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우리는 나라가 세워진 후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를 가진 자랑스러운 나라가 되었습니다. 정말 큰 쾌거였죠. 그리고 며칠 전에 한강 작가님께서 노벨상 수상을 하시면서 스웨덴 한림원에서 특강을 하신 장면이 많은 언론에 대서특필 되었습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해있는 순간에 국민들에게 큰 감동과 기쁨을 주었죠.
한강 작가님이 이룬 작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고 울림을 주었지만 저는 오늘 다른 방향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바로 조력자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그녀가 노벨상으로 가기까지의 업적은 사실 데보라 스미스라는 번역가가 있지 않았다면 쉽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문학작품은 미세한 단어 선택에 따라 그 느낌이 완전히 달라지기도 하니까요. 그런 점에서 노벨상 수상 이후에 데보라 스미스 역시 집중 조명되고 있는 현상은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데보라 스미스는 한국어를 독학해서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번역했다고 하니 그 열정과 능력이 대단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위대한 업적을 이룬 분들에게는 그들을 뒤에서 묵묵히 도와주는 조력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습니다.
손흥민 선수 아버지인 손웅정 감독, 오타니 쇼헤이를 바르고 건강하게 키워낸 그 부모님처럼 언론에 많이 노출된 분들도 있지만 그이외에도 수없이 많은 조력자들이 존재합니다. 그분들의 도움과 희생이 이 위치에까지 오르는 데 큰 역할을 했을 테니까요. 그렇기에 이 업적과 지위가혼자 잘나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며 자만하지 않아야 하며 늘 겸손한 마음으로 도움받았던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책을 낼 때도 그렇게 생각하려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도움을 준 분들이 정말 많았죠. 갚을 기회가 생긴다면 기꺼운 마음으로 갚겠다고 다짐하고도 있죠. 초창기에 설문조사를 도와주신 학부모님들부터 가족들까지 나열하라고 한다면야 백 명도 넘게 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뜻하지 않게 제가 책을 내는데 큰 도움을 준 회사 동기가 한 명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말이죠.
그 친구와는 가끔 만나서 점심을 먹으며 자녀교육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었는데 그 주제에 한해서는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라면 조언을 해주는 편이었습니다. 저희 아이들보다 딱 두 살 어린 아들을 키우고 있었거든요. 그날 이야기 주제는 어떤 사안으로 인해 전문가 상담을 받으러 가기로 되어있었다고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은 뒤에 이렇게 답을 줬죠. 전문가와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당장 크게 달라지는 부분이 없을 듯하다고 말이죠. 남편과 함께 상의를 해서 훈육방식을 통일하고 이렇게 저렇게 해보면 좀 나아질 수 있지 않겠냐며 조언을 해줬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다 들은 뒤 돌아온 답변은 이랬습니다.
"오빠가 좀 더 유명해지면 그때는 내가 그렇게 해 볼게요"라고 말이죠.
그때는 2년 정도 전이었고 책을 본격적으로 쓰고 있던 시절이었기에 사실 저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죠. 자존심도 좀 상하고 서운하기도 했지만 딱히 반박할 수는 있는 상황도 아닙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부터 글쓰기에 좀 더 불타오르긴 했던 듯합니다. 그런 시간을 지나 결국 작년에 자녀교육을 주제로 한 책이 나왔고 저는 적어도 주위 사람들에게 자녀교육 분야에 대해 의견을 적극적으로 말을 좀 해도 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결국 그 친구가 저를 작가가 되도록 만드는데 생각지도 않은 방법으로 도움을 준 셈이죠. 넓은 범위에서 조력자라고 해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에야 그 친구를 만나서 책을 한 권 선물을 해줬습니다. 그때 나눴던 이야기를 해줬더니 본인은 기억도 못 하더군요. 또 요즘 아이와 관련된 걱정스러운 부분에 대해서 말을 하기에 들어주고적당한 조언을 해줬습니다.
조력자는 보통 물심양면으로 곁에서 믿음과 함께 따뜻하고 헌신적인 마음으로 도와주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내 의지와 열정을 북돋워주는 건 꼭 따뜻한 말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 친구와의 일화를 통해서 깨닫게 되었답니다. 어쩌면 일타강사들이 학생들에게 내뱉는 독설들이 그런 이유에서인지도 모르죠.
어쨌든 이번에 만났을 때 그 친구가 아이에 대해 고민하는 부분을 들어주고 조언까지 해주고 돌아오니 뭔가 통쾌한 기분은 들었습니다. 격세지감이라는 사자성어가 생각이 났죠. 이런 경험도 작가가 되니 느낄 수 있는 소소한 기쁨이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네가 할 수 있겠어?"
"작가는 아무나 하냐?"
"그런 내용의 책은 안 읽을 거 같은데?"
"그런 걸 굳이 뭐 하려 하냐?"
"요즘 너 한가한다 보다"
혹시 이런 부정적인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씀하시는 분들의 콧대를 눌러주기 위해서라도 포기하지 말고 도전하시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그런 반응을 자양분으로 삼는다면 또 긍정적으로 이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저처럼 말이죠.
그리고 혹시나 저런 생각을 스스로 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좀 더 자신감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일이 되었든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을 믿는 데서부터 시작하니까요.
한 줄 요약 : 부정적인 말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내 열정과 의지의 연료로 사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