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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88> 대신 우리는 <응답하라 2025>

by 페르세우스



안녕하세요, 자녀교육에 진심인 쌍둥이아빠 양원주입니다.


몇 년 전, 전 국민적으로 사랑을 받았던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를 혹시 기억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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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 속 많은 에피소드 중에 가까이 살던 이웃들이 저녁식사 때 넉넉하게 만든 서로의 반찬을 나눔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자녀들이 자기 집의 반찬을 가지고 순회공연을 하는 내용이었죠. 저도 저 시대를 살았지만 동년배의 이웃이 없는 곳이어서 경험은 없었지만 참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준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정(情)이라고 하는 외국어로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깊이 있는 단어를 보여주는 하나의 에피소드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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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얼마 전 저희 집에서도 그런 경험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참기름 때문이었는데요. 아내와 함께 일요일 점심 메뉴를 뭘로 할지 상의하다가 미리 챙겨둔 재료로 김밥을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사실 '김밥 싸기'는 제가 습득한 집안일 스킬 중에서 가장 능력치가 낮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저는 김밥 전문가가 집에 돌아오실 때까지 속 재료를 데친 뒤 프라이팬에 굽고 밥을 짓는 등의 일을 할 수밖에 없었죠.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김밥을 싸면 된다고 생각한 순간 갑자기 싸늘한 느낌이 등 뒤로 맴돌았습니다. 참기름이 떨어져서 온라인으로 주문을 해놨는데 배송 일정상 그날 저녁에 도착하게 되어 있어서였습니다.


김밥에 단무지가 없으면 맛이 없듯 밥에 참기름을 넣지 않으면 맛이 없습니다. 각자 가정마다 룰이 다르겠지만 저희 집은 적어도 그랬습니다. 난감해진 상황에서 가장 빠른 해결책은 마트에 가서 참기름을 사 오는 일이었겠죠. 하지만 저녁에 소주병 크기의 참기름이 도착하는데 또 하나의 참기름을 들이는 선택은 현명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긴 고민 끝에 동네에 나가있던 아내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혹시 ㅇㅇ엄마랑 아직 같이 있어?"

"응"

"혹시 참기름 좀 있으면 얻어와라."

"뭐라고?"

"참기름이 없어. 오늘 저녁 배송인데.."

"어... 응.. 일단 물어볼게"


결국 아내는 그 집까지 가서 참기름을 얻어가지고 왔습니다. (밖에 나가기 귀찮아서가 절대 아님을 다시 한번 밝힙니다.) 딱 한 번 밥에 넣을 분량이면 된다고 말했는데 센스 있게 이렇게 챙겨주셨더군요. 이 소량의 액체가 생각지도 않게 재미있는 사연을 만들어준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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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순간적인 기지와 이웃엄마가 보여주신 호의 덕분에 미완으로 끝날 뻔했던 김밥은 온전한 형태로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가족들도 그 이야기를 웃으면서 나누며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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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맞벌이하는 저희 집에는 평소 반찬을 넉넉히 만들면 꼭 나눠주시던 세 분의 지인들이 계십니다. 이번에 참기름을 주신 분도 그중 한 분이죠. 세 분 모두 아이가 같은 학년이라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인연이 시작되었는데 만으로 8년이 되는 지금까지 잘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사실 아이들끼리도 친하지만 엄마들끼리는 언니 동생 하면서 더 친합니다.


그러다 보니 그동안 서로 주고받았던 반찬이나 음식, 선물들은 셀 수도 없이 많았죠. 저희는 아이들을 오게 해서 놀기도 하고 공부도 하고 밥도 제법 챙겨 먹여서 보냈답니다. 저울에 서로 받았던 만큼의 무게를 재는 사이가 아닌 뭐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그런 사이가 된 셈이죠.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 든든한 이웃의 덕을 또 한 번 참기름을 통해서 겪고 나니 글로 남기고 싶어져서 이렇게 몇 자 적어봅니다.


2년 뒤 아이들이 더 자라 각각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된다면 이사를 가야 할 수도 있을 테니 이 관계는 자연스레 사라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가까이 살다가 그렇게 원치 않게 몸이 멀어지는 시기가 오면 유명한 드라마인 <응답하라 1988>이 아닌 <응답하라 2018~2025>도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아련한 추억으로 남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 줄 요약 : 응답하라 1988처럼 참기름 한 병이 불러온 이웃 간의 따뜻한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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