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달이기도 하지만 제게는 여러모로 의미 있는 달입니다. 제가 회사에 입사했던 달이기도 하고 부모님의 결혼기념일도 있어서죠. 그중에서 가장 잊지 못하는 날은 군대에 입대한 날입니다. 물론 어떤 분께서는 아무리 큰일이라도 1년만 지나면 국민들은 다 잊는다고 말씀하셨지만 저는 23년이 지났음에도 잊지 않고 있죠.
오늘이 바로 그날입니다.
저는 기억력이 오락가락하는 편이기에 기록을 남깁니다. 일기도 그런 차원에서 군대에서 쓰기 시작해서 23년 동안 써왔죠.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2001년 12월 11일 지금은 없어진 의정부 306 보충대로 입소함으로써 군인으로서의 2년 2개월이 시작되었죠.
자유로운 삶에서 모든 활동이 계획에 의해서 진행되고 제약투성이인 생활은 그야말로 고통 그 자체였습니다. 머리를 짧게 깎는 일부터가 시작이죠. 제가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머리를 이렇게 하고 다니는 이유는 그 시절 짧은 머리에 대한 억울함이 아직 가시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306 보충대에서 며칠 지내고 난 뒤에는 본격적인 훈련을 하는 훈련소로 이동합니다. 제가 갔던 곳은 철원에 있는 3사단 백골부대 신병교육대였습니다. 가장 피하고 싶어 하는 곳 중 하나였지만 운이 억세게 좋아서 그리 배정되었죠. 12월 14일부터 철원에서 6주간 생활했으니 그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따뜻한 경남 진해에서 살던 촌놈이 반대쪽 끝으로 와서 훈련과 더불어 추위와 처절한 사투를 해야 했으니 말이죠.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연천에 있는 28사단 태풍부대에서 군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6주의 훈련을 하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두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하나는 화생방 훈련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었죠. 이 훈련은 가장 군인들이 피하고 싶어 하는 훈련입니다. 12월 말에 예정되어 있었는데 그날 공교롭게 싸라기눈이 왔습니다. 지금은 달라졌는지 모르겠지만 이 훈련은 맑아도 비가 와도 무조건 하는 훈련인데 유일하게 눈이 오면 하지 않습니다. 피부에 가스가 스며들 수 있는 우려가 있어서죠. 그게 제 군 생활에서 첫 번째 행운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경험은 일명 치즈 사건입니다.
아침식사 때 일명 군대리아로 불리는 군대식 햄버거가 메뉴로 나왔습니다. 패티 한 장, 치즈 한 장, 딸기잼, 양배추 샐러드 등 정해진 메뉴를 퍽퍽한 빵에 싸 먹는 군인들에게는 제법 인기 있는 메뉴입니다. 그런데 치즈를 집어 들어 식판에 담은 뒤 자리에 앉았는데 놀랍게도 치즈가 겹쳐져 있어서 두 장이었던 사실을 발견합니다.
워낙 식당이 많은 인원으로 복잡한 상황이었고 빠르게 식사를 마친 뒤 반대편으로 나가야했기에 다시 반납하기도 어려웠죠. 사실은 반납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 한 장의 치즈를 주머니에 넣었죠. 그때는 음식에 대한 본능이 그렇게 만들었던 모양입니다.
그 치즈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날 야외훈련을 나갔을 때 몰래 먹음으로써 증거를 완벽하게 인멸했습니다. 그것도 임시로 만들어진 재래식 화장실에 들어가서 말이죠. 평소 치즈를 먹지도 않는데 어찌나 그 치즈는 제가 유일하게 맛있게 먹었던 치즈로 남아있습니다. 누군가는 인상을 찌푸릴만한 지저분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그때의 기억은 제 군 생활의 일부분으로 크게 각인되어 있었죠.
12월 11일이 되면 늘 그때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납니다. 그때와 비교하면 세월이 많이 지나고 세상도 많이 달라져서 군 생활도 많이 개선되었다고 합니다. 숙소도 개선되었고 월급은 올라갔으며 일과시간이 끝난 뒤에는 휴대전화도 쓸 수 있다고 하죠.
군필자 기성세대들은 이런 이야기를 접하면 습관적으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야~ 군대 많이 좋아졌다"라고 말이죠.
그러면 다시 가겠느냐라고 물으면 또 이렇게 답하죠.
"미쳤냐? 내가 거길 다시 왜 가?" 저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많은 성인 남성들에게 군대는 애증의 조직입니다.
지금 나라에 큰일이 생겼고 거기에 군인들이 연루되어 있다고 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듭니다. 대부분의 군인들은 사명감을 지닌 채 자신의 직분을 충실히 수행해 왔던 성실한 분들일 테니까요. 점점 자욱했던 안개가 걷혀가고 있으니 권선징악, 사필귀정이라는 말처럼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그에 맞는 처벌을 받겠죠.
이 상황이 빠르고 평화로우며 상식적으로 잘 마무리되어 우리나라의 위상뿐만 아니라 군인들의 실추된 명예 또한 빠르게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매서운 추위에도 늘 우리나라를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주기 위해 불철주야 애쓰시는 국군 장병 여러분께 한 사람의 군복무자이자 한 사람의 가장이자 부모로서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건강하게 전역하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