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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진철 Oct 25. 2019

어쩌다 울란바토르

사람들은 으레 퇴사 후 어디로 여행 갈 것인지 묻는다. 퇴사 후 여행이란 마치 식사 후 커피처럼 당연한 일인 듯 누굴 만나든 그 질문을 받았다.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은 곳은 있었다. 몽골이었다. 언젠가 몽골의 은하수 사진을 보고서는 꼭 가보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비슷한 시기 퇴사한 친구와 뜻을 모았다. 투어 일정을 잡고 동행까지 구했다. 낮에는 투어를, 밤에는 게르 앞에서 별을 봐야지. 밤에 틀 노래도 진작에 다 정해두었다. 이제 비행기 표만 사면 된다.


문제는 일정이 얼마 남지 않아 티켓값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있던 것. 폭풍 서칭의 결과로 나는 믿을 수 없는 가격의 표를 찾아냈고 주저 없이 결제했다. 그 티켓이 예정보다 하루 빠른 표였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취소수수료를 감당하느니 차라리 하루 먼저 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울란바토르에서 혼자 예상치 못한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칭기스칸 공항에 도착하니 새벽 네 시였다. 바로 게스트하우스로 이동해 잠을 청했다. 고비 투어는 몸이 고되다. 그전까지 숙소에서 체력이나 비축해둘 요량이었다.


한참 자고 일어나니 정신이 들었다. 환전도 해야 했고 무엇보다 배가 고팠다. 키릴 문자를 읽을 수 없는 나는 눈 뜬 장님이나 다름없으나 어찌어찌 은행에서 환전을 하고 나니 조금 자신이 생겼다.


울란바토르 시내에도 글로벌 프랜차이즈 식당들은 있었다. 그래도 기왕 온 거 로컬 음식을 먹어보자 생각하고 현지 식당에 들어갔다. 쓱 둘러보니 다들 고기가 들어간 볶음밥을 먹고 있었다. 호기롭게 'best menu in this restaurant'를 외쳤으나 영어는 통하지 않았다. 마침 영어를 할 줄 아는 청년이 와서 말을 걸었다. 만두가 유명하다고 했다. 나는 만두 두 조각, 그리고 곁들일 밥 메뉴를 부탁하고는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는 직원에게 몇 마디를 하고는 사라졌다.


곧이어 음식을 받은 나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곰발바닥만 한 만두 두 조각과 흰쌀밥 한 공기가 내 눈앞에 있었다. 분명 오해가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그냥 결과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는 울란바토르 시내를 돌았다. 배가 차니 낯선 곳에서의 경계하는 마음도 조금은 사그라든 기분이었다. 거리에는 기개 넘치는 무단횡단러들, 세련되진 않으나 과감한 스타일의 사람들이 있었다. 울란바토르의 건물은 높지 않다. 그래서인지 저녁노을은 한국에서보다 더 짙고 크게 느껴졌다. 몽골 여행이란 곧 하늘을 보는 여행임을 암시하는 것처럼.



김영하는 <여행의 이유>에서 여행이란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집을 떠난 주인공이 이런저런 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열흘 남짓한 투어 기간 동안 나는 은하수를 결국 한 번도 볼 수 없었다. 우기라 구름이 심했고, 보름달이 밝아 별이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몽골여행을 계획한다면 보름달을 피하라) 그렇지만 딱히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다. 투어는 나름대로 멋졌고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나는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 과감하게 음식을 주문하고, 무엇이 나오든 맛있게 먹었다. 퇴사 이후 내게 이보다 더 필요한 것이 있을까. 앞으로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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