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널의 아르센 벵거. 요즘 가장 많이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다. 얼마 전에는 왓챠에서 벵거를 다룬 다큐멘터리 <Invincible>을 봤다. 아스널의 팬이었던 적도 없었지만 굉장히 흥미롭게 봤다. 모두가 기억하는 03/04 시즌의 리그 무패 우승과 그 이후의 이야기까지, 매니저로서 그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팀을 이끌었는지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랬다. 내친김에 <아르센 벵거 자서전> 도 같이 주문해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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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sene Wenger. W인데 왜 웽어가 아니라 벵거지? 항상 생각했는데 출신지를 보니 조금 실마리가 잡힐 것 같기도 했다. 벵거는 프랑스의 알자스-로렌 지방 출신이다. 이곳은 독일과 프랑스 간 영토 분쟁이 있던 지역이고(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의 배경지다), 독일색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그래서 이름도 벵거라고 읽는 게 아닐까 싶다.
무튼 그가 자란 곳은 작은 시골 동네였고, 결코 부유하다고 말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근면과 성실이 중요한 가치로서 마을 사람들의 정신에 새겨져 있었다. 축구 경기는 마을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이벤트였다. 하지만 그들에게 축구는 엔터테인먼트였을 뿐 누구도 그것을 작업으로 삼을 수 있을 거라고 믿지는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 사람들과 결혼해 가족을 이뤘다. 그들에게 그곳을 떠나는 것을 상상하기는 어려웠다. 벵거의 부모님은 마을에서 펍을 운영했다. 어린 시절 그곳에 모인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곁에서 듣는 것이 자신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벵거는 회고했다. (그는 평소에 좋아하던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나면 사람들이 얼마나 잔인하게 변하는지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벵거는 축구선수를 직업으로 삼고, 온 세상과 다름없던 마을을 떠난다. 키가 큰 그의 주 포지션은 수비수였다. 선수로서는 늦은 나이인 29세에서야 처음으로 1부 리그 무대를 밟는다. 30대에 들어선 그는 그의 매니저로서의 재능을 알아본 구단에 의해 매니징 트랙을 밟기 시작한다.
하부리그의 하위 팀을 이끌게 되면서 벵거는 수많은 패배를 경험한다. 한정된 자원 안에서 어떻게 하면 최대한의 결과를 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된다. 그는 유스 시스템을 만들고, 훈련 체계를 만드는 데 집중한다. 선수의 생애주기를 두고 어떻게 하면 최대한의 재능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를 파헤친다. 슈퍼스타는 사 오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는 그의 철학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팀에 정신과 전문의를 초빙해 선수들의 멘탈 케어를 시작하기도 했다. 30대 초반이었던 그는 초보 코치였고 스스로에게도 확실을 가질 수 없었다. 하지만 선수들이 최대한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어떤 방법이든 시도해 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책에서 벵거는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하부 리그 팀에서 축구를 시작했다는 점과 선수 생활 초기에 많은 패배를 겪었다는 점, 유명하지 않은 클럽들을 거쳤다는 점, 좀 더 힘든 환경을 겪어본 적이 있다는 점, 이 모든 것들이 내게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교훈을 줬다. 그것은 겸손해지는 것이었다. 겸손은 나로 하여금 첫 시즌에 좋은 결과를 얻었을 때도 자만하지 않게 만들어준 동시에 결과가 좋지 않을 때도 지나치게 좌절하지 않도록 만들어주기도 했다. 내가 그때까지 가꿔 온 야망과 겸손 사이의 균형이 모나코에 도착했던 시기의 나라는 사람을 정의하는 가장 큰 특징이었다” p99, <아르센 벵거 >
자유란 스스로에게 부여한 규율 안에서 존재하는 것. 벵거는 자유를 그렇게 정의했다. 그는 규율을 중요시하는 사람이었다. 선수들과 같이 운동하고 선수들과 같은 음식을 먹었다. 매니저로서 감정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겪을 때면 그는 스스로를 격리시켰다. 다른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혹은 소수의 친구에게 위안을 얻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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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의 짧은 감독 생활을 뒤로하고 그는 아스널의 감독으로 부임한다.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감독이었다. 언론은 물론 아스널 선수들조차도 아르센 누구? 하는 반응이었다. 새로운 곳에서 그는 자신을 증명해야 했다. 아스널에 부임한 후 그는 팀을 자신의 규칙대로 변화시켜 간다. 시즌 중 음주 문화가 짙게 드리운 프리미어리그에서 그는 선수단의 식단 관리를 시작한다. 식단 관리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이었다. 그는 팀에 맥주와 탄산음료, 붉은 고기를 금지하고 흰 고기와 생선 등 균형 잡힌 식단을 하도록 했다. 아스널의 노장들은 훗날 벵거가 온 이후부터 그들이 경기 끝까지 힘을 낼 수 있는 체력이 생겼다고 술회했다. 벵거의 식단관리는 잉글랜드 국가대표 동료들의 입소문을 통해 맨유 등 프리미어리그 전 팀에 퍼지게 되었다.
벵거의 아스널과 퍼거슨의 맨유가 리그 우승을 양분하던 시절이었다. 맨유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 벵거는 언론에 다음 시즌에 무패우승을 차지하겠노라고 선언한다. 언론은 그를 오만하다고 했다. 다음 시즌 그 목표는 지켜지지 않았다. 선수들은 목표에 부담을 느꼈다고 말했다. 하지만 벵거는 다시 한번 팀에 다음 시즌의 목표는 무패우승이라고 선언했다. 그들이 항상 더 높은 곳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시작된 03/04 시즌, 아스널은 결국 무패우승을 달성한다. 시즌 내내 단 한경기도 패배하지 않고 우승컵을 들어 올린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49경기 연속 무패. 그들이 쌓아 올린 위업은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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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구단도 기업이다. 구단의 수익은 어디서 오는 걸까? 많은 부분이 경기 입장료와 유니폼 판매, 그리고 중계권료에서 온다. 아스널은 결코 맨유만큼 크고 탄탄한 구단은 아니었다. 홈구장으로 사용하던 하이버리의 수용인원은 약 38,000명. 구단의 장기적인 미래를 생각하면 결코 크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아스널은 새 구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한다. 그것이 지금의 홈구장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이다. 약 60,000명 수용이 가능한다.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이후 아스널의 황금기를 이끌던 멤버들은 하나씩 떠난다. 앙리는 바르셀로나로, 비에이라는 유벤투스로 이적한다. 새 경기장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은 예상보다 늘어갔다. 2008년 금융위기라는 악재가 터지면서 아스널은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금융대출을 신청했지만, 선수단의 연봉은 50%로 줄여야만 했다. 선수들을 팔아 재정을 확충해야 했다. 아스널 금융지원의 조건 중 하나는 아르센 벵거의 유임이었다. 경제학 석사이기도 한 벵거는 팀 운영에 있어 구단이 무리한 재정운영을 해서는 안된다는 확고한 철학이 있는 인물이었다.
이 시점부터 아스널은 우승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싸워야 했다. 돈은 크게 낮춰 쓰되 성적은 최상위권을 유지할 것. 이것이 벵거가 맞닥뜨린 과제였다. 리그 4위에게까지만 주어지는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따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단지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통해서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이 구단에게 그만큼 중요했기 때문이다. 벵거는 00/01 시즌부터 17시즌 연속으로 아스널을 챔피언스리그 무대에 올려놓는 데 성공한다.
에미레이츠 시대 이후, 아스널은 더 이상 우승을 다투는 팀은 아니었다. 시즌 막판까지 아슬아슬하게 4-6위권을 유지하다가 결국 챔스 진출권을 따내는 아스널을 보고 사람들은 4스널이라고 조롱했다. 벵거를 향한 팬들의 비판은 매년 거세져갔다. 벵거는 사퇴하라, 는 현수막이 매년 커져갔다. 그리고 17/18 시즌, 벵거는 시즌 후 사임할 것을 발표한다. 아스널은 최종 성적 6위를 기록한다. 아스널의 황금시대를 함께했던 선수들은 벵거의 은퇴식이 열리던 날을 '마치 벵거의 장례식과 같았다'고 회고한다.
아스널의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이후, 많은 선수들이 그랬던 것처럼 벵거 역시 타 팀으로부터 수많은 제안을 받았다. 레알 마드리드, 바이에른 뮌헨, 잉글랜드와 프랑스 국가대표팀 등, 그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원하는 곳으로 떠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남았다. 그가 아스널에서 해야 할 일이 남아있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인터뷰에서 벵거는 그 시절을 돌이켜보았을 때, 아스널에 남기로 한 것이 과연 옳은 결정이었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자신은 아스널을 너무나 사랑했을 뿐이다고.
벵거는 운명을 믿는다고 했다. 그가 평생 맡은 약 6개의 팀 컬러가 모두 흰색과 빨간 색으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것, 그의 이름인 아르센과 아스널의 발음이 유사한 것, 아스널의 무패 기록이 49경기에서 깨진 것이 자신이 1949년생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는 것, 아스날의 부사장과 우연히 이뤄진 저녁식사에서 했떤 간단한 게임이 그를 아스널로 오게 만들었다는 것, 최선을 다한 승부에서도 결국에는 작은 운에 의해서 결과가 결정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그는 운명처럼 받아들였다. 위기에 빠진 아스널이 무너지지 않고 버텨내도록 하는 과업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것이 그가 아주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직을 거절하고서 해야 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하이버리는 그의 영광이었고, 에미레이츠는 그의 고통이었다. 감독직 사임 이후 그는 다시 아스널 경기장을 찾지 않았다. 마치 모든 것을 불태워버린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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벵거는 축구감독 그 이상의 사람이었다. 단순히 경기 전략을 짜는 데서 그의 일이 그치지 않았다. 잔디 상태를 항상 직접 점검했고, 축구공 하나를 사는 계약까지 직접 해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는 축구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분명히 알고, 그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인생을 살면서 몸에 익힌 윤리관은 축구를 통해 배운 것이다. 클럽으로서 우리는 교육적인 의무를 지고 있다. 아스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의 시합이나 행동을 통해 윤리관을 배울 수 있어야만 한다."
벵거는 낭만주의자다. 그에게 패스는 다른 선수들과 의사소통을 하는 방식임과 동시에 다른 선수에게 봉사를 하는 행위다. 그가 원하는 승리는 상대의 약점을 통해 이기기보다는 우리가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이기는 것이다. 그에게 축구란 단순히 운동경기 이상의 가치를 표현하는 의식이다.
축구는 예전과는 다르고, 비즈니스와 훨씬 깊게 연결되어 있다. 점점 어떤 방식이 되었든 이기는 것, 성적을 내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 패배한다면 낭만이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비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낭만과 원칙을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는 더 귀해지는 것 같다. 나는 아직 낭만주의자들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