진 내복을 입은 꼬마는 우리 할머니 살려달라며 엉엉 울며 기도했었다. 간절함이 응답받은 건지 할머니는 머지않아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셨고 신실한 신자가 되셨다.
지금 다니시는 교회에는 교인이 9명이다. 원래는 큰 교회를 가려고 건물에 들어갔는데, 같은 건물 안에 셋방처럼 있는 지금의 교회를 보시곤 왠지 마음이 끌리셨다고 한다. 셋방처럼 작은 교회에서도,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도 할머니는 기도를 하신다. 목사에게 사기당해 신앙심을 잃은 할아버지를 위해 기도하시는 걸까. 유순한 성격으로 신을 원망하신 적도 있을까. 가족 말고 오로지 본인을 위한 기도도 하실까. 할머니의 기도 제목이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스페인 광장 주접러들
로마로 이동하는 버스에서 <로마의 휴일>을 봤다. 재밌어서 그랬는지 흔들리는 버스에서 자막을 읽는데도 멀미가 나지 않았다. 영화 속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을 먹었던 스페인 광장에 도착했다. 관광객들 때문에 지금은 광장에서 아이스크림 먹는 게 금지됐다고 한다. 역시 사람 사는 건 어딜 가나 똑같군. 아이스크림 없이 계단에 앉았다.
성 베드로 성당에서 찍은 할머니 사진을 보여드렸다. 내가 오드리 헵번 같다며 호들갑을 떨었더니 할아버지께서 오드리 헵번이 그렇게 예쁘냐고 하신다. 내 주접은 주접도 아니었군. 어찌 됐든 할머니는 참 고우시다. 뒷받침할 실화 썰도 하나 있다. 여행이 끝난 후 원래 다니던 수영장에 갔더니 60대 남성 수강생이 쫓아다녔다는 것! 남편이 있다고 해도 안 믿고 거듭 거절해도 밥 한 번 사게 해 달라며 귀찮게 했다고 한다. 킬링 포인트는 60대여도 할머니보다 거의 20살 연하라는 점. 그리고 할아버지는 진심으로 이 이야기를 듣기 싫어하신다는 점이다.
논산훈련소보다 빡센 로마의 휴일
30초 전에 뽀뽀했던 트레비 분수 앞 연인이 고개를 돌리니 싸우고 있었다. 분수에 동전을 하나 던지면 로마에 다시 오게 되고, 두 개 던지면 연인이 되고, 세 개 던지면 헤어진다던대. 저 커플은 실수로 세 개를 던졌나 보다. 한참 웃다가 소매치기가 무서워 바로 앞 젤라또 가게에 들어갔다. 할머니는 런던 윈저성에서 못 사줘 애탔던 아이스크림을 이 날 사주셨다. 무려 네 가지 맛으로! 최애인 피스타치오 맛을 한 숟가락 물자 향이 진하게 돌며 고소한 맛이 입 안을 감싼다. 차가운 젤라또가 따스한 햇볕만큼 부드럽다.
조금 후 콜로세움으로 이동했다.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불어 모래가 눈을 찌르고 머리카락이 휘날린다. 지나가는 외국인 언니(추정)에게 촬영을 부탁했더니 "오브 코스 달링"하며 한국 사람처럼 무릎 굽혀 열심히 사진을 찍어준다. 콜로세움에 트레비 분수에 젤라또까지... 그래, 여기 이탈리아구나 싶다.
로마는 볼거리가 많아도 너무 많다. 짧은 시간 안에 걸어서는 도저히 소화되지 않는 코스라 로마 벤츠 투어를 선택했다. 이탈리아 기사님의 친절에 되지도 않는 발음으로 연이어 그라찌에~ 혀를 꼬부려본다. 새벽같이 일어나 구경했는데 내일도 새벽 6시 기상이다. 일정을 들은 할아버지께서 논산 훈련소보다 빡세다고 하신다. 할아버지, 로마의 휴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