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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의애나 Aug 20. 2018

호주 유치원에서 일하기, 쉬울까? 1편-감기와 질병

호주 멜버른 차일드케어 이야기


글쓴이는 현재 호주의 멜버른에 위치한 한 차일드케어(어린이집 혹은 유치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호주 멜버른으로 다시 돌아와 유아교육을 공부할 때 이야기로 시작해볼까 한다.


공부를 막 시작할 때부터 강사들이 심심찮게 강조해서 하던 이야기가 있다.


"실습 나가면 정말 많이 아플 거예요. 그러니깐 제때제때 플루 샷(독감주사) 맞고, 비타민 잘 챙겨 먹고, 몸 관리 잘하도록 하세요."


실습을 나가기 전에는 뭐 얼마나 아프게 된다고 저렇게 겁을 주나 싶었다.


그런데 실습을 나가보니, 

정말 너무 아파서 눈물을 질질 흘리며 조퇴를 하고 트램(멜버른의 주 교통수단 중 하나)에서 거의 기절한 채로 집으로 겨우겨우 돌아온 나를 만날 수 있었다. 한 번 나갈 때마다 고작 2-3주였던 실습인데도 불구하고 감기란 감기는 다 주워 걸리고 그다지 심하지 않았던 생리통은 다섯 배로 불어나서 정신이 혼미해지기까지 한 것이다.



현재 풀타임으로 일을 시작한 지 일 년이 다 되어가지만 나는 아.직.도. 잘 아프다. 잘 아프게 된다는 말이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한 시즌에 바이러스가 돌았다 하면 바로, 재깍 걸려버리는 이 바이러스 자석 같은 나란 여자. 사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기침감기에 걸려서 목이 부을 대로 부은 지 3주째가 되어간다. 


한 번은 호되게 아파서 정신을 못 차리다가 가까스로 살아났을 때, 원장이 나에게 와서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심한 감기 걸리는 거, 삼 년은 지속될 거야."


아니 이런 저주 저주가.

지금 일 시작한 지 일 년 반 정도가 지났으니 나는 적어도 일 년 반은 더 아플 예정인가 보다.





아니 그런데 유치원 교사 일을 함으로써 왜 이렇게 자주 아픈 거고 아픈 게 당연한 걸까?


차일드케어 일/유치원 일은 육체노동 그리고 정신노동의 복합체이기 때문이다.

정신노동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다뤄보려고 한다, 


하루 여덟 시간 근무 중 반절 이상은 추우나 더우나 밖에서 보내야 하고 특히나 너서리 룸(영유아반, 0-2세)은 아직 걷지 못하는 아이들도 많기 때문에 아이들을 번쩍번쩍 들어 안아야 해서 체력소모가 크다. 기저귀도 한 네다섯 명 이상 연달아 갈다보면 허리와 어깨가 뻐근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아이들이 너무 꼬질꼬질하다는 점이다!


뻥이 아니라 진짜 흙이고 진흙이고 콧물이고 뭐든 입을으로 들어간다. 이미지 출처: https://www.bing.com



콧물은 365일 24시간 질질 흘려주는 게 제맛,

콧물이 인중을 타고 조금이라도 내려오면 혀로 할짝할짝 맛보는 것은 기본이요, 조금 거슬린다 싶으면 손등으로 슥슥 닦고 달려와서 앞에 보이는 나를 안는다. 스윗한 포옹이 나에게 남겨주는 건 옷에 묻어 하얗게 말라버리는 눈물, 콧물, 침 쓰리콤보 자국.


꼬질꼬질한건 기본이요, 연중 내내 감기에 걸려있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리니 뭐 아프지 않을 수가 없다. 아무리 손을 비누로 빡빡 씻고 면역력을 기르려 노력해보지만 얼굴 바로 앞에서 침을 튀겨며 재채기를 해대는 아이들의 세균을 막을 방도는 없는가 보다. 






사실 감기뿐만이 아니라 여러 바이러스성 질병, 전염병도 많이 돈다.


최근에 우리 센터에는 머릿니, 결막염이 돌고 있다. 솔직히 호주 유치원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머릿니를 접했을 때 좀 많이 충격이었다. 여기 선진국 아닌가? 지금 이 시대에 머릿니가 존재한다고?


존재한다. 그것도 아주 많이.

머릿니를 가진 아이가 센터에 나타나면 괜히 불안해져서 머릿속이 근질근질해지기 시작하고 괜히 옮을까 봐 두려워진다. 


결막염이 도는 지금은 특히 손을 엄청 깨끗하게 씻고 눈을 자주 비비는 습관을 최대한 자제하려고 노력한다.


손을 빡빡 씻으면서 또 문제가 생기는 것은 나의 습진 문제인데..

습진의 종류 중 하나인 한포증이 손바닥, 그리고 손가락에 나있는 나는 손에 물을 자주 닿게 하면 안 되지만 직업 특성상 그럴 수가 없다. 센터에서 제공하는 비누는 너무 강하기 때문에 내 전용 솝프리(soap-free) 세정제를 사서 따로 쓰고 있고 손을 씻을 때마다 잘 말린 뒤 핸드크림을 덧발라주는 수고를 감안한다.


누가 들으면 "일 힘들어서 어떻게 해??? 막노동이 따로 없네."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리고 막노동 맞다.. 사실이다.) 계속해서 이 일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나를 이끌어주는 원동력은


출근한 나를 보고 반갑게 뛰어와 인사하며 안아주는 아이들이 열어주는 매일의 아침, 

하루하루 지날수록 폭풍 성장해가는 아이들의 모습,

그 속에서 성장해가는 나의 모습이 보일 때의 뿌듯함과 성취감이다. 

    






모두의 애나

호주, 멜버른에서 차일드케어 에듀케이터로 일하며 먹고살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 @mandooanna
www.instagram.com/mandooanna/


                                                                                                   더 많은 글 보러 가기, 링크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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