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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진철 Jan 27. 2020

우리는 인간일 뿐입니다

<두 교황>,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으시군요."

"저는 그저 저답게 행동하려 노력할 뿐입니다."  


"내가 나답게 행동하면 사람들은 별로 좋아하질 않더군요."



헬기 안에서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눈다. 전자는 로마 카톨릭의 수장 교황 베네딕트 16세, 후자는 추기경 호르헤 베르고글리오다. 영화 <두 교황>의 한 장면이다. 영화는 600년만의 교황 사임이라는 이례적 사건을 다룬다.

학자 출신인 베네딕트 16세는 지적이고 보수적인 면모를 갖춘 인물이다. 전통과 규범을 중요시한다. 클래식 음반을 낸 피아니스트이기도 하다. 교황이 된 그에게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바티칸의 비밀문서들이 유출되면서 사제들의 아동 성착취, 바티칸의 부정부패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에 대한 여론은 좋지 않다. 현실 문제들과 담을 쌓으며 문제를 방기했다는 비판이 거세다. 일부는 독일 출신인 그를 나치라 부른다. 무엇보다 그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더 이상 신의 목소리가 그에게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추기경 호르헤 베르고글리오는 그와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다. 그는 특유의 소탈함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얻는다. 개혁적 성향을 가진 그는 동성애, 결혼 등 여러 이슈에서 바티칸을 불편하게 하는 인물이다.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에서 베네딕트 16세에 이어 가장 많은 표를 얻기도 했다. 상냥한 미소를 가진 그는 축구를 사랑하는 아르헨티나인이다.


산적한 문제들 속에 베네딕트 16세는 결단을 내린다. 자신이 더 이상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마음의 결정을 내린 뒤, 그는 비밀스럽게 자신의 정적을 별장으로 초대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속에 각자의 어둠을 가지고 살아간다. 대부분 자신만이 알고 있는 비밀스러운 것들이다. 교황이라고 해서 다를리 없다. 당신이 차기 교황 적임자라는 말에 베르고글리오는 손사래를 치며 거절한다. 겸양이 아니다. 그에게는 그의 어둠이 있다. 아르헨티나 군사독재정권 시절, 수많은 사람들이 군부에 저항하다 목숨을 잃었다. 많은 사제들이 그들과 함께 싸우다 목숨을 잃었다. 베르고글리오가 수장으로 있던 예수회는 침묵했다. 군사정권이 물러나자 그는 독재정권의 친구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는 친구들에게도 끝내 용서받지 못한다.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우리는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언젠가는 결국 내면의 어둠과 마주해야만 한다. 중요한 것은 이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다. 베르고글리오는 이후 자신의 삶을 친구들에 대한 속죄라고 여겼다. 이는 현실의 문제에서 그가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베네딕트 16세는 여러모로 사랑받지 못하는 인물이었고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동시에 이를 직시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이에게 자리를 넘길 수 있는 결단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정반대의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이 각자의 어둠을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괴로워하는 베르골리오에게 베네딕트 16세는 말한다. 당신은 신이 아니에요. 신과 함께 우리는 움직이고 살고 존재합니다. 신과 함께 살지만 신은 아니에요. 우리는 인간일 뿐입니다. 그의 말처럼 우리는 그저 인간일 뿐이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모습으로 나약하고 비겁하다. 그 가운데 나온 것이기 때문에 용기란 귀한 것이다. <두 교황>은 용기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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